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의 100투더퓨처] 만년의 갈등: 금주(禁酒)와 절주(節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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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교수
입력 2023-03-2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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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교수]


선사시대부터 인류는 술을 빚어 마시면서 흥을 내고 서로 어울리며 즐겨왔다. 하지만 음주가 초래하는 여러 부작용으로 음주에 대해 갑론을박하여 왔다. 심지어 어떤 왕이나 일부 시민사회는 전면적인 금주령을 강요하기도 하였다. 과음의 위해성은 인정하면서도 적절한 음주와 철저한 금주 중에서 취사선택하여야 하는 주제는 인류가 출현해온 이래 지금까지 1만년이 넘도록 갈등해 온 주제다.
 
곡식이나 과일을 저장하고 누룩을 뿌려주면 원래의 재료와는 성질이 전연 다른 술(酒)이 만들어지고, 방치하면 식초가 되어 버린다. 따라서 술의 양조 과정에는 정성과 정교함이 필요하다. 또한 술은 증류하면 흥을 돋우는 성분이 사라져버린다. 이런 현상에 주목하여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곡물이 술이 되는 과정을 발효(醱酵·zymosis)라고 불렀고, 식초가 되어 버리는 과정을 부패(腐敗·sepsis)라고 규정하였다. 발효는 생명체의 성숙 과정의 일환으로 보고 이 과정에 등장하는 알코올이 바로 혼(魂·psyche)이며 특정한 목적을 향한 성질이라고 규정하였다. 이어 그는 대자연을 구성하는 4원소인 물, 불, 흙, 공기에 술을 제5의 원소(quinta essentia)로 추가하였다. 술은 영적 요소가 들어 있다고 믿어져 접신 수단으로 여겼고 신(神)과 소통하기를 바라는 의례나 제례에는 필수품이 되었다. 나아가 술로 인한 일탈 행동에 대해서는 상당한 관용을 보였다. 더욱 불로장생을 희구하던 연금술 시대에 불로초로 빚은 장생주의 효과를 꿈꾸기도 한 것은 술에 대한 신비주의적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술을 빚는 데 원동력으로 알려진 누룩은 바로 발효 촉진제다. 주성분인 효모(yeast) 균주의 차이와 사용 방법에 따라 각종 발효 제품의 품질이 결정되며, 우리가 전통적으로 먹어온 된장, 간장, 고추장, 김치 같은 발효식품을 만든다. 한때 발효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한 일부 식자들이 젓갈이나 김치 등 발효식품을 썩은 음식으로 폄하하기도 하였다. 발효와 부패의 차이점은, 발효는 식품이 변하여 사람에게 이로운 영양소를 만들어 주고 맛을 내고 소화가 잘 되도록 하는 과정이지만, 부패는 사람이 이용할 수 없는 또는 이용해서는 안 되는 방향으로 식품을 변질시키는 과정이다. 발효는 인류 발전사에도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발효식품에 익숙하지 않은 서양식 관점에서 구조인류학자인 레비 스트로스 박사는 날것을 먹는 인간과 익힌 것을 먹는 인간으로 인류를 이분적으로 분류하고 야만과 문명을 논의하고 문화를 설명하였다. 그러나 이는 시정되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날것(The Raws)과 익힌 것(The Cooked)을 먹는 부류 이외에 삭힌 것(The Fermented)을 먹는 부류가 있기 때문에 인류는 삼분적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삭힌 것을 먹는 인간들은 장구한 역사를 통하여 독특한 전통 음식을 개발해 왔고 보다 끈끈하고 따뜻한 사회를 이루어 왔다. 최근 장내 세균총의 생리적 기능이 밝혀지면서 발효식품의 건강 효과가 크게 부상하고 있다. 발효식품 중에서도 최고의 압권은 술이다.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빚고 보관하는 양조법 차이에 따라 맛과 품격이 천양지판인 술의 등장은 인류 역사에 엄청난 사건이며 문화적 대업적이다. 따라서 벗들과 어울려 나누는 술잔은 삶의 질을 고양하며 최고의 술을 맛보았을 때 느끼는 황홀함은 신을 접하는 기쁨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음주가 건강과 관련하여 자주 경고를 받는 이유는 술 때문에 건강을 해치는 사람들이 많다는 우려다. 주로 위와 간을 통하여 대사되기 때문에 알코올이 과부하되면 조직에 손상이 일어나며, 신경억제 기능이 있기 때문에 행동에 문제를 일으킨다. 약물치료 시에는 술이 약물과 상호작용하여 부작용을 빚을 수 있다. 일부 호사가들은 알코올이 WHO가 규정한 발암물질 중 하나임을 강조하면서 경고하기도 한다. 건강상 이유만이 아니라 음주로 인한 다양한 사건·사고나 경제적 손해 등도 실질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술을 전면 금지하는 것이 옳을까? 이에 반박하는, 실제로 음주가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보고들도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 이 중 가장 흥미로운 결과는 음주와 사망률의 상관관계에 관한 인구통계학적 자료다. 이 자료에서 음주와 사망률 간에는 뜻밖에 전형적인 U자 패턴을 보여준다. 절주하는 군이 과음하는 군이나 금주군에 비하여 유의하게 사망률이 낮다는 결과다. 적절한 음주는 오히려 생명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다.
 
적절한 음주인 절주(節酒)를 규정하고 음주 허용 범위를 결정하는 논의를 진지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사실상 절주의 범위를 규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다만 장수한 인간의 생활 패턴에서 자료를 엿볼 수 있다. 세계적 장수 지역인 블루존 주민들의 생활습관을 본받아 그대로 실천하여 건강수명을 연장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시민운동인 ‘파워9’의 행동강령에 ‘Wine at 5(5시에 와인 마시기)’라는 항목이 있다. 전 세계 대부분 장수 지역 주민들은 하루 한 번 정도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습관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제안된 생활습관 개선 행동강령 중 하나가 매일 와인 한두 잔씩 마시기다. 친구들이나 이웃들과 술을 나누면서 함께 기쁨과 아픔을 푸는 것은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최고의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이루어진 정신적 평안은 다양한 신체 질환에 대해서도 유의미한 예방 효과가 있음이 밝혀졌다. 실제 세계 최장수인인 장 칼망은 122세 넘게 살면서도 매일 와인을 즐겼으며, 우리나라 백세인 들도 100살이란 나이에 상관없이 상당수 음주를 즐기고 있었다.
 
인류가 1만년이 넘도록 고민해 온 음주 문제는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적당량의 음주는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무조건 금주만이 해법은 아니다. 다만 중세시대 최고의 연금술사이면서 화학의 아버지가 되는 파라켈수스가 보낸 경고를 명심하여야 한다. “모든 것은 독이며, 독이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용량만이 독이 없음을 정한다”고 갈파하면서 유불리(有不利)를 따지는 데 양적 조절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동양에도 중용(中庸)과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오랜 가르침이 있다. 이러한 동서양의 원칙을 일상생활에 그대로 적용하여 음주에 임하여야 한다.


필자 박상철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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