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민주당, '변화'와 '개혁'으로 새 길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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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입력 2022-04-06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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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위원]


20대 대선이 막을 내린 지 어언 한 달째다. 겨울에서 봄으로, 무심한 계절변화와 관계없이 정치권에는 미묘한 기류가 감돈다. 더불어민주당은 좌절과 초조함, 국민의힘은 설렘과 기대가 교차한다. 두 진영 사이 미세한 긴장은 5월 9일 대통령 취임을 기점으로 본격화할 것이다. 그동안 대선 결과를 놓고 수많은 분석과 진단이 봇물을 이뤘다. 패자인 더불어민주당은 여러 단위에서 패인을 살폈다. 부동산을 포함한 정책 실패와 오만, 내로남불, 위선, 진영논리, 건전한 비판 문화 실종 등이 지목됐다. 이 모든 패인을 뭉뚱그려 집약하자면, 민주당에 주어진 과제는 ‘변화’와 ‘개혁’이다. 그런데 절박함을 찾아보기 힘들다.

윤호중 비대위 체제나 송영길 서울시장 출마를 보노라면 참으로 한가하다는 느낌이다. 당대표와 원내대표는 대선 패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서울시장 출마, 다른 한 사람은 비대위원장을 맡았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스스로 면책한 꼴이다. 자신에게 관대한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아무리 당위성이 앞선다 해도 민망하다. 성찰은커녕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두고 당내에서조차 부정적이다. 용퇴 압박을 받았던 86그룹은 “송영길, 하산하자더니 홀로 등산했다”며 서울시장 출마 선언에 황당해하는 분위기다. 스스로는 희생이라고 하겠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송 전 대표는 얼마 전 세대교체를 주장하며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86세대 용퇴론에 물꼬를 튼 기득권 내려놓기로 이해됐다. 그러나 22일 만에 자신이 했던 말을 뒤집음으로써 진정성은 빛바랬다. 선거용 술책에 불과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송영길은 SNS에서 “이제 누가 서울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당과 당원과 지지자들께서 판단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총선 불출마는 정치교체이며, 서울시장 출마는 정치개혁이라는 건지 아리송하다. 아전인수식 자기면책은 4·7재·보궐선거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도 교훈을 얻지 못한 채 안일하게 1년을 허비하다 대선 패배를 맞았다.

‘전국선거 4연승’이란 춘몽은 4·7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깨졌다. 당시 민주당은 서울과 부산 41개 기초 자치구에서 한 곳도 이기지 못했다. 적게는 18%p에서 많게는 25%p까지 뒤졌다. 특히 서울은 국회와 자치단체장, 시의회까지 장악하고도 참패했다. 그냥 진 게 아니라 완패였다. 그런데도 민심을 헤아리지 못한 채 오만했다. 180석을 도깨비 방망이로 착각한 나머지 국회 상임위원장 독식, 입법 독주, 내로남불, 위선을 반복했다. 이번 대선 패배에도 깨닫지 못한다면 6·1지방선거는 물론 22대 총선을 장담하기 어렵다. 4연승이 4연패로 이어질 수 있건만 그들 눈에만 위기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호남에서 민주당 현실은 한층 한심하다. 경쟁이 없다보니 반성도 치열함도 없다. 그들에게 경쟁은 공천 경쟁을 의미한다. 오로지 충성할 대상은 공천권을 쥔 중앙당 인사다. 호남은 40여 년간 관성적인 한풀이 투표에 머물러 있다.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는 꽃놀이패가 가능했던 이유다. 민주당 정치인들이 단맛에 젖어 있는 동안 지방권력은 독점화됐고 정체와 퇴보를 거듭해 왔다. 이번 대선에서도 호남은 갈라파고스처럼 고립됐다. 지방권력은 민심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오만하다. 송하진 전북지사 3선 출마와 대항마가 없는 김영록 전남지사는 호남이 얼마나 고인 물인지를 방증한다.

변화는 오히려 보수정당 국민의힘과 보수성향 영남지역에서 엿보인다. 국민의힘 텃밭인 대구에서는 권영진 시장이 3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대구시장으로서 소명과 역할은 여기까지다. 남은 과제는 다음 시장이 완수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지역 시민단체가 낙천운동을 벌이고 있음에도 3선 출마를 강행한 전북지사와 대별되는 지점이다. 3선 출마에 대해 지역여론이 곱지 않은 건 분명해 보인다. 이에 비해 황야나 다름없는 경남에서 민주당 청년 정치인들이 보인 행보는 돋보인다. 경남도지사(신상훈·32)와 함안군수(장종하·37), 하동군수(강기태·38) 후보는 상징적이다. 같은 민주당 옷을 입었지만 호남이라는 텃밭에 안주해 독점을 이어가려는 70대 정치인과 영남이라는 광야에 도전장을 내민 30대 패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앞서 국민의힘은 30대 원외 이준석을 보수정당 대표로 선출함으로써 절박함을 드러냈다.

국민의힘에 있는 절박함과 치열함이 민주당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만일 민주당이 지도부를 일신하지 못하고 호남 기득권에 안주한다면 지방선거 참패는 예약돼 있다. 왜 대선에서 패했는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냉정하게 복기하고 변화해야 한다. 그런데 분노와 체념만 가득하다. 에코챔버에 갇혀 분노만 키우는 것으로는 길이 없다. 아직도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비록 패했지만 역대 최대 득표’라는 주문을 외며 자기위안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암울하다.

찰스 다윈은 “강한 종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변화하는 종이 살아남는다”고 했다. 변화하지 않는 정당은 정체되고 퇴보할 수밖에 없다. 변화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 개혁도 가능하다. 86정치인 중 한 명인 김영춘은 부산시장 불출마 변에서 “거대담론 시대가 가고 생활정치 시대가 왔다. 그럼에도 격변하는 정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대선에 패했다”고 고백했다. 김영춘이 갈파했듯 민주당은 변화에 둔감한 공룡 정당으로 전락했다. 내부 비판을 허용하지 않고 자기합리화에 급급했고 반성하지 않았다. 당내 상식적인 목소리를 억누른 ‘조용한 단결’은 민주당을 갉아먹는 독이 됐음은 물론이다.

오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민심에 부응하는 길은 ‘변화’와 ‘개혁’이다. 공천 기준도 여기에 두어야 한다. 특히 호남에서 기득권 청산은 두말할 나위 없다. 혁명은 보이는 적과 싸움이며 개혁은 보이지 않는 나와 싸움이다. 민주당은 언제까지 쉬운 싸움만 할 것인지 치열하게 물어야 한다. 180석이란 혼곤한 잠에서 깨어야 새 길이 열린다. 죽은 물고기만 강물에 떠내려간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학교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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