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베트남 포커스] (21) 미-중 갈등 시대 …균형 외교는 베트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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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전 서강대 교수
입력 2023-06-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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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교수]




미·중 갈등은 현재 전 세계적 문제다. 특히 중국에 인접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미·중 갈등 속에서 활로를 찾으려고 분투하고 있다. 자유주의 국가로서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블록에 더 적극적으로 편입하는 것이 균형 있는 정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미·일에 편승한 일방적 관계가 가져올 리스크에 경계심을 높이는 목소리도 강하다. 상호 충돌하는 주장 속에서 베트남 사례를 통해 대외정책의 균형을 어떻게 모색할 것인지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베트남은 전쟁 시기부터 강대국을 잘 ‘요리하던’ 국가였다. 베트남이 비록 경제적으로 낮은 수준의 중소득국이지만 안보 등 대외전략에서는 상당한 수준의 전략을 구사해왔다.
최근 베트남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이 경합한 일을 정리해보자. 시진핑이 세 번째 총서기로 연임되며 외국의 최고지도자로서 베트남의 응우옌푸쫑 총비서(서기장)를 가장 먼저 초청했다. 중국은 작년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응우옌푸쫑 총비서를 베이징에 초청해 최고우호훈장을 안기며 융숭하게 대접했다. 일부 논자들은 이로써 베트남이 중국에 경도됐다고 평가했다. 이후 응우옌푸쫑 총비서는 올해 3월 29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하며 양국 간 협력 강화를 재확인했다. 이래서 균형추는 미국 쪽으로 조금 움직였다.
 
* 용의주도한 미국의 외교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올해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하노이를 다녀갔다. 블링컨이 일본에서 열리는 G7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으로 가는 길에 들른 것이다. 미·중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방문한 것이라 더욱 주목을 받았다. 블링컨 국무장관과 팜민찐 총리는 양국 관계를 새로운 수준으로 향상시키자고 약속했다. 이 새로운 수준이 그간의 포괄적 협력관계보다 한 단계 높은 전략적 협력관계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바이든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하거나 응우옌푸쫑 총비서가 미국을 방문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어쨌든 양국은 이를 위해 긴밀히 협의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 기회에 미국은 3.2㏊ 부지에 건축비만도 12억 달러인 세계에서 가장 비싼 대사관을 하노이에 신축하는 기공식을 했다.
역대 베트남 주재 미국 대사들도 블링컨의 베트남 방문에 동행했다. 테드 오시우스 전 대사는 지금 미국·아세안 비즈니스 카운슬 회장,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전 대사는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로 활동하고 있다. 현 베트남 주재 미국 대사인 마크 내퍼는 오랫동안 한국에서 근무한 경험도 있고 주한 미국 대사대리로 있었기에 한반도·베트남·미국 관계를 잘 이해하는 인물이다. 내퍼 대사는 2022년 2월 베트남에 대사로 부임하며 베트남 국민들에게 유창한 베트남어로 부임 인사를 전했다. 전임 대사들도 베트남 국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테드 오시우스 대사는 베트남 조왕신(부엌신) ‘옹따오(Ong Tao)’가 하늘로 한 해의 가정사를 보고하러 가는 음력 12월 23일에 물고기를 방생했고, 크리튼브링크 대사는 베트남 설인 ‘뗏(Tet)’을 축하하는 랩 뮤직 비디오를 유튜브에 방영하기도 했다. 블링컨은 하노이 방문 때 빈민(Binh Minh) 재즈클럽을 방문했다. 클럽 측은 그 다음 날에 생일을 맞는 블링컨을 위해 '해피 버스데이 투 유'를 연주했다. 이런 일들이 의도적인 것이라고 이해하지만 미국이 최근에 이런 일들을 통해 베트남에 적극적으로 다가가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그간 공공외교를 잘 수행해왔다. 미국이 베트남을 대하는 행태를 보면 미국은 베트남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용의주도하게 행동해왔다. 미국 대사는 2001년부터 베트남 문화 보존 미국대사 기금을 조성해 베트남 각지 문화를 보존하는 데 후원하고 있다.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의 수도였던 후에(Hue) 황궁 한쪽에 있는 조조묘에는 미국이 복원사업을 지원했다고 그 궁전 마당에 큼지막한 기념비를 세워 놓았다. 미국이 알게 모르게 베트남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 이곳저곳에서 눈에 띈다. 현직 미국 대사와 총영사는 베트남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 유튜브에 자주 등장한다.
 
