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교 칼럼] 단기 성과 급급한 대미통상 행보 …멀리 바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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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입력 2022-09-2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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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근 정부의 대미 통상전략이 조급한 듯 보여 걱정이다. 특히 미국의 인플레이선 감축법(IRA) 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예상하지 못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든다. 물론 국내 정치권과 언론이 한·미 통상 이슈를 일방적으로 해석해 정부도 가만히 있다간 무능하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었던 사정은 이해된다. 그렇다고 해도 정부 대응은 신중해야 한다. 특히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공식·비공식 대응을 구분해야 하며, 우리와 유사한 처지에 놓인 우군을 찾아 공동 전선을 펴는 한편 미국 내 여론을 우리에게 우호적으로 만드는 등 종합 전략을 취해야 한다.
 
먼저 미국 IRA에 대한 정확한 실상을 알려 이것이 한국산 전기자동차 차별법으로만 잘못 인식되는 상황을 고칠 필요가 있다. IRA는 신재생에너지 개발과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중장기 에너지 전환, 그리고 의료 보장 확대가 핵심이다. 물론 신규 전기차 구매자에 대해 최대 7500달러까지 세액공제가 있다. 그러나 IRA 전체 예산 4330억 달러 중 약 86%에 달하는 3690억 달러가 신재생 에너지 생산과 기후변화 대응에 사용될 예정이며, 그중 전기자동차 보조는 최대 20% 수준이다. 즉, 미국 내에서 연간 거래되는 전기차 100만대 모두에 설령 보조금 최대 액수인 7500달러를 지급한다고 해도 해당 예산은 연간 75억 달러, 10년간 750억 달러 수준으로 3690억 달러 가운데 약 20%에 불과하다. 이는 풍력, 바이오매스, 지열, 태양열, 해상 발전 등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생산과 투자에 사용될 예산이 전기차 보조금의 약 4배에 해당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기차 분야에서 우리가 손해일 수 있으나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서는 수혜를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IRA를 미국의 한국산 자동차 차별로만 해석하는 것은 균형 잡힌 시각이 아니며, 때론 한·미 간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IRA에 대한 대책은 전기차만이 아닌 우리 산업 전체와 서비스의 대미 진출이라는 관점에서 만들 필요가 있다.

한편 IRA는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더 나은 재건법(BBB)’을 수정한 것으로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에는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러한 이유로 공화당 상원과 하원은 IRA 표결에 전원 반대표를 행사하였다. 만일 민주당 부통령이 없었다면 IRA 역시 상원에서 부결되어 BBB와 같이 폐기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IRA의 미국 의회 통과 사정을 안다면 그것이 아무리 문제가 있는 법안이라고 해도 대통령 서명 직후 ‘개정 요구’ 등을 언급하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이며 공허한 발언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외국산 전기자동차에 대한 차별을 이유로 WTO 제소를 언급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렵사리 통과한 법안에 대통령이 서명한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았는데, WTO 규정 위반으로 제소한다고 해서 미국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미국은 사실상 국내법이 국제조약보다 상위에 있는 국가다. 더욱이 WTO 분쟁 해결의 상소 기능이 정지된 마당에 WTO 제소는 실효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자칫 미국 내 극우 정치세력의 반발을 사 우리에게 필요한 미국 내 우호적 분위기 형성에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대응은 공식과 비공식 접근을 구분해야 한다. 중국과 벌이고 있는 기술패권 경쟁이 중요한 미국은 안보와 경제는 물론 기술과 가치를 공유하는 글로벌 전략 동맹으로서 한국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한국이 강력히 요청하면 미국도 우리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문제는 시기다.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행정부도 자기 코가 석 자다. 따라서 대미 통상에서 단기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며, 장기전으로 가야 실효성 있는 미국 측 반응을 기대할 수 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낮은 수준(low key)으로 미국을 대해 미국 정치권과 언론의 주목을 받지 않아야 하며, 비공식적으로 다양한 정부 간 채널을 통해 바이든 행정부 내 IRA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켜야 한다.
 
미국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IRA 문제점을 언급하는 것은 이해당사자인 기업이나 협회가 적절하다. 우리나라에 주재하는 미국 정부 관계자나 미국 언론은 우리 기업의 어려움과 호소에 더 귀를 기울일 때가 많다. 학계나 연구기관 등은 IRA가 가진 문제가 무엇인지, 특히 미국 관점에서 IRA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는 점을 찾아 기업이나 정부에 제공해야 한다. 우리와 유사한 상황에 처한 유럽이나 일본 등과 공조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당장은 문제가 없어도 결국 미국 내 생산이 아닌 한 IRA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앞서서 유럽이나 일본을 대변하는 모습은 적절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미국 내 의회와 싱크탱크를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우리의 대미 투자가 집중된 지역의 상·하원이 대상이다. 워싱턴 지역 싱크탱크를 활용하여 한국에 대한 우호적 환경 조성과 특별한 배려의 필요성을 미국 내에 전파시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를 위해 당연히 평소에 많은 투자와 지원이 필요한데 지금까지 정부는 대부분 이런 투자에 인색했다. 반세기 이상을 미국 워싱턴 싱크탱크에 투자하고 있는 일본과 대만이 이런 점에선 확실히 우리보다 고수다.


서진교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농업경제학과 △미국 메릴랜드대 자원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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