[신세돈 칼럼] 가계대출 문제, 정말 심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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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돈 숙명여대 교수
입력 2023-08-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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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돈 교수]

 
 
 
가계부채를 측정하는 가장 신뢰할 만한 보편적인 통계는 분기별로 발표되는 한국은행 가계신용 통계다. 은행이나 신협과 같은 예금취급기관과 보험회사나 캐피털회사와 같은 기타금융기관의 가계대출에다 판매신용을 더한 금액이 가계신용이다. 2023년 1분기 가계신용은 1854조원이다. 이 중 가계대출은 1740조원으로 94%고 판매신용이 114조원으로 6%다. 가계신용 1854조원은 2022년 명목 GDP 2161조원의 86%이고 금융기관 총여신 3430조원의 54%며 은행여신 현금통화 163조원의 약 12배에 달하는 규모다.
 
■ 가계신용 증가율이 너무 빠른가? 최근에는 둔화되고 있다

2023년 이후 지난 20년을 놓고 보면 가계신용 증가율은 거의 항상 명목 GDP 증가 속도보다 더 빨랐다. 예외적이라면 IT버블이 터지고 카드 대란이 발생했던 2002년과 2003년만 가계신용 증가율이 명목 GDP 성장률보다 낮았다. 그리고 가계신용 증가율과 명목 경제성장률의 차이는 점차 커져왔다. 노무현 정부 5년 동안에 그 격차는 0.7% 포인트에 불과했으나 이명박 정부 때에는 2.0%로 커졌고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 아래에서는 각각 3.8%포인트와 3.2%포인트로 커졌다.
 
명목 경제성장률보다 가계신용 증가율이 더 빠르게 늘어나면서 명목 GDP에 대한 가계신용의 비율도 가파르게 올라갔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이 비율은 50% 초반이었는데 이명박 정부 때 약 6%포인트 올랐고 박근혜 정부 때 10.2%포인트 올랐으며 문재인 정부 때에는 12.8%포인트가 더 올라가 지금은 86%에 도달했다. 그러나 최근 가계신용 증가 속도는 많이 둔화되고 있다. 명목 GDP에 대한 가계신용 비율이 2021년 89.9%를 찍은 다음 2022년에는 86.8%로 낮아졌다. 월별 예금취급기관의 가계신용 증가율도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대에서 감소하고 있다.
 
가계신용의 증가 속도가 둔화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당국의 제도권 가계대출 억제 정책이다. 가계신용 증가율이 10%를 넘어가던 2021년 2분기를 전후하여 정부 당국은 제도권 금융기관의 가계대출 증가율을 예고도 없이 강압적으로 ‘5% 총량 규제 정책’을 펼쳤다. 다른 하나는 경제적인 이유다. 2021년 8월을 기점으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데다 주택시장이 빠르게 가라앉으면서 주택담보대출이 자발적으로 크게 위축된 것이다. 가계신용의 폭증이 비록 금융시장 안정에 크게 위협이 된다고 하더라도 당국의 예고도 없는 억압적이고 강압적인 2021년 8월의 ‘예금취급금융기관에 대한 대출 제한 창구 조치’는 매우 부적절한 것이었다.
 
첫째로 대출 제한 조치가 불가피했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철저한 사전 예고를 했어야 마땅하다. 언제부터 어떠한 금융기관이 어떤 대출에 대해 어떻게 제한할 것이라는 예고를 해야 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금융당국의 최소한의 의무였다. 금융당국의 최고책임자가 별안간 마이크를 잡고 금융기관의 대출 규모를 전년 통계의 5% 이내로 제한하라는 ‘지시 아닌 지시’를 내림으로써 현장 은행 창구에서는 수천~수만 명의 선의의 피해자가 나타나면서 대출을 못 받아 주택 구매 잔금을 못 치르거나 결혼식 대금을 마련하지 못하거나 병원비를 납부하지 못하는 불편이 초래되었다. 이런 식의 창구 규제 발상은 1970년 군사정부에서나 예상할 수 있는 전근대적이고 저개발국적인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둘째로는 정부 당국의 지시 혹은 창구 규제보다는 금리라는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2014년 4월경부터 지나치게 시장금리가 낮아지면서 과잉 대출이 발생했으므로 시장금리만 올리면 자연스럽고 효과적으로 해결될 문제였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제때 올리지 못하면서 한편으로는 주택 가격에 과도한 버블이 발생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가계대출이 폭증하는 문제를 낳았던 것이다. 2021년 8월부터 여러 차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가계신용 증가율도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다. 오히려 가계신용이 너무 위축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을 할 정도로 가계신용 증가 속도는 둔화되고 있다. 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은 5월까지 8개월 연속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대출 규모가 떨어지고 있고 특히 주택담보대출 이외의 가계대출이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추세대로 간다면 가계신용 증가가 아니라 오히려 위축을 걱정해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 1900조원에 가까운 가계신용 규모가 너무 큰가?
 
