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리포트] "우리가 바이러스냐?" 중국 화물트럭 기사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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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배인선 특파원
입력 2022-05-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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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에도 못 가요" 고속도로 떠도는 '부랑자' 신세

  • 상하이 운임 10배↑···트럭기사들 '고개 절레'

  • 멈춰 선 트럭···경제 대동맥 물류망이 끊기다

  • 14억 인구 생계 책임지는 트럭기사 '생활고'

화물트럭 기사가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젠캉마 녹색, 싱청마 이상없음, 48시간 이내 PCR 검사 증명을 제출해야 한다. [사진=신화사]

“63일째 집에도 못 가고 고속도로를 달리며 차 안에서 먹고 마시고 싸고 자고, 의식주를 모두 해결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15일 중국 온라인매체 펑파이신문에 실린 화물트럭 기사 왕밍량 씨의 하소연이다. 왕씨는 20년간 화물트럭 기사로 근무하며 중국 대륙 방방곡곡에 깔린 16만㎞ 고속도로를 오가며 화물을 운송한다. 

그런데 최근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는 위험 지역도 드나들다 보니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그를 받아주는 고속도로 출입구는 아무 데도 없다. 그렇다고 괜히 고향으로 돌아갔다간 격리 시설로 보내져 비용 부담만 늘어날 것이 걱정이 돼 아예 3㎡ 남짓의 좁은 차 안에서 생활하며 고속도로를 떠도는 것이다. 

왕씨의 트럭에는 이미 한 달은 거뜬히 버틸 전투식량도 충분히 구비돼 있다. 쌀 두 포대, 집에서 담근 절인 고기, 휴대용 가스버너까지 갖췄다. 

최근 중국에는 코로나19 봉쇄령으로 인해 왕씨처럼 길이 막혀 오갈 데 없는 부랑자로 전락한 화물트럭 기사들이 수두룩하다. 이로 인해 중국 물류 대동맥이 끊기고 트럭 기사 생계까지 위협하고 있다. 최근 중국 온라인에는 “우리는 바이러스가 아닌데, 왜 거부하는가”라고 절규하는 트럭 운전 기사의 현실이 담긴 영상도 화제가 됐다. 
 
"집에도 못 가요" 고속도로 떠도는 '부랑자' 신세
 

"우리는 바이러스가 아니다"라고 외치는 중국 트럭기사의 인터뷰 영상. [사진=웨이보 영상 갈무리]


“요새는 웬만한 배짱 없이는 화물 운송하기 힘들어요.”

펑파이망이 소개한 또 다른 화물트럭 기사의 한탄이다.

코로나19 확산세 속 화물 운송 주문을 수주하기도 어렵지만, 수주해도 고속도로를 달려 무사히 운송하기도, 운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에 따른 방역수칙이 강화되면서 최근 중국 화물트럭 기사들이 갖춰야 할 세 가지 필수 조건이 있다. 젠캉마(健康碼, 건강코드) 녹색, 싱청마(行程碼, 동선코드) 이상없음, 48시간 이내 유전자증폭(PCR) 검사 음성 증명서다. 

이중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운송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코로나가 곳곳서 산발적으로 발생하다 보니 싱청마에 툭 하면 다이싱(帶星), 즉 별표(이상표시)가 뜬다. 별은 코로나 위험 지역에서 보통 4시간 정도 머물면 생성된다. 싱청마에 별이 뜬 트럭 기사를 받아주는 도시는 아무 데도 없다.

위험지역에 배송을 가지 않더라도 도로가 밀려 시간이 지체되거나, 혹은 PCR 검사를 받느라 위험 지역에 4시간 이상 머물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별표가 붙는다. 요새 방역 수칙이 워낙 까다로워 도로 위에서 대여섯 시간씩 차가 밀리거나, PCR 검사에 긴 줄이 늘어선 경우가 허다해서 별표가 붙은 트럭 기사들이 적지 않다. 4월 중국노동관계학원 연구에 따르면 중국 트럭 기사의 60%가 ‘다이싱’ 상태에 처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별이 사라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주. 그때까지는 정처없이 고속도로를 떠돌며 트럭 안에서 지내는 수밖에 없다. 

싱청마에 별이 뜨지 않더라도 어떤 지역은 고속도로 요금소를 빠져나오자마자 현지 방역요원이 기사가 트럭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차문에 봉쇄 딱지를 붙이기도 한다.

