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30주년] 급변하는 미·중 관계, 한국의 선택에 쏠리는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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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 국제경제팀 팀장
입력 2022-08-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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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억7000만 달러. 1992년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었던 첫해 양국 간 교역 규모다. 그러나 30년이 흐른 지금 그 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 3015억 달러를 기록했다. 50배 정도나 늘어난 것이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며, 한국 역시 중국의 3대 교역 대상국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최근 양국 관계는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과 중국이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며, 세계 경제질서를 이끌었던 이른바 '차이메리카' 시대의 균열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미국과 중국은 각각 소비와 생산으로 역할을 나누면서 상호 협력적·의존적 관계 속에서 발전을 이어왔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미국의 대중 정책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피벗 투 아시아(Pivot to Asia)' 정책을 주장하면서 본격적 견제에 나섰다. 2016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반중국 기조를 노골적으로 내세우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 집권 뒤 미국의 대중 압박은 더욱 강해졌다. 특히 코로나19 확산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전 세계 경제를 유기적으로 연결했던 세계화 기조는 급속히 쇠퇴했다.

미국은 최근 들어 경제 안보의 중요성에 방점을 두는 정책을 연일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 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으로 자국 산업 보호와 육성에 본격적으로 나섰을 뿐만 아니라,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등 자국 주도의 경제 블록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에 지난 30년간 꾸준히 성장해 온 한·중 관계의 미래가 어느 때보다 불확실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의 선택은 어디에?···미국 '모호한' 한국 외교정책에 대한 경계↑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나날이 악화하는 가운데 미국은 한국의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은 인도·태평양 지역 내 가장 가까운 우방국이기는 하지만 중국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달 초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이 대만을 방문한 이후 한국을 찾았을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 만남이 불발된 것을 두고 미국 언론에서는 여러 가지 분석이 나왔다. 대만 문제로 미국과 중국이 첨예한 심리전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중국을 배려한 행보를 보인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미국 외교 전문 매체 더 디플로맷은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은 정말 중국에 강경한 입장인가?(Is South Korea’s President Yoon Really ‘Tough on China’?)라는 기사를 통해 한국의 대중국 정책에 대해 의구심을 표했다. 매체는 "미국은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이 한국의 외교정책이 중국에 대해 덜 우호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기대를 높였지만 최근 흐름을 보면 여전히 한국의 외교정책이 중국에 의해 적극적으로 제한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중 외교장관 회의에서 강조된 양국 소통·협력 증진을 위한 협의는 외교적 제스처일 수도 있지만 (한국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이 지속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면서 "윤 대통령의 대중 관계 변화는 많은 이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느리고 수동적"이라면서 "윤 대통령의 행동이 선거 공약에 비해 덜 강력하기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다른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은 한국의 전략적 명확성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요소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미국 민간연구소인 브루킹스연구소의 앤드루 여 한국 담당 석좌는 지난 15일 연구소 홈페이지 기고문을 통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 잡힌 관계를 만들겠다는 윤 정부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윤 정부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미국 동맹 및 파트너들과 관계에 더욱 힘을 쏟을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다만 "인도·태평양 전선에서 한국은 미국 주요 동맹국 중에서는 비교적 조용한 모습을 보였다"면서 "윤 정부가 다른 인도·태평양 국가들과 긴밀하게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역내 파트너로서 한국의 역할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은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이 외무성 2021년 외교 백서를 통해 인도·태평양 지역 내 협력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국가들로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을 포함했음에도 한국을 제외한 것, 싱가포르 싱크탱크인 ISEAS-유소프 이삭 연구소 아세안 연구센터에서 리더십과 규율에 기반한 질서를 제공할 수 있는 국가를 묻는 질문에 한국이 10개국 중 9위를 차지한 것 등을 근거로 들었다. 그런데도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초안 작성 △한·미·일 3국 관계 개선 조치 △IPEF 합류 및 칩4 합류 의지 등을 근거로 들면서 한국의 외교정책 무게가 미국으로 좀 더 실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왼쪽)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사진=연합뉴스]

한국과 중국의 경쟁 관계에 주목하는 미국 
중국 역시 한국의 추후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5월 바이든 대통령 방한 당시 "바이든 정부의 인도·태평양 정책은 "냉전 전략"으로 보이며, 역내 영향력 강화를 꾀하는 중국에는 큰 난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도 SCMP는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IPEF와 칩4 동맹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은 국가"라면서 "중국은 이런 움직임들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기는 하지만 미국은 중국을 통제하는 것과 함께 여러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 정부가 아직 적극적인 입장 표명에는 나서지 않고 있지만 한국의 주요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IPEF와 칩4 동맹에 가담할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다만 매체는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 강준영 교수의 "한국은 중국을 배제하거나 적대할 의도가 전혀 없으며,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이라는 맥락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는 발언이나 경희대학교 중국어학과 주재우 교수가 칩4 구성원 중에서 미국, 일본, 대만이 중국과 우호적이지 않은 가운데, 중국 이익을 바라볼 수 있는 다른 나라가 없다”고 한 주장 등을 인용하면서 현재 상황에서도 한국과 중국이 이른바 윈윈 전략을 꾀할 수 있다는 시각을 전하기도 했다.

물론 남중국공대 공공정책연구원 궈하이 연구원은 향후 한국과 중국, 미국의 관계는 상당히 불확실해질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미·중 관계가 점점 더 적대적일 때 한국이 외교적으로 움직일 여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블룸버그는 이전과는 달라진 한국과 중국 간 무역 관계에 주목했다. 매체는 "중국은 한국의 제1 교역 파트너로 남아 있지만 디스플레이에서 자동차,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세계 시장에 판매하는 많은 제품에서 두 국가는 겹치는 위치를 가지고 있다"면서 "한국은 중국과 수출 산업 구성이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중국 경제의 부상으로 인한 경제적 취약성이 아시아에서 가장 크다"고 짚었다. 이어 "중국과 한국 간 경쟁 심화는 글로벌 공급망을 프렌드 쇼어링으로 재편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캐슬린 오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달 메모를 통해 "(한국은) 중국과의 무역은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면서 "중국이 한국의 가장 큰 무역 파트너로 남아 있지만 한국이 동남아시아 및 기타 신흥 시장과 연계를 강화하면서 과도한 의존도를 분산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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