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암호화폐는 금융 산업의 사생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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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근영 한국블록체인스타트업협회 명예회장
입력 2022-08-02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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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근영 한국블록체인스타트업협회 명예회장[사진=아주경제DB]

21세기가 코앞이던 1999년 12월 IT 버블 막바지에 미국 온라인 증권사 이트레이드(E-Trade)증권이 한국에 진출하면서 기존 오프라인 모델로 수십 년 먹고살았던 국내 증권시장이 발칵 뒤집혔다. 그로부터 한 달 후 2000년 1월 국내 최초 온라인 증권사 키움증권이 출범한다. 훨씬 저렴한 수수료와 편리한 인터페이스, 무엇보다 인터넷을 통해 증권사 담당 직원을 거치지 않고 고객이 직접 주식을 사고파는 주문을 할 수 있다는 새로운 거래 방식에 젊은이들은 환호하며 급속도로 가입자가 늘어났다.

당시 증권회사가 몰려 있던 여의도는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위기의식을 느끼며 대다수 증권사는 당장 망할 것 같은 위기감에 전전긍긍했다. 언론은 이구동성으로 머지않아 오프라인 증권사는 모두 망하고 온라인 증권사가 그 역할을 대체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21년이 지난 현재 우리나라 온라인 증권사 위상은 기대와 사뭇 다르다. 키움과 이베스트(이트레이드증권)뿐인 인터넷 증권사는 지난해 말 기준 증권사 매출액 순위에서 59개 증권사 중 키움증권이 9위 이베스트증권은 14위에 머물고 있을 뿐 상위 5대 증권사는 모두 전통의 오프라인 증권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와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미국에서조차 거래 중개를 전문으로 하는 증권회사는 많지 않으며 대형 투자은행(IB)들이 월가를 주름잡고 있다. 미국 10대 IB 규모는 온라인 증권사와 비교할 수준이 아니며 2019년에는 미국 대형 증권사 찰스슈왑이 온라인 증권사 TD아메리트레이드를 260억 달러(약 34조원)에 인수합병했고 가장 큰 온라인 증권사인 이트레이드는 2020년 모건스탠리에 인수돼 사라졌다.

당시 미국 CNBC방송은 "온라인 증권사들은 거래 수수료 인하로 수익성 악화에 따른 실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찰스슈왑과 TD아메리트레이드, 모건스탠리와 이트레이드의 합병처럼 서로 파트너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14년 11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중금리 대출을 표방한 온라인투자연계금융(P2P) 업체 8퍼센트가 출범했다. 그리고 한 달 후인 12월에는 세계 최초 P2P 기업인 미국 렌딩클럽(Lending Club)이 나스닥에 상장하면서 당시로는 거액인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 규모의 기업공개(IPO)에 성공하며 국내에 P2P 창업 붐을 몰고 왔다.

필자는 당시 개인 간 자금 대여와 차입을 온라인으로 중개하는 P2P 사업의 잠재력에 매료돼 P2P 사업 진출을 검토했다. D증권 대표이사를 역임하신 S회장님이 껄껄 웃으시며 앞에 거론한 온라인 증권사 사례를 언급하셨고 P2P 사업은 한때 유행에 그칠 뿐이며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사업이라고 조언해주셨다. 필자는 이를 면밀히 검토한 후 사업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

2015년 P2P 업체 출범 당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던 이들 업체는 국내 고금리 대출시장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그로부터 7년이나 지난 현재까지 그럴듯한 성공을 거둔 P2P 업체를 찾아보기 힘들고 코스닥 상장 사례조차 전무한 실정이다. 오히려 P2P 업체의 돌려막기 수법과 모럴해저드로 인한 엄청난 투자자 피해만 양산했을 뿐이다. 또한 2020년 9월 이미 등록된 124개 P2P 업체 전체 대출 총액은 누적으로 11조원 수준이고 연체율은 17%를 넘는다. 더구나 대출 잔액은 2조3000억원에 불과해 국내 저축은행 대출 잔액 110조원(2022년 6월) 대비 2% 수준에 머물러 P2P 업계 시장 규모는 금융기관으로 분류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초라한 수준이다.

물론 정부의 과도한 규제로 인한 자유로운 경쟁이 어려운 것이 시장 확대에 가장 큰 저해 요인이라지만 이는 투자자 리스크를 먼저 생각하는 금융당국 관점이 세계 어느 나라나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어 새삼스러울 게 없다. 결국 금융산업은 아무리 새로운 기술과 효과적인 방식이 도입되더라도 쉽게 시장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산업이 아니라는 얘기다. 과거 마차가 자동차와 기차로 바뀌는 산업혁명의 물결과 같이 획기적인 기술 개발에 따른 새로운 산업의 물결은 세상을 바꾸고 인류의 생활 방식을 변화시켜 왔지만 전통적으로 금융산업에 대한 도전은 한때 유행을 만들어 낼 수는 있어도 고착화된 기존 금융권을 뒤집는 변화를 가져오기는 매우 힘들다.

최근 4차 산업혁명과 메타버스 바람을 타고 암호화폐 바람이 거세게 불어 왔으나 팬데믹에 따른 경제 불황과 루나와 테라 사태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에 따른 금리 인상으로 인한 암호화폐 가격 폭락보다는 암호화폐 역시 금융산업의 잣대에서 볼 때 앞에서 살펴본 두 가지 전례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돼 결국은 대다수 암호화폐는 사라질 것으로 본다.

기본적으로 금융산업은 규제 산업이다. 국가 입장에서 국정 운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산업이 금융산업이고 화폐 발행과 유통·관리 기능은 국가 정책의 기본 토대를 이룬다. 따라서 아무리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시장 전망이 좋은 산업이라도 국가 경제의 관리·통제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거나 부작용이 예상되는 산업은 허용되지 않을 것이며 시장 진입과 대중화에 상당한 규제의 칼날을 들이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이미 수년 전부터 세계 최고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전 직원 중 60% 이상이 개발자라고 밝히며 스스로 IT 기업이라고 선언할 정도로 금융업 자체가 이미 뛰어난 첨단 기술력을 갖추지 못하면 퇴출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인식 변화를 이루고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는 변신에 성공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새로운 기술적 진보 자체를 금융권이 일반 기업보다 더 빨리 수용하고 시장을 앞서가는 경우도 가끔 보일 정도다.

따라서 금융산업의 쌀이라 부를 수 있는 화폐에 대한 정부의 정책은 필연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기에 암호화폐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CBDC에 밀려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단지 비트코인을 비롯해 극소수 암호화폐만 살아남을 것으로 예상되고 대다수 암호화폐는 스타벅스의 별쿠폰이나 아마존페이 그리고 각 플랫폼의 내부 결제수단으로 그 역할이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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