그래서 일부 기사들은 위험 지역을 지나갈 때 노선을 숨기기 위해 휴대폰을 꺼놓는 등의 방식으로 당국의 감시망을 피하는 '꼼수'를 부리기도 하지만, 괜히 걸렸다가는 거액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나가기 위해 길게 줄지어 서있는 화물트럭. [사진=웨이보 영상 갈무리]

 
상하이 운임 10배 올려줘도 '고개 절레'
지역마다 제각각인 방역 정책도 트럭 기사들로선 골치가 아프다. 서로 다른 성(省)끼리는 물론이고, 같은 도시 내에서도 구·현마다 정책이 달라 고작 한두 시간 거리 운송을 가는데도 어떤 지역은 하루 전 미리 통행증을 신청해야 진입할 수 있다.

톨게이트에 도착해도 각 지역마다 서로 다른 앱을 다운로드받아 QR코드를 스캔해 등록하고, 정부 승인까지 받은 후에야 무사히 고속도로를 빠져나올 수 있으니 번거롭기 짝이 없다. 모바일에 익숙한 젊은 기사들은 그렇다 쳐도 50세 이상 어른들은 스마트폰 조작이 힘들어 아예 화물 운송을 포기하기도 한다. 

심지어 일부 지역은 트럭기사 소속 회사 담당자가 톨게이트까지 와서 해당 트럭이 정해진 시간(보통 6시간)내 화물을 운송하고 돌아올 것임을 보증하는 계약서에 회사 인감을 찍어야 통과시켜 준다. 만약 6시간 이내 배송 임무를 완수하지 못할 것 같으면 트럭 기사는 중간에 다시 톨게이트로 돌아와 보고를 하는 번거로움도 감수해야 한다. 

중국은 워낙 땅 덩어리가 넓다 보니 트럭 기사들이 1000㎞ 이상씩 달려 운송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지역마다 수시로 변하는 방역 수칙에 제때 대비하기 힘들다는 불확실성도 있다.

한 물류업계 관계자는 “트럭 기사들이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야 출발 전 확인했던 방역 수칙이 바뀐 걸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진퇴양난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제몐망에 말했다. 

톨게이트가 폐쇄되지 않은 도시면 그나마 낫다. 3월 말부터 중국 내 코로나19가 산발적으로 확산하면서 각 지방정부마다 방역 수위를 높이다 보니 4월 들어선 고속도로 톨게이트·휴게소가 줄줄이 문을 닫았다. 

4월 10일 교통운수부에 따르면 문 닫은 고속도로 요금소와 휴게소가 각각 685곳, 364곳이다. 중국 전체 고속도로 요금소 휴게소 숫자의 10%도 채 안되는 수준이지만, 대부분이 장쑤·저장·안후이·허난·허베이·산둥 등 중국 물류 집산지에 집중돼 있다 보니 트럭 기사들로선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코로나19로 도시 봉쇄령이 떨어진 상하이는 아무리 웃돈을 줘도 트럭 기사들이 기피한다. 한번 들어갔다가는 봉쇄령에 막혀 빠져나오지 못하거나, 싱청마에 별이 생겨 다른 지역에 가지 못하는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다.

창장 삼각주에서 장기간 트럭 기사로 근무한 한씨는 “고향 안후이성 화이베이에서 상하이까지 700㎞ 거리를 6.8m 축거의 화물트럭으로 운송할 경우 평균 운임비는 1500~1800위안이다. 그런데 최근엔 10배 뛴 1만3000위안(약 245만원)을 준다고 해도 가겠다고 나서는 기사는 없다”고 전했다.
 

좁은 트럭 안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트럭기사. [사진=웨이보 갈무리]

 
멈춰 선 트럭···경제 대동맥 물류망이 끊기다
중국 국가 경제 대동맥인 물류망 핵심은 트럭 운송이다. 중국 전체 상품 유통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봉쇄령으로 트럭이 멈춰 서니 물류 대동맥도 끊겼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시장조사업체 윈드사를 인용해 상하이가 지난 3월 28일부터 봉쇄에 돌입한 지 일주일 만에 상하이 트럭 화물운송지수는 3월 26일 98.97에서 4월 4일 14.13으로 곤두박질쳤다고 보도했다. 

