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칼럼] '확전 각오'한 尹대통령…한반도 전쟁 막을 방법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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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시사평론가
입력 2023-01-10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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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시사평론가]


“만일 여러분이 저들에게 양보하면, 저들은 여러분이 두려움 때문에 그것을 들어주었다고 생각하고서는, 즉시 다른 더 큰 무언가를 요구해 올 것입니다. 반면 여러분이 단호히 거절하면, 저들에게 우리를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게 될 것입니다.”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선전포고에 개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아테네 민회에서 페리클레스가 했던 연설의 일부이다. 페리클레스는 한번 양보하기 시작하면 더 큰 것들을 양보하게 될 것이며, 아테네는 결국 선조들이 애써 지켜온 자유를 잃고 예속될 것이라 경고하며 아테네인들의 결연한 태도를 촉구했다.

요즘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의 페리클레스가 된 듯한 모습이다.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 무인기 침범 등의 도발이 잇따르면서 윤 대통령의 발언도 갈수록 수위가 올라가고 있다. 북한 무인기 침범 직후 윤 대통령은 “북한 무인기 1대에 우리는 2~3대를 올려보내라”고 지시했다. “확전의 각오로 임했다”는 것이 대통령실의 설명이었다. 그 다음 날에는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확실하게 응징 보복하라. 그것이 도발을 억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며 “북한에 핵이 있다고 두려워하거나 주저해선 안 될 것”이라고 발언의 강도가 더해졌다. "다목적 임무를 수행하는 합동 드론부대를 창설하고 탐지가 어려운 소형 드론을 연내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라"는 지시도 했다. 방어적 대응을 넘어 유사시 북한의 지휘부 및 주요 군사적 시설에 대한 공격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 윤 대통령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미국과 핵에 대한 공동 기획, 공동 연습 개념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지시들에 대해 "윤 대통령이 북한의 도발에 대한 비례적 수준을 넘는 압도적 대응 능력을 대한민국 국군에 주문한 것"이라고 대통령실은 설명했다. 윤 대통령의 최근 일련의 발언과 지시들은 북한의 도발에 밀리는 일 없이, 북한보다 더 강한 무력으로 제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북한의 무인기가 우리 비행금지구역까지 진입했던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군은 물론이고 정부의 체면과 자존심에도 큰 상처를 입게 되었다. 윤 대통령의 대북 발언들이 계속 강경해지는 배경에는 상처받은 자존심의 회복 필요성도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최전방에 설치된 대북 확성기 시설 점검에 착수하고 방송 재개에 대한 법률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의 확성기 방송은 2018년 4월 판문점 선언에 따라 시설이 모두 철거되었고 현재까지 방송이 중단된 상태다. 북한은 과거부터 대북 확성기 방송에 대해 격한 반응을 보여왔다. 그래서 2015년 8월에 우리 군이 11년 만에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 확성기를 조준해 고사총 1발과 직사화기 3발을 발사하기도 했다.

만약 앞으로 우리 군의 확성기 방송이 재개된다면 북한은 다시 조준 타격 등의 위협을 가하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려면 남북합의서의 효력이 정지되어야 법률적 문제를 피해갈 수 있다. 따라서 확성기 방송은 남북간 군사합의서의 효력정지라는 강경 카드와 맞물리는 일종의 패키지 조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이 다시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으키면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국가안보실에 지시한 바 있다.

이제까지 설명한 윤 대통령의 ‘강 대 강’ 의지에 대해 환영하는 사람들도 물론 적지 않다. 문재인 정부 시절 대북 유화 정책이 계속되었지만, 북한의 핵무기만 더욱 고도화 되었을 뿐 북한 핵문제는 끝내 해결되지 못했다. 그래서 더 이상 북한에 끌려다니지 말고 단호하게 대응하라는 여론도 상당한 편이다. 하지만 서울과 평양의 직선 거리가 195㎞ 밖에 되지 않는 환경에서 남북 간의 확전 혹은 전면전은 한반도 전체의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18세기를 살았던 철학자 칸트는 ‘추측해 본 인류 역사의 기원’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명화된 민족을 위협하는 최고의 악은 전쟁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실제의 전쟁보다는 오히려 미래의 전쟁에 대비한 지속적이면서 점점 더 증가하는 준비가 더욱 그러한 악의 근원이 된다. 국가의 모든 힘이 그것을 위해 사용되며, 좀 더 위대한 문화를 위해 쓰일 수도 있을 문화의 결실들도 그것을 위해 사용된다.”
북한이 계속 도발하고 있는데 고담준론만 말하고 있다고 반박할지 모른다. ‘확전 각오’ 의지로 강력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북한을 무슨 수로 제압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힘들더라도 그 방법을 찾으라고 정부가 존재하는 것이다.

보수 정부가 집권하고 나면 남북관계가 긴장국면으로 가는 패턴이 지난 몇 개 정부를 거치면서 반복되어 왔다. 보수층의 대북 정서에 맞추어 대북 강경 정책을 펴는 것이 보수 정부의 길로 여겨져왔다. 그래서 보수는 대북 강경 정책을 지지하고, 진보는 대북 유화 정책을 지지하는 구도가 형성되어 왔다. 하지만 우리 정치사를 돌아보면 ‘보수=대북 강경’의 등식이 항상 성립했던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남북대화의 물꼬를 터서 7·4 남북공동성명이라는 역사적 결과물을 낳았던 것은 박정희 정부라는 보수 정부였고, 남북 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선언 채택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디딤돌을 쌓은 것도 노태우 정부라는 보수 정부였다. 남북관계는 보수냐 진보냐 하는 이분법에 따라 좌우될 것이 아님을 지난 정치사는 보여주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북한의 위협과 도발 행위가 계속되고 있지만, 최악의 파국으로 치닫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는 것은 변함없는 정부의 책임이다. 한반도의 군사적 상황이 통제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전쟁에 참전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추악하고 잔인한 전쟁의 참상을 기록하고 있다. 그 끔찍한 기록을 통해 알렉시예비치가 남겼던 말은 “사람이 전쟁보다 귀하다”는 것이었다. 모든 전쟁은 이기고 지는 것에 관계없이 참혹하다. 이기는 전쟁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임을 잊지 말아주기 바란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사이버대학교 NGO학과 외래교수 ▷전 한림대 사회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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