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처, '2월 6·25전쟁 영웅'에 최종성 공군 중위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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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래 기자
입력 2023-01-3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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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월 독립운동가'는 송몽규·안창남·김필순 선생

 

한국전쟁(6·25전쟁) 당시 적 보급로 차단 등 후방 차단 작전에서 공을 세운 고(故) 최종성 공군 중위(당시 계급 소위) [사진=국가보훈처]


국가보훈처가 2월의 6·25전쟁 영웅으로 최종성 공군 중위를, 2월의 독립운동가에 송몽규·안창남·김필순 선생을 31일 선정했다.
 
최 중위는 1931년 경남 거창 출신으로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6월 공군 조종 간부후보생 제1기로 입대했다. 최 중위는 공군 제10전투비행전대 소속 F-51 전투기 조종사로서 1952년 9월23일 경기도 가평 현리와 강원도 회양의 적 보급물 집적소를 파괴하는 작전에 참가했다.
 
최 중위는 특히 같은 해 10월16일과 20·25·27·30일엔 하루 2차례씩 출격해 강원도 고성·원산 등지에서 적(敵) 보급로를 차단하고, 병력 집결지와 군용 시설을 공격해 적 전력에 타격을 입혔다. 최 중위는 공적을 인정받아 1952년 10월24일 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2일, 후방 차단 작전 임무 수행을 위해 강원 원산 남쪽 안변 지역으로 출격했다가 지상에 대량 배치된 적 대공화기의 공격을 받고 전사했다.
 
2월의 독립운동가에 선정된 송몽규 선생은 윤동주 시인 사촌 형으로 1917년 중국 용정에서 출생했다. 명동학교와 은진중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받고, 백범 김구가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에 입학시킬 청년들을 수용하기 위해 설립했던 학생훈련소에 입소했다. 선생은 일제의 조선어문 소멸 유도 등 민족말살정책을 비판하고, 세계의 동정을 얻어 조국 독립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등의 이유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돼 1945년 3월 28세 나이로 옥중 순국했다.
 
안창남 선생은 1901년 서울에서 태어나 1919년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비행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일본으로 가서 1920년 8월 오구리(小栗) 비행학교에 입학했다. 안 선생은 1926년 항일무장투쟁에 참여하고 있던 산시성 군벌 염석산 군(軍)의 항공사령관으로 활동했고, 1928년 신덕영 등과 함께 대한독립공명단을 조직했다. 특히 무관학교를 설립하고 조선인 군대를 양성해 국내 진공 작전을 구상했다. 하지만 그는 1930년 4월 산서비행학교에서 비행훈련 중 기체 고장으로 인해 29세라는 이른 나이에 산화했다.
 
김필순 선생은 1878년 황해도 출생이다. 1886년 배재학당에 입학했고 1899년 제중원에 들어가 올리버 알 애비슨 통역과 조수로 일했다. 김 선생은 1916년 8월 일제 감시와 간섭이 심해지자 통화현을 떠나 내몽고 치치하얼로 이주했다. 그는 치치하얼에서 북제진료소를 개원하고 의료활동에 종사하면서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애쓰던 중 1919년 9월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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