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부끄러운 '정치는 4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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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입력 2022-02-21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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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위원]


막판으로 치닫는 20대 대선 한가운데서 이건희 회장이 했다는 발언을 다시 떠올렸다. 그는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정치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 회장은 “한국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일갈했다. 이 발언으로 삼성은 상당기간 후폭풍을 감내해야 했다. 이후 27년이 흘렀다. 얼마나 바뀌었을까. 기업을 제외한 행정과 정치는 정체되거나 오히려 퇴보했다는 게 냉정한 진단이다. 한국은 반도체를 비롯해 자동차와 조선, 전기차 배터리, 가전제품 부문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섰다.

지난 4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직접 투자를 요청하면서 백악관으로 글로벌 핵심 기업들을 초청한 행사는 상징적이었다. 백악관은 인텔과 마이크론, GM, 포드, 구글, AT&T를 초청하면서 삼성전자를 불렀다. 이날 행사는 달라진 우리기업의 위상을 가늠하게 했다. 이렇게 지난 27년 동안 한국기업은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한류를 기반으로 한 K콘텐츠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이다. BTS를 비롯해 영화(기생충, 미나리)와 드라마(오징어게임, 지옥, 지금 우리학교는, 대장금, 겨울연가)에 세계는 열광했다. 이 회장이 비워놓은 1류 자리는 K콘텐츠가 차지했다. 이제 “한국 K콘텐츠는 1류,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로 재정리할 수 있다.

우리 정치가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건 오래된 비판이다. 퇴행적인 한국정치는 20대 대선에서 한층 노골화됐다. 대화와 관용, 협치는 실종된 채 증오와 갈등, 보복정치는 일상화 됐다. 정책대결이 사라진 자리에 혐오와 네거티브가 판을 치고 있다. 정치가 후진성을 면치 못하다보니 정치를 혐오하는 무당층은 대폭 늘었다. 언론은 20대 대선을 역대 최고 비호감 선거로 규정짓고 누가 당선되든 후유증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재명과 윤석열 후보가 지지층에서조차 온전한 지지를 얻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퇴행을 넘어 한류와 1류 기업이 쌓아올린 국제 신인도마저 정치는 한순간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다.

해외 언론이 전하는 한국의 20대 대선 풍경은 낯 뜨겁다. 외신은 정책대결은 뒷전인 채 스캔들과 의혹, 거짓말로 정치 혐오감은 극에 달했다고 진단했다. 영국 유력 매체인 선데이타임스는 한국 대선이 후보 부인들의 비호감 대결로 번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매체는 이재명 후보 부인 김혜경 씨와 윤석열 후보 부인 김건희 씨를 실명으로 거론하며 제기된 의혹을 상세히 전했다. 그러면서 “안보 위협, 부동산 문제 등 한국사회가 마주한 위기가 큰 데도 대선 주자 간 현안에 대한 논쟁은 없고, 대신 후보와 부인들은 ‘스캔들과 속임수 쓰나미’에 휩싸였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외신이 전하는 후보 도덕성과 부인 리스크는 민망하다.

선데이타임스는 “대중이 분노하는 최전선에는 미래 영부인들이 서있다”면서 “김혜경 씨는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포함한 ‘과잉 의전’ 논란으로 대국민 사과를 했고, 김건희 씨 또한 언론인을 감옥에 보내겠다고 협박했으며 자신의 신통력을 자랑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 역시 “추문과 말다툼, 모욕으로 얼룩지고 있다”고 했다. WP는 민주당 이재명은 토지 개발 비리 스캔들에 휩싸였고 국민의힘 윤석열은 항문 침술사와 연관됐다고 언급한 뒤, 두 후보 드라마가 가족으로까지 번졌다고 분석했다. 또 김혜경 씨는 공무원 사적 지시 논란과 장남 불법 도박 의혹 문제가 있고, 윤석열 후보 장모는 통장 잔액 증명을 위조한 혐의로 유죄판결 받았다고 보도했다. WP는 “한국인은 정치 추문에 낯설지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권력 남용 혐의로 탄핵 당했고 무속인이 정치에 개입됐다는 의혹도 받았다”면서 “다가오는 대선은 ‘비호감 선거’라고 불릴 만큼 역대 최악”이라고 규정했다.

어쩌다 한국 대선이 해외언론에서조차 걱정해야할 만큼 망가졌는지 부끄럽다. 선거가 축제라면, 대선은 가장 큰 축제다. 그런데 축제는커녕 해외 언론으로부터 조롱을 듣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정치권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선을 축제라고 여기는 국민들 또한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인들은 문화예술인과 기업인들에게 부끄러워해야 한다. WP는 “이번 대선은 북한과 중국, 미국, 일본과 관계에서 미래를 형성해야 하는 중요한 선거다. 그런데도 두 후보는 정책 토론 대신 탈모 치료 건강보험 적용이나 흡연자 권리 확대와 같은 정치적 영합만 있다”고 비판했다. 미래를 준비하는 대선이기보다 뒷걸음치는 현실에 대한 객관적 비판이다.

비록 외신이지만 우리가 처한 20대 대선을 냉정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비전을 제시하고 희망을 주기는커녕 당선에만 혈안 된 권력욕이 20대 대선 판을 배회하고 있는 셈이다. 국가 이미지나 대외 신인도를 결정하는 요인 가운데 정치를 빼놓을 수 없다.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정치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들은 어떤 정치제도를 택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렸다며 남한과 북한을 사례로 제시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해외문화홍보원은 최근 한국에 대한 긍정 평가가 높아졌다고 밝혔다. 동남아 등 일부 국가에서는 90%가 넘고, 다른 국가들에서도 70~80%가 넘는다는 조사 결과였다.

한국을 대하는 긍정 평가가 높은 원인은 한류와 K콘텐츠 덕분이다. 아마 정치에 국한해 평가한다면 한국은 밑바닥을 맴돌 게 분명하다. 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여야 정치권은 K콘텐츠는 1류, 정치는 4류라는 도식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대 대선에서 그나마 기대하는 게 있다면 우리정치가 얼마나 퇴행적인지 직시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다. 연세대 동아시아 전문가인 존 델러리는 선데이타임스에서 “한국 정치는 그간 피 튀기는 경쟁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싸움판에 쓰이는 정책 토론은 거의 없어졌다. 그래서 후보자, 배우자, 가족을 겨냥한 개인적 공격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분석했으니 낯 뜨겁다.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 다르시 드라우트 또한 WP에서 “이번 선거는 ‘둘 중 누가 덜 악한가’라는 틀에 묶여 선택한 후보가 이기더라도 만족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인하고 싶지만 수긍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우리정치 체제에서 드러난 단점을 개선되길 바라지만 기대난망이다. 정치는 4류라는 오명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지 부끄러워해야 한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학교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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