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선의 중국보고] 구멍 뚫린 전투기에서 매화로...화웨이 '정상궤도'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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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둥성 선전(중국)=배인선 특파원
입력 2023-04-04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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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화의 향연' 화웨이 실적발표장

  • 엄동설한 꽃 피우는 '굳은 의지' 상징

  • 美 제재에도 성장 자신감 표현

3월 31일 중국 광둥성 선전의 화웨이 본사 캠퍼스에서 열린 실적발표회장. 이날 실적발표 프레젠테이션 화면에는 가지 위로 꽃봉우리를 피우는 매화 꽃 사진을 넣었다. [사진=배인선 기자]

매화의 꽃말은 강인함과 고결함이다. 매화는 이른 봄의 추위를 무릅쓰고 제일 먼저 꽃을 피우며 봄을 알린다. 추위를 이기고 꽃을 피워 예로부터 '굳은 의지'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난초·대나무·국화와 함께 사군자(四君子)라 하여 선비의 절개를 뜻하기도 한다. 과거 1929년 중화민국 국민정부는 매화를 국화(國花)로 지정했으며, 아직도 중국 남부 지역 사람들은 매화를 중국의 국화라고 주장한다.(중국은 공식적으로 국화가 없다)

지난 31일 오후, 중국 광둥성 선전에서 열린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2022년 실적발표회장에 매화가 등장했다. 이날 행사는 매화로 시작해 매화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웨이는 미국의 엄혹한 제재에도 굴복하지 않고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란 굳은 의지를 매화를 내세워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이날 실적발표 행사장에 들어서자마자 무대 앞 대형 프레젠테이션 화면에 넣은 꽃봉오리를 피우는 매화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기자가 받은 미디어 출입증 카드도 매화사진으로 꾸며졌다.
 
이날 쉬즈쥔 화웨이 순환회장은 화웨이를 매화에 비유했다. 그는 “매화향이 널리 풍기는 것은 엄동설한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직면한 압박은 거세지만 우리는 성장의 기회와 차별화된 경쟁력, 고객과 파트너의 믿음이 있고,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며 “자신감으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지속적인 생존과 발전을 실현할 것”임을 강조했다.
 
멍완저우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CFO)도 실적 발표 말미에 ‘눈 내린 후 매화가 나뭇가지에 짓눌려 있어도, 봄은 이미 다가와 햇살이 내리쬔다(雪後疏梅正壓枝 春來朝日已暉暉)’는 송나라때 시(詩) 구절을 인용하며 “우리는 압박을 받으면 더 강해진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실제로 화웨이는 지난해 비록 소폭이지만 0.9%의 매출 성장세를 올렸다. 순익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2021년과 비교해 68.7% 하락했지만, 매출의 4분의1 이상을 연구개발(R&D) 투자로 쏟아부은 게 포인트다. 미국의 제재에도 과감한 R&D 투자로 화웨이의 미래 혁신 성장을 이뤄내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읽혔다.
 

3월 31일 화웨이 실적발표회 후 열린 만찬행사에서는 매화를 테마로 한 음식들을 선보였다. [사진=배인선 기자]

실적 발표 후 마련된 만찬장도 그야말로 '매화의 향연'이었다. 곳곳이 매화꽃으로 장식돼 있는 것은 물론, 뷔페 음식 대부분도 매화를 테마로 했다. 매화 꽃모양으로 자른 버섯이 고명으로 올라간 전복 닭고기탕, 매화 꽃장식의 쿠키와 푸딩, 유리잔을 매화로 장식한 칵테일까지. 춤추는 발레리나들이 붓으로 매화꽃을 그리면서 ‘매화의 향기는 혹한에서 나온다(梅花香自苦寒來)’는 글씨를 써넣는 발레 공연도 선보였다.
 

3월 31일 열린 화웨이 실적발표회 후 만찬행사에서 발레리나가 '매화'를 주제로 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배인선 기자]

문득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대상에 올랐던 과거 2019년,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주가 회사 곳곳에 걸었던 포스터 그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공격을 받아 날개에 구멍이 숭숭 뚫린 채 날고 있는 소련제 일류신(Ilyushin) 전투기 사진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격으로부터 소련군을 구한 불사신으로 '불굴의 의지'를 상징한다.
 
포스터 아래에는 '온몸이 흉터투성이 아니었다면 어찌 지금의 튼튼한 몸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영웅은 본래 시련을 통해 끊임없이 단련되는 것이다(沒有傷痕累累, 哪來皮糙肉厚,英雄自古多磨難)'라는 문구가 쓰여져 있었다. 이 전투기 사진은 당시 화웨이 건물 곳곳에, 직원들이 쉬는 휴게실에도, 커피숍 쟁반과 컵홀더에까지 새겨졌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공격을 받아 날개에 구멍이 숭숭 뚫린 소련제 일류신(Ilyushin) 전투기. [사진=웨이보]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의 제재로 화웨이는 전시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런정페이의 딸 멍완저우 CFO는 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미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2018년 12월 캐나다 밴쿠버 국제공항에서 현지 경찰에 의해 체포돼 구금된 상태였다. 2021년 9월 풀려나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올해 4월 1일부터 처음으로 화웨이 순환회장직을 수행한다. 
 
기자가 광둥성 선전에 가서 목격한 화웨이는 더 이상 구멍 숭숭 뚫린 소련제 전투기가 아니었다. 수년간의 과감한 연구개발(R&D) 투자와 신사업 개척으로 차츰 위기 모드에서 벗어나 정상궤도로 비상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치 엄동설한을 겪은 매화가 이른 봄 가장 먼저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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