명목 GDP의 90%에 가까운 가계신용 규모가 너무 크다고 우려를 표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가계신용이 크면 원금과 이자 상환 부담이 클 것이므로 가계의 소비여력이 위축될 것이라는 논리다. 특히 최근과 같이 시장금리가 많이 오르는 상황이면 이런 우려는 더욱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곰곰이 뜯어보면 과도한 우려임이 금방 드러난다. 예를 들어 가계신용이 1800조원이 아니라 1900조원이라고 가정해보자. 가계신용이 100조원 많다고 했을 때 시장금리가 5%라면 상환할 이자 부담은 연간 5조원 정도 많아진다. 연간 민간부문 소비가 1000조원을 넘고 매년 8%대, 금액으로는 매년 약 80조원이나 증가하는 민간 소비에서 5조원 정도 이자 부담이 늘어난다고 해서 소비가 얼마나 위축될지는 미지수다. 또 100조원의 대출로 인해 발생했을 이자 혹은 배당 등 소득효과가 소비에 주는 긍정적인 영향을 생각하면 소비위축 효과는 훨씬 덜할 것이 분명하다.
 
다른 하나는 과도한 가계대출로 인해 금융기관이 부실해질 것이라는 우려다. 가계신용의 상환이 부실해지면 대출한 금융기관의 건전성에 타격을 준다는 일견 그럴듯한 논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계신용의 몇 %가 부실해질 것이며 그 부실 대출이 금융기관 총여신 중 몇 %에 해당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우리나라 가계대출은 절반 이상이 담보부 대출이고 무담보 대출 비중은 매우 낮다. 게다가 LTV 비율(대출/담보가액)도 50~60%로 관리되어왔다. 따라서 담보물의 가격이 예를 들어 30%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해당 대출이 부실해질 가능성은 거의 없고 따라서 가계신용이 부실해진다고 하더라도 해당 금융기관의 부실로 연결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서울 지역 아파트 실거래 가격은 정점이었던 2021년 10월 188.5에서 가장 낮았던 2022년 12월 141.8까지 25% 떨어졌으므로 LTV가 60%보다 낮았던 대부분의 아파트 담보부 대출은 적어도 금융시스템 안정 차원에서 큰 문제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60% 이하의 LTV만 확고하게 유지되어 주고 또 시장금리도 지나치게 낮아지지 않는다면 주택 가격의 폭등이나 폭락도 없을 것이고 가계신용의 급격한 증가도 없을 것이며 시장의 자연스러운 대출 수요와 공급에 따라 명목 경제성장과 맥을 같이하며 자연스럽게 2000조원 혹은 그 이상으로 확대되더라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다. 주택담보대출 이외의 대출도 상당 부분 담보를 설정해야 가능하므로 그만큼 위험은 낮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단순하게 명목 GDP 규모에 버금간다거나 GDP 증가 속도보다 빠르다는 이유만으로 가계부채 확대를 억제하려는 발상은 이론적 근거도 희박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규제 혹은 간섭을 초래하면서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저소득자나 자영업자나 중소기업과 같은 취약계층의 대출은 심각하게 부실해질 수 있다. 코로나로 타격을 받은 데다 요즘처럼 경기가 나쁘면서 연체율이 올라가면 특히 더 불안하다. 그렇지만 취약계층에 대한 대출은 전체 금융기관의 총대출 3430조원의 일부에 불과하다. 금리 상승 혹은 경기 부진 등 경제 여건의 악화로 인한 취약계층의 채무 불상환 위험은 국가의 재정 혹은 금융정책으로 접근해야지 그것을 가계부채 전반의 문제로 이해해서 금리 인상을 주저하게 한다거나 혹은 대출 규제를 완화해주는 방식으로 풀다가는 더 큰 위험에 봉착하게 된다. 금융시장만큼 시장원칙과 자유가 중요한 시장은 따로 없다.

 
 신세돈 필자 주요 이력

▷UCLA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조사제1부 전문연구위원 ▷삼성경제연구소 금융연구실 실장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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