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민주당의 새로운 길, 첫걸음은 '당내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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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입력 2022-03-1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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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위원]


민심이 무섭다는 말을 실감한 20대 대선이었다. 허균은 ‘호민론(豪民論)’에서 오만한 권력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그는 백성을 항민(恒民), 원민(怨民), 호민(豪民) 세 부류로 나누고 이 가운데 두려운 존재는 호민이라고 했다. 호민은 때가 되면 행동으로 옮기는 백성이다. 대개 힘없는 백성이 권력을 상대로 목소리 낼 때는 막바지에 이른 경우다. 박근혜 정부 몰락도, 문재인 정부 좌초도 모두 행동하는 호민에 의해서였다. 분노한 호민은 촛불로, 투표용지로 두 정권을 번갈아 심판했다. 국민의힘 윤석열(48.6% 1,639만 표)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47.8% 1,614만 표) 간 표 차이는 0.8%, 24만 표에 불과했다.

시민들은 문재인 정부를 ‘손절’했지만 그렇다고 국민의힘에 ‘몰빵’하지도 않았다. 민주당에는 성찰, 국민의힘은 자만하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를 전했다. 민주당이 거대 의석을 앞세워 차기 정부를 발목 잡거나, 국민의힘이 정치보복 유혹에 빠질 경우 6월 지방선거와 다음 총선에서 언제든 단죄하겠다는 여지를 남겼다. 그러면 거대 여당이 침몰한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이라는 게 있다. 대형 사고가 있기 전까지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가 쌓여 발생한다는 이론이다. 더불어민주당 패배는 어쩌면 수많은 징후와 조짐을 외면하거나 무시한 결과다.

문재인 정부 출발선은 촛불이다. 국정농단에 분노한 국민들은 광장에 섰다. 촛불시위와 대통령 탄핵에 따른 조기 대선에서 민주당은 정권을 되찾았다. 문재인 대통령 득표율은 41%로, 당시 투표율(77.2%)을 고려하면 실질적 지지율은 31.6%였다. 국민 70%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한 불안한 출발이었다. 그럼에도 80%대 지지를 얻으며 기세 좋게 출범했다. 국민들은 비록 레토릭일망정 국민통합을 내건 문 대통령 취임사에 환호했다. 그러나 정권 내내 적폐청산이라는 이름 아래 분열의 정치에 골몰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주도자가 아닌 수혜자다. 그런데 그걸 착각한 나머지 오만했다. 국민들은 그런 민주당 정권을 심판했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좋아서가 아니라 민주당 정권이 싫어 투표했다는 여론이 힘을 얻었던 이유다. 이쯤해서 민주당 패인을 복기해보자. 첫째, 정책 실패와 편 가르기다. 문재인 정부는 ‘선한 의지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상식을 입증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이었지만 을끼리 싸움을 부추기거나 더 힘들게 했다. 28번에 걸친 부동산 정책은 집값만 올려놨다. 임대차 3법 또한 마찬가지였다. 선한 의도였지만 시장은 반대로 움직였다. 절망감은 정권교체 도화선이 됐다.

편을 갈라 지지층에만 기댄 분열의 정치는 가장 큰 패착이었다. 야당 반대에도 불구하고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고 임용한 장관급 인사만 32명. 문 대통령은 그때마다 “인사 청문회에서 많이 혼난 사람이 일도 잘한다”며 합리화했다. 조국 장관 임명은 편 가르기 정치의 정점이었다. 문 대통령은 “조국 장관에 대해 마음의 빚이 있다”는 말로 민심을 거슬렀다. 안일한 인사는 김기표 반부패비서관에서도 반복됐다. 김기표는 LH사태로 시민 분노가 촉발하던 때 임명장을 받았다. 그는 부동산 투기의혹에 휩싸인 나머지 3개월 만에 옷을 벗었다. 내 편은 괜찮다는 진영논리와 아집에서 비롯된 인사 참사였다.

둘째, 오만했다. 집권 초기, 32살짜리 청와대 5급 행정관이 육군 참모총장을 커피숍으로 불러냈다. 청와대 정부로 표현되는 문재인 정부 오만을 상징한 촌극이었다. 민주당 정권의 오만은 21대 총선 압승 이후 가속 페달을 밟았다. 민주당은 180석을 아무것이나 해도 되는 것으로 여겼다. 민주당은 국회 18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했다. 헌정사상 처음이었다. 고위공직자수사처를 설치하는 과정에서는 아예 야당 추천권을 박탈했다. 또 비례위성정당 설립,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위해 말과 글을 뒤집었다. 당원들 뜻이라고 우겼지만 낯 뜨거운 행태였다.

