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영의 NK어프로치] 김정은, 스스로 출구 막고 최후 승부수 띄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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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영 前뉴시스 도쿄특파원·日와세다대 국제관계학 박사
입력 2022-10-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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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영 전 뉴시스 도쿄특파원·일본 와세다대 국제관계학 박사]



북한의 무력 도발이 아슬아슬하다. 북한은 올해 들어미사일을 44발이나 쏘았다. 탄도미사일은 엄연히 유엔의 제재 대상이지만 아랑곳하지 않은 지 오래다. 미사일 사거리도 한국을 겨냥한 단거리부터, 일본을 때릴 수 있는 중거리, 미국령 괌까지 도달할 수 있는 장거리까지 다양하다. 최근에는 북한 미사일이 일본 열도 위를 날아가 일본 국민이 경악하는 일도 벌어졌다.
한국을 겨냥한 위협은 더욱 노골화됐다. 올해 초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를 시작으로 북한판 에이태큼스(KN-24), 초대형 방사포(KN-25) 등을 연이어 발사했다. 지난 14일 새벽에는 동·서해 완충구역으로 총 560여 발의 포 사격을 한 데 이어 18일과 19일에도 계속했다. 마치 불꽃놀이라도 하는 듯하다. 북한의 포들은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로 설정한 동·서해 완충구역 내에 떨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이 군사합의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북한은 지난 8일 강원도 원산 일대에서 전투기 150여 대(북한 주장)를 동시에 출격시켜 공격 종합훈련을 하기도 했고, 지난 13일 밤부터 14일 밤까지 하루 사이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전투기 10여 대로 위협 비행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일들은 최근 북한이 핵무력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법제화를 통해 굳건히 하는가 하면 한국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위협하고 있는 가운데 벌어지고 있다.
북한이 말과 행동을 총동원해서 보여주고 있는 이러한 군사 도발은 빈도나 강도에서 위협적인 것이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북한 나름대로 군사 충돌 위험을 고도로 통제하고 면밀하게 계산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북한의 도발적 행동은 대내외의 총체적 상황에 대한 나름의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대외적으로는 우선 한국의 보수 정권이 보여주는 원칙적이고 강경한 대북정책이, 문재인 정권이 그리워질 정도로 만만치 않게 느껴졌을 것이다. 여기에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북한 비핵화 실현 원칙에 입각한 대북 제재의 지속과 강화가 북한의 호흡을 가쁘게 하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친러시아 진영에 대한 강한 압박이 북한에도 적잖은 부담이 됐을 수 있다. 또 미·중 대결로 인한 중국의 입지 약화가 북한에도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이 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이 미국과 협상에 응하는 경우일지라도 현재의 미·중 갈등 속에 중국이 미·북 접근을 호의적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국이나 러시아나 자신들 앞가림하기 급급해 북한에 대한 지원은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 내부 사정도 갈수록 악화일로다. 북한 주민의 민심에 나침반 역할을 하는 식량난도 여전하다. 미국 농무부 산하 경제조사 서비스는 최근 북한의 올해 쌀 생산량이 지난해와 같은 수준인 136만톤일 것이라고 추산했다. 수백만 명이 아사한 ‘고난의 행군’ 시기였던 1994년 150만톤보다 적은 수준이다. 북한은 올해 극심한 가뭄으로 이모작이 어려웠고, 6월부터 8월까지는 폭우로 인한 홍수로 농경지가 대거 침수됐다.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여름은 옥수수가 나오는 철인데도 장마당의 쌀 가격이 올라 주민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보통 1㎏에 북한 돈 5000원대를 유지하던 쌀 가격이 6000원대로 20% 이상 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난의 행군’ 때처럼 무장 군인들이 협동농장의 탈곡장을 지키는 장면이 다시 등장했다. 황해남·북도 탈곡장에서는 옥수수를 훔치려는 주민들과 군인들 사이에 폭동 수준의 난투극이 벌어졌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코로나19에 따른 봉쇄 조치는 북·중 무역이 일부 재개되는 등 다소 완화됐지만 국가 물자 위주의 무역만 이루어지고 있어서 아직도 북한 주민들 삶을 옥죄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난의 행군’ 시기 배급제도가 무너진 북한 주민들의 생활은 이미 오래전부터 ‘장마당’에 의존하고 있다. 공장 대부분이 멈춰선 북한에선 ‘장마당’에서 팔리는 물건들이 거의 중국에서 들어오고 있어 코로나19에 따른 봉쇄는 주민들 삶을 낭떠러지로 모는 것과 다름없다.
북한이 요즘 대외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데에는 이러한 내부의 어려움을 고려해서 주민 결속 효과를 노린 측면도 없다고 하기 어렵다. 북한이 군사 도발의 이유를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갖다 대는 것은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부적으로 지금까지보다 훨씬 요란했다는 것이 북한 소식통의 전언이다.
