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너무나 광범위해서 현장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대기업그룹 총수 특수관계인에 대한 규정이 그나마 현대적으로 바뀌었다. 대부분 대기업그룹에서는 얼굴도 모르는 6촌 친척의 행보를 더 이상 파악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안도하는 분위기다.

다만 SK 등 일부 대기업그룹은 사실혼 배우자가 특수관계인 범위에 포함된 것을 놓고 우려하고 있다. 그동안 수면 아래 감춰졌던 대기업그룹 총수의 사실혼 배우자가 수면 위로 부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사실혼 배우자가 소유한 기업과 거래 및 지분 관계 등에 대한 정보도 공개할 수밖에 없어 '오너 리스크'가 발생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나온다.

12일 재계 여러 관계자는 특수관계인 범위 축소 움직임을 환영하고 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대기업그룹 총수(동일인)의 친족 범위는 '혈족(친가) 6촌·인척(외·처가) 4촌'에서 '혈족 4촌·인척 3촌'으로 축소된다. 공정위는 60개 집단 8938명인 총수의 친족은 4515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공정위는 매년 5월 1일 자산총액 기준 5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을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한다. 또 공정위는 해당 집단의 사업을 지배하는 사람 또는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다. 동일인이 자연인인 경우 총수라 부른다.

총수로 지정되면 대기업집단 지정자료 제출 의무를 지게 된다. 지정자료는 해마다 공정위가 공정거래법에 따라 각 집단 총수로부터 받는 계열회사·친족·임원·주주현황 자료 등을 말한다. 그동안 친족의 범위는 현재 배우자,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에 해당돼 왔다.
 

윤수현 공정위 부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아직도 해외 주요국보다 총수 친족 규제 범위 넓어

이 같은 총수의 친·인척 관리 규제는 재계의 비판을 받아왔다. 총수와 친분이 거의 없는 명목상 친척들에 대한 자료도 매년 갱신해서 제출하지 않으면 안 되는 탓이다.

실제 국내 특수관계인 규정(총수의 6촌 이내 혈족·4촌 이내 인척)은 제도 도입 당시 참고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 법령보다도 범위가 넓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일본 민법에서는 특수관계인 범위를 6촌 이내 혈족, 3촌 이내 인척으로 규정한다.

일본 외에 아시아권 이웃 국가들도 한국처럼 광범위하고 복잡한 특수관계인 범위를 설정하고 있지 않다. 중국은 '관계가 밀접한 가족구성원'이라는 기준을 통해 경제적인 생활공동관계 형성에 의미를 둔다. 관계가 밀접한 가족구성원은 배우자, 만 18세 이상 자녀와 그 배우자, 부모와 배우자의 부모, 형제자매와 그 배우자, 자녀 배우자의 부모로 설정된다.

미국이나 영국 등 서구 선진국에서는 3촌 이내 친척 위주로 특수관계인을 규제한다. 미국에서는 혈연관계에 따른 특수관계인의 범위에 직계존비속(부모·조부모·자녀·손자녀)와 형제자매, 배우자만 포함된다. 배우자 부모나 형제자매인 인척 관계는 특수관계인 규정상 가족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가족의 결혼이나 이혼, 재혼으로 관계가 형성된 이들은 가족의 개념과 범위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영국은 특수관계인 범위를 사실상 경제적인 생활을 함께하는 최소 범위인 배우자와 자녀(미성년 자녀·양자)로 한정한다. 숙부와 숙모, 이종·고종사촌, 조카 등은 명시적으로 특수관계인의 범위에서 제외해 혼란의 여지도 없앴다. 캐나다는 특수관계인 범위를 경제공동체로 의미가 있는 가족 중심으로 구성한다.

그동안 한국만큼 규제 대상 범위가 넓은 국가는 찾아보기가 어려운 수준이다. 이에 이번 개정안에 상당수 대기업그룹이 환영하고 있다. 다만 아직도 서구 선진국이나 중국에 비해서 규제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규제 대상을 완화한 방향에 대해선, 기존보다 기업 부담을 완화하는 방향이기에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다만 대기업집단 지정 제도의 근본적 문제점이 있어 추가적인 완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사실혼 배우자 특수관계인 포함에 일부 기업 당혹

다만 일부 대기업그룹은 오히려 이번 개정안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친생자가 있는 사실혼 배우자가 총수의 친족 범위에 새로 포함되는 탓이다.

시행령이 개정되면 우선 SK그룹이 직접적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김희영 T&C 대표가 사실혼 배우자 관계이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내년 5월 대기업집단 지정부터 실무 확인을 거쳐 친족 범위에 들어올 것으로 공정위 측은 전망했다.

다만 재계 일각에서는 당장 SK그룹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SK그룹의 경우 이미 김 대표가 개정안 발표 이전에도 특수관계자로 포함돼 있었다는 측면에서다.

SK그룹 이외에도 '오너 리스크'를 걱정하는 대기업그룹 관계자가 적지 않다. 그동안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던 대기업그룹 총수들의 사실혼 관계가 공개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사실혼 배우자가 소유한 회사와 대기업그룹 계열사 간 지분 관계나 거래 등에 대한 정보공개도 뒤따를 수밖에 없어 우려가 나온다. 일감 몰아주기 등 사익편취로 지적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는 탓이다.

이에 대해 윤수현 공정위 부위원장은 "이번 개정안은 규제를 축소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예외적으로 사실혼 배우자를 친족에 포함하는 것은 규제 확대 측면이 있다"며 "이 부분은 그간 기존 공정거래 관련 제도가 사각지대가 있었던 거라 보완하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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