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쉽고 바르게]⑩ 호머 헐버트 박사 "쓰기·말하는데 최고의 글자" 한글을 사랑한 '푸른 눈의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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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이 기자
입력 2023-10-1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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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89년 첫 한글교과서 '사민필지' 펴내

  • 소리글자 과학성·우수성 세계에 알려

  • 주시경과 함께 연구…고종 밀사 역할도

푸른 눈의 독립운동가로 최초의 교과서를 호머 헐버트 박사 동상이 서울 종로구 주시경마당에 자리하고 있다 사진김다이 기자
푸른 눈을 가진 독립운동가이자 최초로 교과서를 만든 호머 헐버트 박사 동상이 서울 종로구 주시경마당에 자리하고 있다. [사진=김다이 기자]
국어 능력보다 영어 능력을 더 중시한다. 한글조차 떼지 못한 어린 자녀들에게 영어 조기교육을 강요한다. 대한민국 현주소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녀에게 외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열을 올리는 부모가 있다면 이 사람을 주목하기 바란다. 한국인보다 먼저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에 대해 깨닫고 한글 연구·교육에 힘쓴 사람, 바로 ‘호머 헐버트’ 박사다.
 
헐버트 박사는 '한국인보다 한글을 더 사랑한 사람'으로 불린다. 푸른 눈을 가진 독립운동가로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교육자이자 한글 학자로서 최초로 한글 교과서를 저술한 것은 물론 고종의 밀사로 대한제국 국권 수호에 동참하고 일제강점기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등 일생을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했다.
 
1863년 미국 버몬트주에서 태어나 미국 동북부 명문대학인 다트머스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미국과 국교를 맺은 조선 정부에서 영어 교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1886년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그의 나이 23세 때다.
 
한국에 도착해 처음 한글을 접한 헐버트 박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회고록에 “배우기 시작한 지 나흘 만에 한글을 읽고 썼으며, 일주일 만에 조선인들이 이 위대한 문자인 한글을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한글학회 인근에 자리하고 있는 한글가온길 이곳에서 미국인 호머 헐버트는 최초의 순 한글 교과서를 만들었고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인물로 기록하고 있다 사진김다이 기자
서울 종로구 한글학회 인근에 자리하고 있는 한글가온길. 이곳에서 미국인 호머 헐버트는 최초로 순 한글 교과서를 만들었고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인물로 꼽히고 있다. [사진=김다이 기자]
이후 그는 한글 학습에 매진한 지 3년 만인 1889년 최초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士民必知)’를 펴냈다. 사민필지는 각국 지리와 태양계, 지구, 일식과 월식, 세계 정치 형태, 풍습, 종교, 인종, 산업, 교육, 군사력까지 총망라했다. 이 책은 고종이 세운 조선 최초 근대식 국립학교 ‘육영공원’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교과서이기도 했다.
 
헐버트 박사는 미국인 객관적인 시각으로 본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세계에 알렸다. 한글의 독창성과 과학성, 간편성을 발견한 그는 다수 논문과 학회지를 통해 "영어와 달리 발음기호가 불필요하며 자음과 모음 조합이 간편해 쓰기와 말하기로는 세계 최고"라고 강조했다. 
 
헐버트 박사는 "문자의 단순성과 소리를 표현하는 방식의 일관성에서 한국의 소리글자와 견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며 "세종은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고 한자를 변형하는 방식이 아닌 전혀 새로운 문자인 소리글자를 창제해 한자로 인한 백성의 고충을 덜어준 첫 번째 인물이다. 조선이 한글 창제 직후부터 한글을 오롯이 받아들였다면 조선에는 무한한 축복이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광화문광장에 조성된 세종대왕 동상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를 비롯해 조선시대 문화 융성에 이바지했다 사진김다이 기자
광화문광장에 조성된 세종대왕 동상.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를 비롯해 조선시대 문화 융성에 이바지했다. [사진=김다이 기자]
고종 황제의 교육 담당 비서실장으로 활동했던 헐버트 박사는 육영공원 후속 관립중학교와 한성사범학교 선생으로 교단에 서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헨리 아펜젤러가 운영하는 삼문출판사 책임자로 성서 번역사업을 추진하는가 하면 아펜젤러가 설립한 배재학당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한글의 우수성에 관한 설파는 끊이지 않았다.

독립운동가이자 언어학자인 주시경 선생과도 인연이 깊다. 
 
주시경 선생은 남다른 언어학적 재능으로 체계가 없던 한글을 다듬은 인물이다. 정음, 언문, 조선글이라고 불리던 우리말에 '한글'이라는 명칭을 만든 사람도 주시경 선생이었다.

그는 맞춤법 통일안의 모태가 된 <국문연구>를 비롯해 <국어문전음학> <국어문법> <말의 소리> 등을 출간했다. 1908년에는 오늘날 한글학회의 모체가 된 ‘국어연구학회’를 결성해 한글 전파에 힘을 쏟았다. 
 
서울 종로구 주시경 마당과 한글회관 앞에 자리하고 있는 주시경 선생의 동상 사진김다이 기자
서울 종로구 주시경마당과 한글회관 앞에 자리하고 있는 주시경 선생 동상. [사진=김다이 기자]
두 사람은 함께 한글을 연구했다. 헐버트 박사는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던 주시경 선생에게 자신이 운영하는 삼문출판사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선하는 등 주시경 선생을 보살피며 조력했다. 주시경 선생 역시 헐버트의 도움으로 일제의 탄압에도 <대한국어문법>을 편찬하며 한글을 깊이 연구할 수 있었다.
 
한글이 완전 체계를 갖추고 더 나아가 오늘날 전 세계인이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하는 것은 호머 헐버트의 한글 사랑, 그리고 이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쉼 없이 쏟아부은 노력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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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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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동안 후세 사람들은 어떤 노력을 했나요. 외국어 발음이 정확하게 한국어로 표현되지 못하였다면 좀더 개선할 수도 있는데 그냥 쓰기만 하네요. 그 시절엔 중국어 발음이 한국어로 표기가 정확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현재는 여러 나라 말이 우리나라에 들어 왔으니까
    외국어 발음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추가 문자를 만드는게 어떨까요.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서 현재에 아무런 개선하지 않는 국어 학자들은 참 반성좀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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