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교 칼럼] 탈동조화(de-coupling)와 탈위험(de-risking), 그리고 재동조화(re-coup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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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교 GS&J 인스티튜드 원장
입력 2023-06-2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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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교 GS&J 인스티튜드 원장]



 
지난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성명을 보면 미국이 중국을 대하는 태도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경제 안보에 관한 한 탈동조화(디커플링)로 대변된다. 그런데 이번 G7 정상의 공동성명에는 탈동조화(디커플링) 대신 탈위험 또는 위험 제거라고 해석할 수 있는 ‘디리스킹(de-risking)’이란 용어가 사용되었다. 미국이 공동선언에서 탈동조화를 버리고 탈위험이란 용어 사용에 합의 한 것은 아마도 독일 등 유럽 국가의 주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쩌면 미국 스스로 지금부터는 탈동조화보다 디리스킹이란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짐작은 최근 미 바이든 대통령의 대중국 발언과 미-중 양국의 고위 관리들의 연이은 접촉, 그리고 일련의 미국 기업인의 북경방문을 결부시켜 생각하면 더욱 뚜렷해진다.
 
먼저 미국이 EU의 입장을 수용했다고 보는 것은 EU가 평소에 대중 관계에서 탈동조화보다 탈위험이란 용어를 선호해 왔기 때문이다. EU와 중국과의 무역 관계를 생각할 때 EU가 미국이 선호하는 탈동조화를 꺼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중국은 미국 다음으로 EU의 제2대 교역국이다. 중국과 EU의 무역 거래는 지난해 8,500억 유로를 넘어 제1위 무역상대국인 미국과의 무역액인 8,677억 유로와 별 차이 없다. 상품 수입만을 본다면 중국이 EU에 6,260억 유로를 수출하여 중국이 EU의 제1의 수입국이다. EU 전체수입의 약 21%가 중국에서 온다. 지난 3월 우루술라 EU 집행위원장이 중국 방문에 앞서 대중 관계에서 탈위험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도 이러한 양국간 무역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한편 미국도 자체적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조정할 필요성은 느꼈을 수도 있다. 종전까지는 중국을 배제 내지 고립시켜 미국 중심의 공급망을 만들겠다는 의도가 강했다. 그러나 지난 십수 년 동안 세계화의 과정에서 세계는 촘촘히 연결되었으며, 특히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서 이제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웬만한 소비재는 중국산이 아닌 것이 없을 정도이다. 특히 핵심 광물은 지리적 분포상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희귀금속의 미국내 생산에 따른 환경오염도 문제다. 결국 미국도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첨단 기술, 특히 군사용으로의 전용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공급망을 안정화시키는 방향으로 대중 정책을 선회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그 동안 꼭 막혔던 양국 관계가 최근에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중국 순방에 이어 옐런 재무장관의 중국 방문도 예정되어 있다. 옐런 장관은 중국에 대한 첨단 기술 이전을 차단하면서도 중국과 탈동조화가 아닌 디리스킹(위험 제거)을 추진하겠다는 밝힌 바 있다. 이에 앞서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의 만남에서 ‘디리스킹’을 언급하면서 군사적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첨단 기술 보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렇다면 중국의 반응은 어떨까? 사실 두 단어가 실제 어떤 의미의 차이가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다만 탈위험이 탈동조화보다는 적대적 성격이 약한 보다 부드러운 표현이라고 볼 수는 있다. 탈동조화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함께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강한데 반해 탈위험은 단순히 위험 요소를 제거하겠다는 것이니 탈동조화보다 유연하며 상대방이 듣기에도 좋다. 그러나 탈위험이란 용어는 여전히 모호하다. 해석하기에 따라 위험 제로(위험을 완전히 제거하는)로 보면 사실상 탈동조화와 실질적인 차이가 없다. 반대로 위험감소나 위험관리로 보면 탈동조화보다는 훨씬 유연할 수 있다. 특히 국가안보를 탈위험에 대입할 때 해석의 여지는 더욱 넓어질 수 있다. 그러니 중국의 반응이 좋을 까닭이 없다. 최근 파리를 방문한 중국의 리창 총리가 탈위험이 겉보기는 좋아 보이지만 명확한 정의와 경계가 있어야 한다고 언급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우리는 어떠한가? 미국과 중국이 모두 우리의 최대 무역국이라는 점은 EU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개념이 모호한 탈위험이란 용어를 사용하기 보다 재동조화(re-coupling)가 차라리 낫다. 기존 세계화 시대 효율성 우선으로 구축된 동조화는 기후변화와 인위적 재난 등에 따른 위험에 취약하다는 것이 코로나 19나 러-우 전쟁 등으로 이미 입증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위험을 감안해 공급망을 재구축해야 한다는 것에 어느 나라나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뿐만아니라 재동조화는 생산 공급측면을 강조한 탈동조화나 탈위험과 달리 소비수요를 함께 고려할 수도 있어 우리에게 유리하다.
 
올해 들어 기업인들의 중국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나 빌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팀 쿡 애플 CEO 등은 이미 방중을 끝냈고, 최근에는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 회장의 베이징 방문을 포함하여 구찌, 프라다, 버버리 등 글로벌 명품업체 CEO들도 중국을 찾았다. 2030년까지 중국이 세계 최대의 최고급 시장으로서 중국의 잠재력을 감안한 결과이다. 정치가 일시적으로 이윤추구의 경제를 압도할 수는 있어도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우리만의 재동조화 전략이 시급하다.
 

 
서진교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농업경제학과 △미국 메릴랜드대 자원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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