컨테이너를 실을 트럭이 들어오질 못하니 상하이항의 수입 컨테이너도 적체돼 있다. 미국 공급망 데이터업체 포키츠에 따르면 4월 24일 기준 상하이항의 수입 컨테이너 평균 하역기간은 8.3일로, 봉쇄조치가 내려지기 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코로나 봉쇄령으로 옴짝달싹 못하게 된 화물 트럭은 전국 물류망을 마비시킬 뿐만 아니라 전국 1700만명 트럭 기사와 딸린 식구 생계까지 위협해 중국 사회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도 나온다. 

중국 정부도 최근 대응에 나섰다. 지난 4월 11일 저녁 국무원과 교통운수부 등이 잇달아 코로나 방역 조치 속에서도 원활한 물류와 운송을 유지하라고 지시했다. 구체적으로 지방정부가 제멋대로 고속도로 톨게이트·휴게소를 폐쇄하는 것을 시정하고, 20분 이내 완료할 수 있는 신속항원 검사를 PCR 검사와 동시 진행해 트럭 기사들의 검사 대기 시간을 줄이고, 트럭 기사의 차량 대출금 상환 기한을 연장하는 등의 조치가 발표됐다.

다행히 이 조치는 차츰 효과를 내고 있다. 교통운수부에 따르면 지난 5월 10일까지 전국 고속도로 화물 교통량은 4월 18일과 비교해 8.59% 증가했다. 도로 화물 운송량과 우편택배 물량도 6.16%, 20% 늘었다. 
 
14억 인구 생계 책임지는데···트럭 기사는 '생활고' 
사실 한때 중국서 트럭 운전기사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1990년대 중국이 전국적으로 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화물트럭 기사 몸값은 뛰었다. 중국 유명 소설 ‘평범한 세계(平凡的世界)’에서 운전기사는 현장 자리를 줘도 안 바꾼다고 할 정도로 사회적 지위도 높은 것으로 묘사된다. 

알리바바·징둥 등 전자상거래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트럭 기사 수요도 급격히 늘었다. 2016년까지만 해도 3000만명에 달하는 인구가 트럭 기사에 종사했다. 특히 당시 트럭 기사의 90%는 회사에 속하지 않은 자영업자로, 프리랜서처럼 업소에 등록비만 내고 일거리를 받아 화물을 운송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2020년 말 기준 트럭 기사 수는 1728만명까지 줄어드는 등 기피하는 직업군이 됐다. 

특히 중국 내 플랫폼 경제 발달로 화주와 트럭 기사를 연결해주는 만방(滿幫) 같은 트럭 공유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차츰 트럭 운전기사 지위가 하락했다. 

플랫폼 업체가 운송 효율을 높이기 위해 알고리즘과 빅데이터 등 최첨단 기술을 도입하면서 물류가 집중되는 주요 지역 운송비를 낮췄고, 결국엔 더 낮은 운임을 제시한 트럭 기사가 일감을 따는 출혈 경쟁으로 이어진 것이다. 플랫폼 수수료도 나날이 오르면서 트럭 운송 이윤을 갉아먹었다. 결국 트럭 기사는 플랫폼과 화주 사이에 낀 ‘플랫폼 노동자’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입도 쪼그라들었다. 10년 전만 해도 월 1만 위안 이상 수익을 버는 건 식은 죽 먹기였고, 열심히만 하면 월 2만~3만 위안도 거뜬히 벌었다. 하지만 현재는 대다수 트럭 기사의 월 수입이 1만 위안에 불과하다. 

중국 물류구매연합회가 발표한 2021년 화물차 운전기사 통계에 따르면 월 소득 5000~1만 위안을 버는 화물차 기사가 60%에 육박했다. 2만 위안 이상 버는 운전기사는 고작 5%에 불과했다. 

문제는 트럭 기사 대부분이 은행 대출 등을 통해 빌린 돈으로 트럭을 구매한 후 매달 대출금을 갚아나간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기사들 사이에서는 대출금을 하루라도 빨리 갚기 위해 초과 적재, 과속 같은 불법 행위가 비일비재하다. 

게다가 최근 코로나19 봉쇄령으로 발이 묶여 생계 유지마저 어려워졌다. 트럭 기사 쑹씨는 중국 펑파이망에 “최근 고속도로에 발이 묶였을 때 매달 1만4000위안씩 나가는 차량 대출금과 2000위안의 주택 대출금을 어떻게 갚아야 하나 막막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트럭 기사도 “코로나 확산세 속 중국 인구 14억명의 식자재를 운송하는데, 정작 우리 가족은 배를 곯는 상황”이라고 신세를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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