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띠 바짝 졸라맨 기업들···생산도, 투자도, 사람도, 다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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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가림 기자
입력 2022-12-30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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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익성 악화·자금조달비 급등에 위기감

  • 일부 자산 매각해 선제 유동성 확보도

  • "경기침체 6개월 후 본격 고용 한파 온다"

전자·석유화학·자동차·시멘트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올해 투자를 축소하거나 생산설비를 감산 운영하는 등 비상 경영 체제에 속속 나서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원자재 가격·금리 상승, 소비심리 위축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하고 자금조달 비용이 치솟은 탓이다. 업황이 부진한 국내 기업들은 내년 투자 계획도 최대한 보수적 관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다. 내년 기업들의 ‘허리띠 졸라매기’가 본격화되면서 역대급 고용 한파가 몰려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주요 임원들에게 ‘줄일 수 있는 것은 최대한으로 줄이라’는 지침을 전달했다. 이에 3년 차 이상 직원 100~200명을 대상으로 한 해외 연수 프로그램을 취소하거나 내년 1월 예정된 가전·IT 전시회 CES 참석 인원 축소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가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나선 것은 올해 글로벌 경기침체 등으로 TV 수요 위축이 이어진 가운데 내년 사업 환경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위기 의식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 3분기 세계 TV 시장은 248억9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3.1% 감소했다. 이에 따라 세계 TV 시장 점유율 1위인 삼성전자의 올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29% 줄어들 전망이다. 

LG그룹도 배터리 사업부문을 제외한 전자, 가전제품 등 분야에서 긴축경영에 나서고 있다. LG전자는 연초 4조5669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세웠고 상반기 2조원 규모의 설비 투자 및 연구·개발(R&D)을 했다. 계획대로라면 하반기 2조5000억원의 투자를 단행해야 하지만 기존 전망과는 다르게 움직이는 시장 상황에 투자 금액도 변동될 공산이 크다. 

LG전자는 TV 사업이 2분기부터 적자로 돌아서면서 출하량 조절에 나선 상태다. 계열사인 LG디스플레이도 OLED 판매 비중의 40%를 차지했던 유럽 수요가 크게 줄어들면서 국내 파주 공장의 가동률을 줄였다. 올해 시설투자비도 당초 계획보다 1조원 이상 줄였다. 

올해 시황 하강 국면으로 실적 하락을 면치 못한 반도체업계도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SK하이닉스는 임원 및 팀장 활동비와 업무추진비를 각각 50%, 30% 줄였다. 직원들의 사기 등을 의식해 경영진이 공식적인 지침을 내놓을 수 없지만 임원을 대상으로 비용 절감 방안을 강조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내년 투자비도 10조원대 후반으로 예상되는 올해 투자액 대비 50% 감축할 방침이다. 내년 세계 반도체 시장 매출이 올해 대비 4%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면서다. 반도체, 전자부품을 공급하는 삼성전기도 3~4분기에 국내외 공장의 가동률을 줄였다.

원자재 가격 폭등의 직격타를 맞은 정유·석유화학업계와 시멘트업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현대오일뱅크는 3600억원 규모의 상압증류공정(CDU) 및 감압증류공정(VDU) 신규 투자를 중단했다. 한화솔루션도 1600억원 규모의 질산유도품(DNT) 시설 신규 투자 계획을 철회했다. 

올해 환율 상승으로 정유사들의 원유 매입에 부담이 커진 데다 정제마진(석유제품 가격에서 원료비·수송비 등을 뺀 금액)이 배럴당 0달러까지 하락하면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업계 관계자는 “전방산업인 건설경기가 악화하고 소비재 수요가 감소했다”며 “국제유가의 급등락도 심해 투자 철회, 감산을 통해 물량 조절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멘트업계 1위 쌍용C&E의 경우 환율·금리 인상과 더불어 주요 원자재인 유연탄 가격이 톤당 400달러를 돌파하면서 내년에는 매년 1000억원 이상씩 투자했던 생산설비 개조 투자를 보류할 계획이다.

올해 외화환산손실 부담이 커진 항공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원·달러 환율이 13년 만에 1300원까지 오르면서 대한항공의 3분기 외환차손은 전분기 대비 두 배 이상 늘었다. 대한항공은 신사업인 민간 주도 우주산업에 대한 투자를 보류하고 운항증편 회복에 집중했다.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해운업계 HMM은 근속 10년 이상 육상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선제적으로 유동성 확보에 나서는 기업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투자 계획을 연초 9조2000억원에서 8조9000억원으로 줄였다. 올해 미국, 유럽 등 주요 국가의 판매 호조로 사상 최대 실적을 앞두고 있지만 내년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SK도 보유 중인 빈그룹과 마산그룹 등 일부 자산을 매각하는 등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중소·중견업종에서도 비슷한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중소기업의 대출 금리는 약 5%로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연쇄부도 공포가 커지고 있다. 한때 매출 1조원을 기록한 중견 자동차부품업체 이래CS는 만기도래한 전자어음 40억원을 갚지 못하면서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200명에 달하는 임직원과 협력사들은 일자리를 잃게 됐다. 경남 창원의 중견건설업체 동원건설산업도 어음 22억원을 막지 못하면서 70여곳에 달하는 협력업체들의 연쇄 도산이 우려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줄이은 투자 축소와 파산 탓에 금융위기 수준의 대규모 실업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는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침체가 온 뒤 6개월 후 본격적인 고용한파가 몰려온다”며 “연말부터 고용축소 움직임은 시작됐으며 기업들의 IT 전환에 따른 인력 감축이 맞물려 내년 대규모 고용한파가 몰려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수 기업이 입주한 서울 여의도 일대 모습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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