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칼럼]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 논란…폐지가 과연 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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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학)
입력 2023-04-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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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교수]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폐지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벌써 오래 전부터 반복되어 온 국회의원들의 특권 폐지 논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것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의 후폭풍이 매우 강력했던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였다. 그때 선거에 입후보한 다수의 후보자들이 특권 포기, 특권 내려놓기를 공약으로 내세웠으며, 이후 수시로 특권 폐지나 특권 포기 공약이 나왔으나 지금까지 달라진 점은 별로 없다. 

정치인들의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라는 말도 있지만, 다른 경우와 달리 특권 폐지가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국회의원의 특권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으므로 헌법개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국회의원의 특권을 폐지하는 것이 그동안 불가능했다. 물론 특권 폐지가 아니라 특권 포기는 언제라도 가능했겠지만, 선거 전의 얘기와 선거 후의 얘기가 달라지는 것은 특권 포기뿐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의 주요 선진국들이 모두 인정하는 의원들의 특권을 폐지하는 것이 간단치 않은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특권 폐지에 반대하고 있다. 이 문제는 특권이 인정된 이유, 장단점 등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최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수사를 둘러싼 방탄국회 논란이 특권 폐지 논쟁으로 번졌고, 이제는 정치권을 넘어서 국민들 사이에도 국회의원들의 특권 폐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야당 대표를 구속하는 것은 국회의 정상적 운영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과거 대통령을 탄핵으로 파면시키고, 이어서 형사처벌까지 받게 했던 것을 생각하면 야당 대표라고 대통령보다 더 특별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더욱이 최근 국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매우 높은 상태여서 정치개혁을 앞세운 국회의원들의 주장까지도 불신하고 있다.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국회의원 정수 확대 주장이 사실상 무산된 것도 그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국회의원들의 특권에 대해서도 국민들 사이에 회의적 시각이 팽배해 있다는 점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들의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의 역사적 뿌리는 근대 의회제도를 가장 먼저 발달시켰던 영국에서 찾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불체포특권이 인정되었던 이유는 왕이 일부 반대파 의원들을 부적절하게 체포하여 의회에 불참하게 만들고, 그로써 의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막는 데 있었다.

예컨대 왕당파 의원들보다 반대파 의원들이 다수여서 왕이 추진하는 주요 정책이 의회의 반대로 무산될 수 있는 상황에서, 왕이 일부 반대파 의원들을 체포하여 의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만들면 어떻게 되겠는가? 결국 왕당파 의원들이 출석한 의원 중의 다수로써 의회를 주도하게 될 것이며, 결국 반대파를 사실상 무력화시키면서 왕의 정책이 관철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이 계속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 의회 회기 중에는 의회의 동의 없이 의원을 체포할 수 없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즉, 의원들을 위한 특권이 아니라, 의회의 정상적 기능을 위해 인정된 특권인 것이다.

현대 국가에서도 유사한 위험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과거의 입헌군주제 또는 권위주의 정부처럼 노골적인 야당 탄압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근소한 차이의 여소야대 상황에서 몇 명 야당 의원들의 비리가 포착된다면, 그리고 이를 잘 활용하여 결정적인 순간에 수사를 시작하고, 체포함으로써 국회를 여당 주도로 운영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면, 이를 외면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도 여야를 막론하고 위성정당이나 위장탈당이라는 탈법적 수단을 외면하지 못했던 것처럼…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민주화되어 있다는 영국이나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의 주요 선진국들이 여전히 불체포특권을 인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록 오남용의 가능성이 없지 않으나, 이 제도를 폐지했을 때 정부가 수사권을 오남용하여 야당을 억압하고, 의회를 파행으로 몰아갈 경우에 발생할 위험성은 더욱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불체포특권 오남용의 문제가 작다는 것도, 이를 무조건 감수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이 애초에 불체포특권이 인정된 취지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특정 의원의 비리를 감싸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며, 방탄국회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국민들의 정치불신을 심각하게 만드는 중대 요인의 하나다.

다만, 문제해결의 방향은 불체포특권의 폐지가 아니라 불체포특권의 합리화에서 찾아야 한다. 방탄국회를 막기 위해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는 것은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므로 불체포특권의 기능을 살리는 가운데 오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런 방안은 중장기적인 것과 단기적인 것으로 나누어서 검토될 수 있다.

먼저 중장기적인 방안은 헌법을 개정하여 불체포특권의 행사 요건을 강화하는 것이다. 예컨대 회기 중 의원의 체포에 관한 국회 동의에서 “국회의 정상적인 운영을 해칠 심각한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체포동의안을 부결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하면 불체포특권의 오남용이 상당히 억제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와 관련하여 세부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단기적인 대안으로는 헌법개정 이전이라도 국회법을 개정하여 불체포특권과 관련한 절차를 개선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컨대 최근 정치권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기명투표의 방식도 고려될 수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불체포특권의 행사 방식에 대한 엄격한 절차적 통제가 될 것이다.

예컨대 체포동의안에 대해서는 국회 내에서 공개적인 찬반토론을 반드시 거치도록 하고, 체포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해당 의원의 체포가 왜 부당한 것인지, 그리고 국회의 정상적 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충분히 소명하도록 함으로써 체포동의안이 정당한 것인지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당리당략적 표결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탄국회가 계속된다면, 그 결과는 전형적인 소탐대실이 될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을 국민이 지켜볼 것이며, 다음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므로.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비상임위원 △ 경찰청 인권위원회 위원장 △전 국회 개헌특위, 정개특위 등 자문위원 △전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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