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논설고문 [극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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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윤리위원회에서 '당원권 6개월 정지' 징계를 받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3일 페이스북에 광주 무등산에 오른 사진과 글을 올렸다. 징계 잠행 이후 닷새 만이다. 왜 무등산일까. 그는 "정초에 왔던 무등산, 여름에 다시 오겠다고 했었다"면서 “광주에서의 약속들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지난 대선에서 공언한 ‘서진(西進)정책’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정치 재개 의사를 분명히 했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당의 가장 약한 고리인 호남의 상징, 광주 무등산을 찾아 자신의 심경과 의사를 보다 극적으로 드러냈다는 거다. 역시 이준석답다. 그는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이었다.
 
두 가지가 빠진 징계결정
 
나는 이준석 대표가 당의 징계결정을 받아들이는 게 순리라고 본다. 물론 억울한 점도 있다. 징계결정에는 두 가지가 빠져 있다. 하나는 성상납에 대한 유죄의 증거다. 경찰이 수사 중이라고는 하나, 그가 성상납을 받았다는 증거는 없다.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증거를 인멸하나. 그 ‘인멸’도, 이 대표와 김철근 정무실장 간 공모, 또는 이 대표의 묵인이나 양해가 있었다는 정황상 증거조차도 아직 없다. 윤리위가 심증만으로 징계를 한 것이다.
 
이 대표는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법적수단을 총동원해 대응하겠다고 했다. 한때는 “징계처분”이 당대표에게 있으므로 “징계가 납득이 안 되면 우선 징계처분을 보류할 생각”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당원권이 정지되면 피선거권과 선거권도 정지되므로 대표자격도 정지된다. 따라서 징계처분의 권한도 대표 직무대행(권성동 원내대표)에게 있다고 보는 게 맞다.
 
당도 11일 의원총회에서 이를 확인했다. 의원들은 “(권 대표) 직무대행 체제로 당 운영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의문까지 채택했다. 권 대표는 직무대행 기간에 대해선 “윤리위가 결정한 바와 기본적으로 6개월”이라면서 “정치상황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몰라 예측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복귀 가능성은 열어둔 셈이다.
 
 
“징계결정 수용하고 재충전하라”
 
당의 원로인 홍준표 대구시장도 8일 “징계결정을 수용하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했다. “6개월간 오로지 사법적 절차를 통해 누명을 벗는 데만 주력하라”면서 “누명을 벗고 나면 새로운 이준석으로 업그레이드 돼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100% 공감한다.
 
홍 시장은 자신의 경우를 언급하기도 했다. “2017년 3월 탄핵 대선을 앞두고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엮여 당원권이 1년 6개월 정지됐다”면서 “항소심 무죄판결로 당원권이 회복돼 대선후보와 당 대표를 다시 한 일이 있다”고 했다. 성격은 다르지만 김순례 전 최고위원도 자유한국당 시절이던 2019년 4월 5·18 폄하발언으로 당원권이 3개월 정지됐지만 징계 종료 후 복귀했다.
 
중앙일보는 이 대표에게 남은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고 보도했다. 재심 청구나 징계효력정지 가처분 신청도 할 수는 있겠지만 인용 가능성은 낮다고 보았다. “이 대표에게 호의적으로 알려진 20대 남성 팬덤이나, 자신의 임기 동안 급증했던 책임당원들을 앞세워 당을 압박할 수도 있겠지만 당을 쪼개는 행위로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7월 10일)
 
黨의 중진들은 바라만 보고 있었나

문제의 성상납(성매매 알선수재)은 사실이라면 박근혜 정권 때인 2013년과 2016년에 있었던 일이다. 공소시효는 7년이다(징계시효는 공무원의 경우 3년). 당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해 조기 수습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죄는 엄중히 묻되 파장은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게 사법(司法)이 아닌 정치가 해야 할 일 아닌가.
 
물론 이번 싸움은 이 대표와 ‘윤핵관’과의 세력다툼 성격을 띤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더라도 이로 인해 당이 입은 상처가 너무 컸다.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2개월여 만에 30%대까지 떨어졌다. 당의 중진의원들이 제 역할을 했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홍준표 시장도 “(내홍 중인데도) 중진들의 모습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고 했다.
 
다선(多選)의 중진 의원들은 경륜도 있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사전에 조율하는 능력도 있다. 그럼에도 언제부터인지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안 내거나 못 내는 분위기다. 이번에도 이준석 대표를 정면에서 비판하고 나선 것은 오히려 민주당의 이상민 의원(5선)이었다. 그는 이 대표가 “본인 스스로를 갉아먹고 궁극적으로는 당까지도 무너지게 한다”고 했다.(CBS 라디오)
 
중진들 무력하게 만든 팬덤정치
 
여야를 막론하고 중진들의 위축은 정치의 팬덤(fandom)화 현상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정치인과 지지자들의 관계가 인기연예인과 팬 사이의 관계로 변하면서, 정치 참여의 수준은 높아졌다. 그러나 그만큼 지지자들에게 구속된다. 그런 관계가 반드시 바람직한지는 따져봐야 한다. 속칭 ‘∽빠 정치’나, 일부 초선 의원들의 일탈이 그 방증이다. 지지자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정도라고 믿어온 중진들에겐 생경한 정치 환경이다. 그러다보니 ‘꼰대’ 소리를 듣기보다는 나서지 않겠다는 심리와 분위기가 강하다.

