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화 가치가 끝도 없이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엔화가 바닥을 찾아 반등에 성공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문가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엔저가 당초 목표대로 일본 경제성장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한 가운데 일본은행이 현재의 초완화 정책을 포기하지 못하면 엔화 가치가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 가운데 현지 언론들은 엔저가 업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분석을 이어가고 있다.

엔화는 통상적으로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며 불확실성이 확대될 때 가치가 상승했다. 그러나 코로나 확산·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원자재 가격 상승·글로벌 증시 약세 등 수많은 불확실성 속에서도 올해 엔화 가치는 오르기는커녕 오히려 달러 대비 12% 가까이 하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4일(현지시간) 일본 엔화가 자체적으로 추적한 41개 통화 가운데 올해 들어 가장 큰 낙폭을 기록한 통화라고 설명했다. 러시아 루블이나 터키 리라화보다도 심각한 수준이다.

엔화 가치가 쉽게 회복될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가운데 현지 언론들은 엔저로 인한 영향을 가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엔저는 수출업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여겨져 왔다. 엔저를 통해 수출업체들이 외국에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제공하면 기업 매출이 증가할 것이라는 흐름이다. 이에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정권은 일본 경제 활성화를 위해 '아베노믹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대규모 재정지출과 일본은행의 공격적인 통화 완화책을 지지하며 엔저를 의도하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현재 계속되고 있는 엔저를 통해 혜택을 볼 수 있는 업종으로 전자기기나 비철금속 업종 등을 들었다. 특히 최첨단 기술을 통해 고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반도체 관련 사업체들이 높은 이익률을 기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반도체 원판으로 사용되는 반도체 웨이퍼를 수출하는 신에츠화학공업이나 반도체 감광액의 일종인 포토레지스트 등을 만들어내는 도쿄응화공업 등이 지목됐다.

이 밖에는 엔화 이외 통화로 자산을 벌어들이는 기업들이 엔저를 반길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해외 기술기업 투자에 집중하고 있는 소프트뱅크는 달러로 대부분 자산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엔저를 통해 큰 이익을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커크 부들리 레덱스리서치 분석가는 "소프트뱅크 그룹 자산 중 86%가량이 달러 연동자산"이라며 "엔화 가치가 달러 대비 12% 하락하면 소프트뱅크 자산 가치는 약 9% 높아진다"고 언급했다. 국외로 게임 등 미디어를 수출하며 높은 매상을 올리고 있는 닌텐도와 도에이애니메이션 등 역시 엔저 수혜를 톡톡히 볼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엔저를 통해 가장 큰 혜택을 볼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던 자동차 업계에서는 엔저를 반기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원자재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비용 증가가 부담스러울뿐더러 매출을 늘리기 위해 생산량을 늘리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혼마 다카유키 스미토모상사 글로벌리서치 수석 경제학자는 "엔저 혜택을 보기 위해서는 수출을 늘려야 하지만 신규 고객 유치와 생산량 증가 모두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수의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생산거점을 해외로 옮긴 가운데 엔저로 큰 혜택을 보기 어려워졌다는 시각도 있다. 일본자동차제조업체협회 자료를 기반으로 한 로이터 계산에 따르면 일본 제조업체가 매년 판매하는 자동차 중 약 3분의 2는 현재 해외에서 생산되고 있다. 20년 전만 해도 해외 생산 비중이 40%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는 것을 고려할 때 큰 변화가 이뤄진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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