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딜레마] 물가당국 "신중히 접근" vs 산업계 "미룰수록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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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라·정석준 기자
입력 2022-06-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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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주 3분기 전기요금 인상 여부 발표

서울 시내 한 건물의 전기계량기. [사진=연합뉴스]

전기요금 인상을 놓고 소관 부처 간 입장이 팽팽하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 모두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인상 폭을 두고 견해차를 보이며 막판 조율에 들어갔다.

나라 살림을 도맡아 관리하는 기재부는 물가부터 걱정한다. 안 그래도 치솟는 물가에 가스요금에 이어 전기요금까지 올리기엔 부담이 따른다는 입장이다. 반면 산업부와 전력 업계는 한국전력공사의 역대급 적자를 고려해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부처 간 이견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애초 이달 21일 발표 예정이었던 올해 3분기 전기요금 연료비 조정단가 결정이 연기됐다. 전기요금 인상 여부는 이번주 내에 발표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역시 최대한 신속하게 협의를 마치겠다는 입장이다.
 
전기요금 오르면 물가 부담...신중한 기재부
물가 당국인 기재부는 전기요금 인상에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안 그래도 치솟는 물가에 전기요금 인상까지 더해지면 서민들의 삶이 더 팍팍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깔린 것이다. 

올해 2월 3%대 후반 수준이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인해 지난달 이미 5%대를 훌쩍 뛰어넘었다. 물가 상승률이 5%대를 기록한 건 2008년 9월(5.1%) 이후 13년 8개월 만에 처음이다. 이대로 물가 고공행진이 계속되면 하반기에는 6%대에 진입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기요금 인상이 아니어도 앞으로 물가를 끌어올릴 상방 요인은 수두룩하다. 다음 달에는 민수용(주택용·일반용) 도시가스 요금 원료비 정산단가가 메가줄(MJ·가스 사용 열량 단위)당 1.9원으로 기존보다 0.67원 오를 예정이다. 여기에 전기요금 인상까지 겹친다면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물가 상승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전기요금 인상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추 부총리는 20일 정부세종청사 기재부 기자실을 찾아 전기요금 인상 여부에 대한 결정 시기가 연기된 데 대해 "한전이 애초부터 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방안을 제시했어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 미흡했다"며 "한전의 여러 자구노력 등에 대해 점검하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한전이 전기요금 인상을 요구하기에 앞서 충분한 자구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경영 효율화와 연료비 절감, 출자지분 매각, 부동산 매각 등 자구노력을 통해 전기요금 인상 폭을 더 줄이라는 얘기다.

이미 전기요금은 지난 4월부터 기준연료비와 기후환경요금 인상분이 반영돼 킬로와트시(㎾h)당 6.9원씩 올랐다. 지난해 12월 확정된 기준연료비와 기후환경요금 인상 폭은 각각 ㎾h당 4.9원, 2.0원이다. 기준연료비는 올해 10월에도 ㎾h당 4.9원 인상될 예정이다.

다만 추 부총리는 최근 들어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물가 때문에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요금은 국민 부담과 직결된 부분"이라면서 "정부는 국민 입장에서, 국가 경제적 입장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6월 20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기요금 인상 불가피...미룰수록 부담↑"
반면 연료비 조정단가 발표를 앞두고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한 전력업계 관계자는 "기름값이나 통신비, 수도세 같은 공공재 요금에 대한 반발보다 전기요금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처음부터 당연히 물가 변동에 맞게 올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부분을 이제 와서 바로잡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다른 전력업계 관계자는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물가가 오르는 것이 좋지 않다"면서도 "한전 적자가 누적되면 송배전 등 품질 관리가 어려워지고 나중에 큰 문제로 이어질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5조8610억원어치 역대급 적자를 맛본 한전은 올해 전기요금 제도 개선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미 한전의 올해 1분기 영업손실은 7조7869억원에 달하는 상황이다.

한전 적자 요인으로는 발전 연료비 상승세에 못 미치는 전기요금 단가 때문으로 풀이된다. 유가는 지난달 20일 두바이유 기준 배럴당 가격은 108.07달러로 지난해 대비 56%, 2020년보다 156% 급등했다. 유연탄은 뉴캐슬탄 기준 톤(t)당 436.07달러로 지난해 대비 214% 올랐다. 

한전이 각 발전사들에서 사들이는 국내 전력도매가격(SMP)을 대부분 결정짓는 액화천연가스(LNG)는 동북아 현물가격(JKM) 기준 백만열량단위(mmbtu)당 21.93달러로 전년보다 18%, 2020년보다는 398% 폭등했다.

이에 한전은 지난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인상 최대 폭인 ㎾h당 3원씩 올리도록 정부에 요구했으나 유보 통보를 받았다. 

당시 정부는 국제 연료 가격 상승 영향으로 조정요인이 있음을 인지했으나 "코로나19 장기화와 높은 물가 상승률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의 생활 안정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며 동결을 결정했다. 여기에 올해 4월부터 기준연료비와 기후환경요금 명목으로 ㎾h당 6.9원 인상분이 적용된 것도 전기요금 동결에 한몫했다.

대신 정부는 'SMP 상한제' 카드를 꺼냈다. 국제 연료 가격 급등 등으로 전력시장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준까지 상승할 경우 한시적으로 평시 수준의 정산 가격을 적용해 한전 부담을 덜겠다는 구상이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전기요금을 규제할 수도 있지만 시장 원리에 반하는 행위"라며 "한전의 전력 구입비가 올라가는 부분은 소매 가격인 전기요금에 전가해야 하는데 그동안은 거의 올리지 않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한전은 전기요금 인상을 넘어 제도 개선까지 주장한다. 전기요금은 기본요금과 전력량 요금(기준연료비), 기후환경요금, 연료비 조정요금 등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한전은 3분기 연료비 조정요금을 최대치인 3원 인상으로 요구했다. 또 분기당 3원, 연간 5원으로 제한된 연료비 조정단가의 상·하한폭도 확대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정에서도 전기요금 인상에 동의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일준 산업부 2차관은 지난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전기요금은 한국 내부만이 아닌 국제적 상황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도 "기준 연료비를 올려야 할 때 동결시키거나 나누어서 전기요금에 반영한 부분들이 정치적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한전 적자가 심각하고 미룰수록 문제가 돼 미래 세대에 부담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며 "연료비 연동제라는 틀이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이 틀만 가지고 생각하면 큰일 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당정 협의회' 이후 언론 브리핑에서 "물가 안정을 위해 그 부분(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할 수는 있지만, 그럴 경우 시장 기능이 왜곡된다"며 "정부에서 적절히 판단하되 전기요금 인상은 지금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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