이 대표는 우군 확보 차원인 듯 당원 모집에 나섰다지만 그래서 될 일은 아니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의 논리로 팬덤에 호소하겠다는 것인데 먹힐 것 같지 않다. 한 네티즌은 인터넷에 “피해자 코스프레와 윤핵관 프레임으로, 사적 목적과 보복을 위해 저희 2030 보수 청년들을 소환하지 말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시대의 아이콘 이준석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나는 그가 2011년 말 정치에 입문한 이후 오늘까지 그의 행적을 여러 자료를 통해 꼼꼼히 살펴보았다. 착잡했다. 대개는 그의 ‘업보’라고 했다. 자업자득, 뿌린 대로 거뒀다는 것이다. 우리 정치를 바꿀 재목으로 기대를 모았던, 한 영민한 청년에 대한 평가치고는 너무 박했다.
 
口業 – 입으로 쌓은 업보
 
40쪽이 넘는 ‘나무위키-이준석 논란 및 사건 사고’를 읽으면서 나는 중간 중간에 내가 느낀 점들을 제목 형태로 써보았다. 예컨대 2019년 3월 당시 바른미래당의 청년학교 회식자리에서 차마 옮길 수 없는 말로 안철수를 모욕, 안 지지자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제명을 촉구한 일이 있었다. 그는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이 기사 밑에다 나는 ‘천방지축 안하무인’이라고 썼다.
 
2021년 6월 신임 당대표로서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면회할 계획이 없다. 내가 당대표가 된 걸 감옥에서 보며 위안이 됐기를 바란다”고 했다. 논란이 되자 그는 기사 수정을 요청했다. 그해 8월 윤석열과의 통화내용이 유출돼 파문이 일었다. 이 두 기사 아래에 나는 ‘신뢰부족, 진정성의 결여’라고 적었다. 이런 사례가 너무 많아 다 인용하기 어렵다.
 
전장연(전국장애인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운행 방해 시위는 이 대표의 지향성과 함께 정치인으로서 그가 뭘 보완해야 할지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이 사안은 본질적으로 어느 한쪽 편을 들기 어려웠다. 여론도 시민들의 불편을 생각해야 한다는 쪽과 전장연의 이동권 보호를 지지하는 쪽으로 갈렸다.
 
이 대표는 “장애인의 일상적인 생활을 위한 이동권 투쟁이 수백만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에 (경찰과 교통공사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당장 유화적인 언어로 그분들의 행위를 정당화시켜줄 생각이 없다”면서 “불법시위를 중단하고 공식 대화채널을 통해 얘기하자”고 했다.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반발도 거셌다.
 
주목할 것은 당시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의 고언(苦言)이었다. 그는 “당 대표가 항상 본인의 소신만 피력할 것 같으면 정치 해나가기를 어렵다”면서 “참을 때는 참고 자제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정치 선배인 임태희 당시 대통령당선인 특별고문도 “정치에는 차가운 머리로 하는 영역도 있고, 따뜻한 가슴으로 해야 되는 영역이 있다. 발언을 할 때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헤아려가면서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6개월, 말(言)만 붙들고 씨름하라
 
정치인으로서 이준석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이 두 사람의 조언 속에 다 들어있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붉은 사인펜으로 ‘오만과 독선’을, 파란 펜으로는 ‘겸양과 말, 그리고 인내’를 적어 넣었다. ‘사고는 디지털로, 태도는 아날로그로’라는 말도 추가했다. 이준석이 말을 조금만 더 가려 했더라면, 그러기 위해서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무슨 엄청난 사건이나 사고 때문에, 거창한 이념이나 이론, 비단주머니에 담긴 비책 같은 게 없어서 이리 된 게 아니다. 말 때문이다. 말로 지은 업보, 곧 구업(口業) 때문이다. 말을 아끼려는 노력, 말을 할 때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 하나만 있었어도 피해갈 수 있었다. 예부터 화종구출(禍從口出), 구시화문(口是禍門)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주어진 6개월-나는 역설적으로 이 대표에겐 행운의 시간이라고 본다- 말(言)이란 화두 하나만을 붙들고 씨름하시라. 정치를 구하고, 대한민국을 구하는 일쯤은 잠시 접어두시라. 한국정치의 자산(資産) 하나가 이런 식으로 피지도 못하고 꺾여서야 되겠는가.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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