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년 가는 명문 장수기업으로 거듭날 것…동물진단=베트올"
  • 경험 살려 16년째 멘토링…"성별 구분 없이 당당하게 과학인으로 서야"

김정미 베트올 대표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공무원, 벤처기업, 대기업, 창업. 하나만 해도 쉽지 않은데 이 모든 분야에서 성과를 올린 사람이 있다. 김정미 베트올 대표는 다양한 커리어를 거쳐 지난 2006년 바이오 벤처 기업을 창업해 전 세계 118개국에 수출하는 동물질병 진단 업계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여기에 다양한 경험을 살려 멘토링 등 사회 공헌까지 나서고 있다. 

-베트올은 어떤 회사인가?

"글로벌 동물질병 진단 전문회사다. 수의학(Veterinary)의 모든 것(All)을 책임진다는 뜻이다. 2006년 직원 7명으로 창업해, 현재는 41명까지 커졌다. 개발부터 생산, 판매까지 모든 역량을 갖춘 바이오 벤처기업이다. 

베트올 제품은 코로나19 신속항원키트와 같은 원리다. 현장에서 수의사가 샘플을 채취해 동물이 홍역, 심장사상충 등 질병에 걸리지 않았는지 키트로 검사한다. 

현재 세계 각지에 76개 파트너사를 두고 118개국에 수출한다. 지난해 300만불 수출탑을 수상했고, 전체 매출의 93%가 수출에서 나올 만큼 해외에서는 인지도 높은 기업이다."
 

베트올 제품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공무원, 벤처기업, 대기업 등 다양한 분야를 거쳐 베트올을 창업하게 된 이유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남편을 따라 떠난 미국 유학 시절에는 우리 또래가 흔히 그렇듯 교수를 희망했다. 사업의 'ㅅ'도 생각하지 않았다. 박사후연구원(포닥)을 할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시기였는데, 국립보건원(현 질병관리청)에서 인력 채용을 위해 보스턴에 왔다. 남편은 먼저 대학 교수가 돼 귀국했고, 큰아이를 데리고 혼자 미국에 남은 상황이라 고민이 컸다. 주변에서도 공무원은 안정적이고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에도 좋다고 하니 고심 끝에 공무원을 택했다. 

아무리 좋은 옷도 불편하면 못 입는다. 공무원은 내 기질에 맞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당시에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막 돌아와 젊었고, 피가 끓었다. 마침 벤처기업 연구소장직 제안이 들어와서 3년 3개월간 공무원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벤처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뒤 인체진단 사업을 진행했다. 대표적 성과는 산부인과에서 쓰는 인유두종바이러스 검사 칩을 최초로 만든 것이다. 최첨단 기술로, 인허가 기준도 없어 부랴부랴 컨소시엄을 만들고, 전문가들과 협업해 4년 만에 허가를 획득했다. 인류의 절반이 여성인데, 여성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제품을 만들었다는 것에 과학자로서 긍지를 느꼈다. 제품을 개발한 사람이 가장 잘 안다. 세미나, 학회 등에서 의사를 상대로 제품 사용법과 필요성 등을 소개하며 기술 영업·마케팅까지 하게 됐다.

이때 이수화학(이수앱지스)이 생명공학에 진출하면서 병원 네트워크, 영업·마케팅 경험까지 갖춘 적임자를 찾고 있었다. 큰 기업의 체계적인 시스템을 배워보고 싶었다. 약 5년간 진단사업을 총괄하며 제품 개발, 연구소, 생산, 글로벌 영업·마케팅 등을 지휘했다. 어느 날 문득 나 혼자 해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위기가 찾아왔고, 기회로 바꿨다. 회사가 상장을 준비하면서 제약에 집중할 필요성이 제기됐고, 진단사업을 접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도 용기가 대단했던 것이, 이 같은 결정을 전달받자마자 홀린 듯 "그럼요, 성장이 중요한데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그럼 진단사업팀은 제가 데리고 나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잠재의식 속에서 준비한 것이 아닐까. 이후 진단사업팀 7명을 데리고 나와서 베트올을 창업했다. 