* 중국의 이중적 위상
 
베트남과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로서 우호관계를 늘 강조한다. 블링컨 국무장관이 하노이를 다녀간 2주 후인 4월 말에 쯔엉티마이 베트남 공산당 상임비서가 베이징을 방문했다. 4월 26일에 마이 상임비서는 시진핑과 회담했다. 마이는 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임하는 중에 2023년 3월 6일부터 공산당 비서국 상임비서를 겸직하고 있다. 상임비서였던 보반트엉이 3월 2일 국가주석으로 선임되며 마이가 상임비서를 겸직하게 됐다. 마이의 베이징행은 신임 상임비서로서 인사차 방문이기도 하지만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하노이를 방문한 직후 이뤄진 '균형 있는' 외교의 일환이었다.
베트남은 중국과 전쟁을 불사할 결기를 가졌지만 신중하게 중국을 대한다. 2022년 12월에 한국과 베트남이 양자 관계의 최고 단계인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상향하면서 일본과는 상응한 관계로 상향하지 않았다. 한국이 베트남과 투자·교역에서 일본을 앞서지만 일본은 한국의 8~9배나 되는 공적개발원조(ODA)를 베트남에 제공해온 국가다. 베트남이 일본과 관계를 최고 단계로 상향하면 이는 중국에 대항해 미·일 그룹에 편승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중국으로부터 불필요한 의혹을 피하려고 한다. 최근 하노이를 방문한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양자 관계를 포괄적 관계에서 전략적 관계로 상향하자는 제안에 베트남이 응하지 않는 것도 중국을 고려한 조치다. 전략적 관계는 포괄적 전략적 관계보다 더 아래 단계인 양자 관계임에도 말이다. 이 사안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베트남과 미국 최고위 지도자들의 상호 방문 과정에서 나타날 것이다.
 
* 관계 다변화를 추구하는 베트남
 
베트남의 균형 외교는 미국과 중국 관계에서만 작동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023년 5월 G7 정상회의에 한국, 베트남 등 국가들의 정상도 초청하여 베트남의 팜민찐 총리가 참석했다. 팜민찐 총리는 히로시마에서 각국 정상들을 만나고 21일에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났다. 한편 베트남 정치지도자들은 5월 21-23일 하노이에서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 메드베데프를 맞아 환대했다. 여기에서 응우옌푸쫑 총비서는 베트남과 러시아의 전통적 우호관계를 강조했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22일에 보반트엉 국가주석, 팜민찐 총리 등과 회담을 했다. 팜민찐 총리는 전날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를 만나고 다음 날 러시아의 메드베데프를 만난 것이다.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베트남전쟁 시기에 북베트남에 막대한 군사적·경제적 지원을 통하여 베트남의 통일에 기여한 국가다. 통일 이후 베트남과 중국 관계가 소원해졌을 때 베트남의 주된 협력 파트너는 러시아였다. 베트남은 소련이 해체된 후 자본주의권 국가들과 경제협력을 확대해 왔지만 러시아와의 전통적 우호관계는 지속하고 있다. 베트남전쟁 시기에 소련의 군사 지원의 영향으로 현재 베트남 무기체계의 80%가 러시아제 무기로 구성돼 있다고 알려져 있다. 베트남은 러시아의 킬로(Kilo)급 잠수함 6기를 들여와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베트남은 러시아 무기 중심의 체계를 바꾸려고 무기 수입처를 다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최근 연간 무기 수입에서 러시아의 비중은 줄고 있다. 베트남이 방위산업 분야에서 협력하려는 주요 대상국 중 하나가 한국이다. 베트남은 한국과 방산 협력을 강화하여 무기 수입처 다변화를 꾀하고 자국 생산을 늘리며 군사 기술의 전수를 희망하고 있다.
그간 베트남의 대외 협력관계를 보면 그 관계가 고정적이지 않았다. 베트남의 대외관계는 시기와 국면에 따라 매우 복합적이며 유연하게 적용돼왔다. 글로벌 중추국가를 지향하는 한국이 베트남의 대외전략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다.
 
 

필자 주요 이력
▷서강대 정치학박사 ▷서강대 동아연구소 및 대학원 동남아시아학 협동과정 교수 역임 ▷한국·베트남 현인그룹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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