지난 8월 실시된 한·미 연합군사훈련 당시 북한 당국은 8월 29일 주민들에게 “이번 연습은 우리 공화국을 불의에 군사적으로 타고 앉기 위한 북침 공격 연습”이라면서 “과거보다 훨씬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선전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날부터 평양 시내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밤 10시를 기해 공습경보 훈련도 했다. 북한이 방어적 성격의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내부적으로도 한층 긴장을 고조시킨 것이다.
물론 김정은이 내부용으로만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가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얼마나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지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도 잘 드러나 있다. 2019년 8월 5일자로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분을 인용해 본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은 도대체 누구에 대한 것이며 봉쇄시키려 하고 물리치려고 하며 공격하려는 대상은 누구입니까?”
“지금이나 미래에나 한국군은 우리의 적수가 될 수 없습니다. 한국군은 제 군대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더욱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미군이 한국 사람들과 함께 이 같은 편집증적이고 과민한 행동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 측이 골칫거리로 인식하는 ‘미사일 위협’과 ‘핵 문제’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당신 측과 한국군의 군사적 행동들입니다.”
이 밖에도 김정은은 이 편지에서 “제가 그렇게 강력히 중단을 요청했던 미국과 한국의 전쟁 연습”이라거나 “한국과의 ‘군사 게임’과 ‘전쟁 연습’이 끝났을 때 제게 다시 연락을 주기 바랍니다” 등의 말을 하고 있다. 재미있는 대목은 이 긴 편지의 마지막 부분이다.
“모든 국가가 하는 아주 작은 미사일들의 성능 향상 실험 동안 각하께서도 언급하셨듯이 우리는 남쪽의 바보들을 약간 놀라게 했고 이는 퍽 재미있었습니다.”
김정은이 자신의 배포를 과시하면서 한국의 문재인 정권을 ‘바보’ 취급함으로써 트럼프에게 한반도 문제는 한국이 아니라 자신과 협상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북한이 지난 9월 핵무력 정책을 법으로 규정한 것은 국제사회의 비핵화 압력에 맞서 자신들의 핵무력은 더 이상 외부에서 왈가왈부할 일이 아님을 못 박으려는 의도일 것이다. 이 법에서 “핵무력은 국무위원장의 유일적 지휘에 복종한다”라거나 “국무위원장은 핵무기와 관련한 모든 결정권을 가진다”라고 규정함으로써 내부적으로 김정은의 권위를 더욱 강화하는 효과도 기대할 것이다.
북한은 현재로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완화할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현상 타파를 위한 한·미 때리기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국제 정세도 미국이 북한 핵 인정을 전제로 협상 테이블에 나올 가능성을 사실상 거의 없게 만들고 있다.
김정은으로서는 자신이 갈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할 것이다. 그 길은 작년 1월 제8차 당대회에서 ‘국방과학 발전 및 무기체계 개발 5개년 계획’을 제시하면서 내놓은 5대 전략무기일 것이다. 북한의 향후 핵·미사일 개발 시간표의 최우선 과제인 5대 전략무기는 고체연료 다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 장거리 순항미사일, 핵추진 잠수함, 변칙기동 탄도미사일, 극초음속 미사일이다. 이 계획하에 북한은 작년에 여덟 차례 미사일 시험발사를 했고, 올해에는 더욱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지금 핵 보유국을 넘어 핵강국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핵강국 지위에 올라서면 미국이 북한 비핵화가 아니라 ‘핵무기 감축 협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이 목표로 하는 핵강국의 여정에서 당장의 고비는 7차 핵실험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7차 핵실험은 북한으로서도 쉽게 넘기 어려운 레드라인(금지선)으로 여기겠지만 만약 이 선을 넘게 된다면 이후 상황은 김정은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모두의 예상도 뛰어넘는, 말 그대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일촉즉발의 위기가 될 것이다.


[미니박스]

북한은 지난달 8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에서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핵무력 정책)’를 법령으로 채택했다. 새롭게 발표된 핵무력 정책은 핵무력의 사명, 구성, 지휘통제, 사용 결정의 집행, 사용 원칙 등 총 11개 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한이 핵무력을 법제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 직후인 2013년 4월 ‘자위적 핵 보유국의 지위를 공공히 할 데 대하여’를 채택한 바 있다. 2013년에는 핵 보유국 지위를 강조했다면 이번 법제화는 핵무력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핵 사용에 관한 지침을 구체화했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핵무기 사용 조건에 있어서 임박·필요·불가피한 상황 등을 설정해 상대방의 핵 공격이나 재래식 공격과 상관없이 언제든 임의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해 놓은 것이다. 대내외적으로 핵무력 보유의 기정사실화를 넘어 핵무력 사용의 가능성까지 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윤영 필자 주요 이력

△이화여대 북한학 석사 △일본 와세다대 국제관계학 석·박사 △뉴시스 도쿄특파원 △<北朝鮮のリアル(북한의 현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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