이 모든 경험이 모두 창업의 자산이 됐다. 만약 공무원이나 벤처 연구소장, 대기업에서의 일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베트올은 있을 수 없다. 각 단계를 통해 베트올을 경영할 수 있는 자신감과 경험, 노하우를 얻었다."

-커리어 전환기마다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저는 겁이 없다. 잃을 게 없기 때문이다. 금메달만 따는 선수는 올림픽에 나갈 때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을 거다. 그러나 혜성같이 나타난 신인 선수는 자길 아는 사람도 없고, 메달을 따야 한다는 강박도 없다. 잃을 게 없기 때문이다. 다만 끊임없이 도전할 뿐이다. 떨어질지언정 시도는 해야 한다. 

대신 선택할 때 최선의 결정을 내리려고 분석적으로 계산한다. 각 선택지 나름대로 다 좋을 수 있지만, 최고의 선택을 하는 데 집중한다. 다양한 커리어를 갖게 된 이유다."

-글로벌 시장에서 베트올 제품은 다른 경쟁사 대비 어떤 강점을 가지나?

"한국 기업의 강점은 속도다. 유럽은 제품 하나 개발에 3~5년씩 걸리는데, 사업 초기에 1~2년 만에 제품을 내놓아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세계 최초로 개발한 제품도 있는 등 우리만의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기술력으로는 업계 선두주자들 못지않고, 더 낫기도 할 만큼 자신 있다.

특히 베트올의 슬로건 중 하나는  '24시간 내 후속조치 하라(Follow up within 24 hour)'다. 동물진단 업계에서 지금껏 이런 회사는 없었다고 한다. 고객이 만족할 만한 기술적 근거를 가진 답변을 빠르게 제시해 금세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 

여기에 뛰어난 품질로 까칠하기로 소문난 일본 고객도 만족시켰다. 동물 진단 분야에서 가장 큰 시장은 심장사상충인데, 일본 심장사상충 시장 점유율 1위다."
 

김정미 베트올 대표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사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멘토링 등 사회공헌 활동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학계, 공무원, 벤처 연구소장, 대기업, 창업, 겸임교수까지 바이오를 전공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해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멘토링을 시작해 16년째 이어가고 있다. 현재까지 약 350명의 이공계 여대생 멘티를 두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도 하고 있다. 딸 둘 엄마이기도 하고, 여성 과학기술인 선배로서 사명감이다."

-여성과기인 지원책에 대한 의견은?

"여성과학기술인 육성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정책 측면에서 보자면 전반적으로 육아휴직과 여성 재직자, 임원 비율을 확대하는 등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다만 딱 하나 쉽지 않은 건 이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뚝딱 완성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공학 전공 여성이 늘어난다지만 공대에는 여전히 남성이 많다. 전체적인 경향은 좋아지고 있지만, 그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여성 입장에서 보면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이 훨씬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이제는 내가 여성이라는 낡은 생각을 버려야 한다. 앞에 붙는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사라져야 한다. 여성, 남성을 구분하지 않고 당당하게 사람으로, 직장인으로, 과학인으로 서야 한다. 여성은 물론 남성도 그렇게 여겨야 한다."

-향후 사업 계획과 목표는?

"베트올을 '100년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다. 미국에서 약학 박사를 할 당시 여러 제약회사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미국은 우리보다 역사가 짧지만 존슨앤드존슨처럼 100년이 넘은 회사가 많다. 유럽 동물진단 업계에도 전통 있는 명문 강소기업이 여러 개 있다. 이들 회사처럼 대를 넘어 이어가는 일류 회사를 만들고 싶다. 

골프를 시작하면 소위 '장비병'에 걸리듯, 한국은 회사 공간이나 실험실을 멋지게 꾸미는 등 보이는 데 많이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10년을 살며 경험해보니 글로벌 일류 회사들은 군더더기가 없더라.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 연봉을 많이 주고, 학벌은 중요하지 않으며, 프로정신이 있어, 잘하는 것을 집중적으로 한다. 이렇게 한다면 베트올도 명문 장수기업이 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동물진단=베트올'이라는 공식을 세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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