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7일 열린 전원회의에서 브로드컴 인코퍼레이티드 본사와 한국지사 등 4개사의 거래상지위 남용 건과 관련한 최종 동의의결안을 기각했다고 13일 밝혔다. 최종 동의의결안에 대해 동의의결 인용요건인 거래질서 회복이나 다른 사업자 보호에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동의의결이란 불공정행위를 한 기업이 소비자 피해구제안을 마련하고, 문제가 된 부분을 고치면 공정위가 법 위반 여부를 따지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다. 신속한 피해 구제를 위해 2012년 도입됐다.
브로드컴은 와이파이, GNSS(위성항법시스템) 장비를 만드는 글로벌 반도체 업체로, 삼성전자에 스마트기기 부품 공급에 관한 장기계약을 강제한 사안에 대해 공정위가 거래상 지위남용건으로 심사를 진행하자 지난해 7월 13일 동의의결 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잠정 동의의결안은 경쟁질서 회복을 위한 시정방안으로 불공정한 수단을 이용한 부품 공급계약 체결 강제 금지, 거래상대방의 의사에 반한 부품 선택권 제한 금지 등이 담겼고, 중소사업자 상생방안으로는 200억원 규모 기금을 조성해 국내 반도체 기업 상생을 지원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삼성전자에 대해서는 삼성전자가 장기계약 기간(2020년 3월 27일~2021년 7월 2일) 동안 주문해서 지난해 3월 이전에 출시된 갤럭시 Z플립3, 갤럭시 S22 등 스마트기기 제품 및 모델에 탑재된 브로드컴 부품에 대해 3년 기간의 품질보증과 기술지원을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이는 2020년 3월 이전 출시된 스마트기기에 탑재된 부품에만 적용되고, 해당 부품 생산도 종료될 예정이기 때문에 피해보상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또 품질보증·기술지원이 무상이 아닌 유상으로 제공되는 것도 피해보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권혜정 공정위 경쟁심판담당관은 "거래질서 회복이나 다른 사업자 보호 요건이 충족되려면 기본적으로 거래상대방에 대한 피해보상을 고려해야 하는데, 브로드컴의 삼성전자에 대한 품질보증·기술지원 확대 등은 피해보상으로 적절치 않다"며 "삼성전자도 시정방안에 대해 수긍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이어 "브로드컴은 심의과정에서 삼성전자에 대한 피해보상, 기술지원 확대 등 위원들의 제안사항에 대해 수용할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했기 때문에 공정위는 동의의결 최종안을 기각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공정위가 동의의결 개시 신청 자체를 기각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으나, 개시 결정 이후 협의가 끝난 동의의결안을 전원회의에서 기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공정위는 조만간 전원회의를 개최해 브로드컴의 법 위반 여부, 제재 수준 등을 결정하기 위한 본안 심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늦어도 연말까지는 심의할 것"이라며 "동의의결이 브로드컴이 법을 위반했다는 전제로 이뤄진 합의였다면, 본안에서는 법 위반 여부 자체를 다시 심의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에 따라 제재하게 되면 시정조치나 과징금 부과 등 처분이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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