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집중투표제, 시행령 개정만으로도 주주권익 보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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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빈 기자
입력 2023-02-2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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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 [사진=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작년 9월 금융위원회 주재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정책세미나가 개최됐다. 동 세미나에서 김우진 서울대 교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일반 주주와 지배주주 간 이해상충’을 꼽았다. 기업의 의사 결정이 일반 주주 권익을 훼손할지라도 지배(최대)주주 이익을 위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때가 많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 중 약 77%를 설명하는 코스피200 상장사의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율 평균치는 41%로 대부분 절반을 넘지 못한다. 1주 1의결권 원칙을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대부분 절반 이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를 위한 의사 결정이 기업에서 이루어지는 것일까?

답은 이사회에서 찾을 수 있다. 회사의 거의 모든 주요 경영 의사 결정은 주주가 선임한 이사들로 구성된 이사회를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주주의 대리인이 모인 이사회가 주주를 위해 어떤 의사 결정을 하는지가 주주의 이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점은 주주라는 동일한 집단 안에서도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것이다. 예컨대 일반적인 개인 주주가 A기업 주식을 산다면 이는 A주식 가격이 오르거나 혹은 A기업에서 많은 배당금을 받을 기대로 주식을 매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A기업의 최대주주는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경영권 상속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주가가 오를수록 내야 할 상속∙증여세만 늘어날 뿐만 아니라 배당금을 받더라도 최대 49.5%를 종합소득세로 내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국내 기업은 최대주주 측 인사만으로 이사회가 구성되어 최대주주를 위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점에서 소수 주주로 남을 수밖에 없는 대부분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 투자를 꺼리게 되고, 이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소수 주주의 입장을 대변할 이사가 이사회에 1명이라도 입성할 수 있어야 한다. 이사는 이사회에 상정된 의안에 대하여 찬부의 의사 표시를 할 수 있고 이것이 이사회 의사록으로 남을 뿐만 아니라 회사의 정책 결정을 위한 조언과 전문지식을 제공하고 기업 경영에 긴밀히 관여할 수 있으므로 주주총회에서 선임된 일반 주주 측 이사는 다른 이사들이 최대주주 측 인사로 구성되어 있더라도 큰 영향력을 지닌다. SM엔터테인먼트 사례에서도 이사는 아니나 주주 제안 측 감사가 선임된 이후 라이크기획과 계약 종료 및 지배구조 개선 방안 발표까지 이어진 좋은 선례를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소수 주주가 추천하는 이사가 선임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제도가 바로 집중투표제다. 집중투표제란 2인 이상 이사를 선임할 때 각 주주의 의결권 수를 ‘보유 주식 수 x 이사의 수’로 하고 이를 후보 한 명에게 집중하여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집중투표제 적용 시 최대주주 측보다 적은 주식 수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1명 이상 이사를 소수 주주 측이 선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집중투표제는 IMF 이후 경영감시 장치 강화와 소수 주주를 통한 지배구조 개선 목적으로 상법 개정을 통해 도입되었다. 집중투표제 도입 방식에는 ①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방식 ②집중투표제를 원칙으로 하지 않되 정관에 의해 도입할 수 있도록 하는 Opt-in 방식 ③정관에 언급이 없으면 집중투표제를 실시하는 것이고, 이를 배제하기 위해 정관에 규정을 두어야 하는 Opt-out 방식 등 세 가지가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도입 당시 미국법과 일본법을 참고하여 세 번째인 Opt-out 방식을 도입하였다. 이에 국내 상장사 대부분은 정관을 통해 집중투표제를 배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경련에 따르면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하는 국내 175개 기업 가운데 집중투표제를 채택한 기업은 약 5%에 불과하다. 그리고 채택 기업은 상당수가 공기업이며 민간기업에서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사례는 거의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집중투표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지면서 집중투표제를 아예 의무화하자는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국회에서도 2016년에는 김종인 의원안·채이배 의원안·노회찬 의원안으로, 2020년에는 박용진 의원안으로 집중투표제 의무화에 대한 상법 개정안이 발의된 바 있다. 그러나 재계 반대에 부딪혀 발의된 개정안에 대한 입법은 모두 무산되었고 반대 여론을 감안할 때 향후에도 상법 개정을 통한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법 개정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집중투표제 적용을 확대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 상법 제542조의 7에 따르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상장회사가 집중투표가 배제된 정관을 집중투표제를 배제하지 않도록 변경하려는 경우 3%를 초과하는 지분을 가진 주주는 그 초과분에 대하여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 규정을 활용하면 필요시 소수 주주들도 다른 소수 주주들에게 협조를 구하여 정관 개정을 통해 지배구조 이슈가 있는 기업에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고 이사 1~2명을 진입시킬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상장회사’는 상법 시행령 제12조에 따라 최근 사업연도 말 현재 자산총액이 2조원 이상인 상장회사로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해당 조건에 부합하는 상장회사는 2021년 말 기준 총 252개로 코스피와 코스닥 상장회사 중 약 10%에 불과하다. 거버넌스 문제는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음에도 규모가 큰 회사에서만 3% 룰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정부의 의사 결정으로 본 시행령을 개정하여 자산총액 기준을 2조원이 아닌 1000억원으로 낮춘다면 어떨까? 이렇게 되면 2021년 말 기준 대상 기업은 1639개로, 코스피와 코스닥 상장회사 중 약 67%에 달한다. 현행 대비 추가로 약 1400개 기업에서 집중투표를 통해 소수 주주 측 이사가 선임될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것이며, 소수 주주들의 주주행동 움직임이 중소 규모 상장사에서 비교적 활발하다는 점에서 큰 파급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원회는 작년 물적분할 시 일반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 부여하도록 시행령을 개정하고, 올해에는 기업 인수합병 시 의무공개매수 도입을 추진하는 등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기준과 방법에 관해서는 더욱 섬세한 논의가 필요하겠으나 앞에서 제안한 대로 법 개정 없이도 시행령 개정만으로도 주주 권익을 보호하고 기업 거버넌스를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이 방안에 대해서 지금과 같은 시점에 범사회적 논의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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