‘조국‧윤미향‧추미애’ 논란을 거치면서 위선은 한층 극성을 부렸다. 조국 법무장관 지명 당시 반대여론은 높았다. KBS 여론조사(2019년 9월 10~11일) 결과, 조국 임명에 대해 ‘잘못됐다’ 51%, ‘잘했다’는 38.9%였다. 그러나 대통령은 강행했고, 민주당은 군대조직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나아가 다른 목소리를 가차 없이 응징했다. 조응천‧금태섭은 배신자로 치부됐다. 금태섭은 공천 탈락에 이어 부관참시에 가까운 징계까지 받았다. 민주주의 없는 민주당이라는 조롱은 이때 나왔다. 합리적 목소리가 사라지고 당론이라는 이름 아래 획일적인 행동을 강요받는 민주당은 그렇게 민심에서 멀어졌다. 

셋째, 반성할 줄 몰랐다. 대법원은 입시비리와 관련된 조국 자녀 혐의 7건을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정경심은 4년 실형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였지만 유죄로 인정해야 할 만큼 혐의는 명백했다. 하지만 조국에서 헌사를 바쳤던 누구 하나 반성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판부를 공격했다. 김경수 재판에서도 재판부를 공격하며 사법 근간을 흔들었다. 자기 진영에 불리하게 판단했다는 이유였다.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위해 피 흘려온 민주당 정체성은 이때 사망선고를 받았다. 또 ‘피해 호소인’으로 부르며 피해자 가슴을 후볐다. 윤미향을 비판하는 이들은 토착 왜구라며 반격했다.

그러면 어떤 과제가 남았을까. 첫째, 상식과 잃어버린 도덕적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 건전한 당내 비판과 토론문화를 활성화해야 한다. ‘레드팀(반대 의견 제시)’과 ‘악마의 대변인’을 두고 확증편향을 경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당론을 폐지하고 하향식 공천제를 도입해야 한다. 당론이라는 반민주적 정당 운영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 상향식 공천제를 도입해 패거리 문화와 줄서기 문화를 끝내야 한다. 진짜 진보로 거듭나야 한다.

둘째, 이재명 후보가 약속한 정치개혁 과제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여야 모두 승자독식 대통령 중심제가 갖는 한계에 공감했다. 4년 중임제 개헌과 결선 투표제,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다당제를 가능케 하는 선거구제 개편을 골자로 하는 개헌에 나서야 한다. 만일 민주당이 선거 초반에 정치교체와 국민통합을 내걸었다면 선거 양상은 상당 부분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에 직면해 발표함으로써 진정성을 의심받았고, 프레임을 바꾸는 데 실패했다. 진정성을 갖고 정치개혁을 주도한다면 신뢰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셋째, ‘유연한 진보’로 전환이다. 진보진영은 정책을 수정하는 걸 패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야당과 협치를 담합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교조적 행태에서 벗어나 ‘우리도 틀릴 수 있다’는 유연함을 가져야 한다. 우루과이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2010~2015)은 “우리가 틀렸다, 우리가 잘못했다고 말하고 방향을 바꾸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야당과 협치를 바탕으로 우루과이는 남미대륙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을 이뤘다. 앞서 언급했듯 민주 대 반민주, 친일 대 반일 등 철 지난 이분법적 진영논리를 경계해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대선 패배는 5년 동안 실점이 누적된 결과다. 그렇다면 새로운 방향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겸손하되 유능한 진보, 도덕적 권위를 지닌 진보다. 또 맹목적인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엇보다 상식 회복이 관건이다. 언제든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당내 민주화는 그 첫걸음이다. 또 차기 정부와 협치를 통해 넉넉한 품을 알릴 필요가 있다. 87년 체제로 표현되는 낡은 정치제도를 바꾸는 데 당력을 결집하자. 정치교체는 정권교체보다 중요하다. 

이재명은 선거 직후 대선 결과를 승복하며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했다. 윤석열 당선인에게도 축하를 건네며, 통합을 위해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자칫 불복 논란으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을 정리했다. 진보의 품격을 보여줬다는 긍정적 평가다. 이제는 0.8%에 연연하기보다 민주당과 이재명을 지지한 47.8%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오만과 내로남불, 위선에서 벗어나 넉넉하고 유연하자. 소수의 목소리를 담는 정치개혁에 나서자. 그럴 때 민주당을 심판했던 호민도 지원군으로 돌아온다. 매화는 추위가 혹독할수록 깊은 향기를 품는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학교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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