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칼럼] 무역전쟁보다 치명적인 미국發 인플레이션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2-05-16 18:4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인플레이션은 노상강도처럼 폭력적이고, 무장강도처럼 무섭고, 저격수만큼 치명적이다.” 1980년대 초 폴 볼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과 함께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했던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남긴 명언이다.

올해 초 미국발 인플레이션 공포가 전 세계를 엄습하였다. 지난해 말까지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인플레이션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평가한 후 통화정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물가가 상승하는 추세가 명확해지자 연준은 올해 3월 중순 제로 금리 정책을 포기하고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였다.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1981년 이후 가장 높은 8.5%까지 상승하고 4월에도 8.3%를 기록하자 지난 4일 연준은 22년 만에 처음으로 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였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석유와 식품 가격 폭등은 대통령의 직무 수행 능력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 이어졌다. 이에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0일 백악관에서 물가 안정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선언하였다. 그 다음 날 그는 일리노이주에 있는 농장을 방문하여 식량 가격 폭등을 막기 위한 대책도 발표하였다. 연준 의장뿐만 아니라 대통령까지 개입하게 됨으로써 이제 인플레이션은 경제적 문제인 동시에 정치적 문제가 되었다.

인플레이션은 미국의 대외 정책에도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무역전쟁 이후 중국에 부과한 보복관세 철폐를 검토하고 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셔먼 로빈슨은 관세 철폐가 CPI를 1.3%포인트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물론 모든 부처가 이 조치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거시경제를 책임지는 재무부는 관세 철폐가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근거로 찬성하지만, 무역 협상을 주관하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보복관세 이외에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안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반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트럼프 행정부와 바이든 행정부가 전면적 관세 철폐 대신에 부분적 관세 면제를 활용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만약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관세를 철폐한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국내외에서 중대한 정치적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관세 철폐가 무역전쟁에서 미국의 항복으로 간주된다면 미국의 대외적 위상과 영향력은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2024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맹렬한 비판은 오는 11월 중간 선거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관세를 철폐한다면 인플레이션이 무역전쟁보다 더 치명적이라는 사실이 판명될 것이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미국 중앙은행의 노력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에 불안정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올해 최고점 대비 다우존스지수는 12%, S&P지수는 16%, 나스닥지수는 25% 각각 하락하였다. 이와 동시에 채권 금리가 올라가면서 미국 국채 가격도 내려갔다. 외환시장에서는 달러화 강세가 가속화되고 있다. 달러화 강세는 미국산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미국의 대외무역 적자는 증대될 수밖에 없다.

미국을 도와줄 수 있는 우군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중국은 적극적인 경기 부양을 통해 미국을 대신해 세계경제의 성장을 이끌었다. 현재 중국에서는 아직 인플레이션이 심각하지 않고 재정적자도 비교적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금리를 인하하고 인프라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어느 정도 남아 있다. 그러나 다이내믹 제로 코로나 정책(动态清零方针) 때문에 경기 부양책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노무라증권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위기가 발생한 이후 45개 도시 3억7000만명이 봉쇄를 경험하였다. 이 정책이 장기간 지속되어 경제활동이 제한되고 공급망이 교란된다면 지난 3월 양회에서 제시된 5.5% 성장률은 달성될 수 없을 것이다.

유럽 상황은 중국보다 더 좋지 않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대다수 유럽 국가들은 석유, 가스, 식량 가격 폭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는 유럽연합(EU)이 도입한 대러시아 제재의 일환인 에너지원 수입 금지 조치의 결과다.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 수입을 중단한 국가들은 중동과 북미에서 더 비싼 에너지 자원을 수입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식량 수출 축소도 물가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한다면 그 피해는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질 것이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외환위기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 미국 이자율이 상승하면서 해외 투자자들이 자본을 개발도상국에서 미국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동시에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를 우려한 국내 투자자들의 자본 도피도 감지되고 있다. 중국도 이러한 자본 유출에서 예외가 아니다. 미국과 중국 간 금리 차이가 급속하게 줄어들면서 미국 자본의 중국 탈출이 가속화되고 있다. 자본 유출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으면 외환보유액이 부족한 국가들은 통화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현재까지 스리랑카 이외에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국가가 없지만 국제통화기금(IMF)에 지원을 요청하는 국가가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1980년대 초 라틴아메리카 부채위기, 1990년 후반 동아시아 금융위기, 2000년대 말 남유럽 재정위기 등과 같은 대규모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은행의 선제적 금리 인상은 미국발 인플레이션의 여파를 막는 데는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와 생산자물가지수는 각각 4.8%, 8.8%포인트 상승하였다. 코스피 지수가 2500선으로 후퇴했으며, 원·달러 환율도 1200원대 후반으로 떨어졌다. 석유와 가스 가격 상승으로 수입이 증대하면서 경상수지도 흑자 폭이 대폭 감소하는 추세다. 자본 유출을 막고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 그러나 금리 인상은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키고 경기 침체를 가속화할 수 있는 부작용을 수반한다. 따라서 대외 여건과 대내 여건을 동시에 개선할 수 있는 묘안은 없다고 할 수 있다.

한·미 금융 협력 강화는 대외 불균형을 줄이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다. 2008년 10월 한국은행과 연방준비제도가 체결하였던 600억 달러 규모 통화스와프 계약은 우리나라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피해를 극복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 계약이 만기일인 작년 12월 31일에 종료된 이후 한국은행은 보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를 환매조건부로 매입하여 달러화 자금을 공급하는 연준의 FIMA Repo Facility를 이용하기로 합의하였다. 오는 21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러한 금융 협력이 강조된다면 환율 변동성이 축소되고 외화유동성 사정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점에서 향후 경제안보 외교는 글로벌 공급망뿐만 아니라 국제금융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왕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외교학과 ▷런던정경대(LSE) 박사 ▷아주대 국제학부 학부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