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얄팍한 공약보다 국민통합 우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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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입력 2022-02-16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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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위원]


제20대 대선 본선 선거운동이 15일 막을 올렸다. 첫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상징적인 유세 일정을 택해 눈길을 끌었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 고속도로를 축으로 한 사람은 상행선을, 다른 한 사람은 하행선을 탔다. 이 후보는 부산에서 시작해 서울로, 윤 후보는 서울에서 시작해 부산으로 내려가 하루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재명은 위기에 강한 경제 대통령을, 윤석열은 무능한 정권교체를 강조했다. 경부선 상행선과 하행선 일정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론 극단을 달리는 두 정당 간 진영 대결과 정치 지향점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극심한 선거 후유증 그림자가 아른거린다는 이들이 많다.

다행히 두 후보는 첫날 국민 통합과 엄격한 주변 단속을 약속했다. 이재명 후보가 강조한 국민 통합 메시지는 강렬했다. 그는 진영을 가리지 않고 인재와 정책을 펴는 통합·실용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실천적 의지를 담은 메시지는 단호했다. 이 후보는 “내 편이면 어떻고, 네 편이면 어떻습니까. 전라도 출신이면 어떻고, 경상도 출신이면 어떻습니까. 왼쪽이면 어떻고, 오른쪽이면 어떻습니까. 박정희면 어떻고, 김대중이면 어떻습니까. 국민에게 도움 되는 것이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고 했다. 진영과 지역주의, 낡은 이념, 산업화와 민주화를 뛰어넘어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실용적으로 국가를 운영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돼 큰 호응을 얻었다.

반면 윤석열 후보는 자신은 정치 신인이라서 기득권에 맞서 과감하게 개혁할 수 있다며 정권교체를 강조했다. 국민 통합 메시지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는 어떤 후보보다 통합에 주력해야 한다. 지금 정치지형이라면 설령 정권이 교체된다 한들 2년 동안 한 발짝도 나아가기 어렵다. 민주당과 정의당, 무소속은 180석에 달해 국회 동의를 얻지 못하면 식물정부가 되기 십상이다. 그에게 통합과 협치는 절대적이다. 지금까지 우리 정치 관행을 감안할 때 통합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파국은 피하기 어렵다.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주변과 측근 부정부패도 단호하게 읍참마속하겠다”는 것만으로는 국정 운영에 한계가 있다.

이런 면에서 이재명 후보가 입에 올린 국민 통합 메시지는 반길 일이다. 다만, 표를 의식한 수사에 그치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통합을 강조했지만 결과적으론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섬기겠다”고 했지만 반대여론을 무릅쓰고 강행한 조국 장관 임명 과정에서 진영 대결은 심화됐다. 국민 통합은 말처럼 쉬운 과제가 아니다. 자신과 진영을 상대로 칼을 겨눴던 이들을 포용하고 증오까지 감싼다는 건 녹록지 않다. 선거기간 동안 수없이 자기최면을 걸고 표명해도 부족하다. 윤 후보가 언급한 적폐 청산을 놓고도 벌써부터 보복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포용과 관용은 오히려 혹독한 시련을 겪은 이들에게서 발견된다. 15대 대통령 김대중, 남아프리카공화국 넬슨 만델라, 우루과이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은 대표적이다. 세 지도자는 무자비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집권한 뒤 관용과 포용정책으로 일관했다. 김대중은 군사정부 아래에서 고문과 납치, 사형 언도까지 받았다. 그는 집권부터 보수 정당과 DJP연합을 꾸려 실용정부를 구성했다. 집권 초기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주요 인사를 영남권에 배려했고, 자신에게 사형을 언도했던 전두환과 노태우를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과 환담을 나눴다. 한결같은 포용과 화합 정치를 토대로 DJ정부는 국가부도 사태를 조기에 마무리 짓고 국제사회로 복귀했다.

넬슨 만델라는 50년 넘는 흑백 차별 정책(아파르헤이트)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27년 동안 감옥에서 보냈다. 출소 후 증오를 내려놓고 국민 통합에 나섰다. 그가 주도한 ‘몽플뢰르 콘퍼런스’는 갈등 해결과 국민 통합의 모범 사례로 거론된다.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에는 국민 통합을 위한 노정이 잘 기록돼 있다. 만델라는 부풀 대로 부풀었던 백인에 대한 보복을 잠재우고 인종 갈등을 봉합함으로써 국민 역량을 한곳으로 모았다. 그 결과 남아공은 혼란을 극복하고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다. 2010년에는 보란 듯이 월드컵까지 성공적으로 치렀다. 만약 증오와 보복을 반복했다면 단언컨대 오늘날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없다.

호세 무히카 대통령 또한 비슷한 행로를 걸었다. 그 또한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반정부 단체에서 활동하다 12년간 옥살이를 했다. 무히카는 1973년부터 1985년까지 교도소 여러 곳을 전전하며 독방에서 보냈다. 가족, 친구, 사회와 격리된 4500여 일 수감생활은 처절했다. 그런데도 무히카는 대통령에 취임한 뒤 국민 통합을 최대 기치로 내 걸었다. 무히카는 평소 “수십 년간 내 정원에는 증오를 심지 않았다. 증오는 어리석은 짓”이라는 말로 화합과 포용을 주문했다. 우루과이는 무히카 집권기간 높은 경제성장을 이뤘다. 그가 퇴임한 2015년 우루과이 1인당 국민소득은 1만8100달러로 남미 최고 수준이었다. 무히카는 퇴임하면서 65% 지지율로 취임할 때보다 높은 지지를 얻고 행복한 농부로 돌아갔다. 포용과 관용의 힘은 이렇게 크다.

지금 선거 구도대로라면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가운데 한 명이 20대 대통령에 오르게 된다. 누가 대통령에 취임하더라도 국민 통합은 절대적이다. 앞서 언급했듯 포용과 관용 대신 증오와 보복 정치로 인한 결과는 뻔하다. 국론 분열, 민생 불안, 경기 침체, 국제사회 신인도 하락이다. 두 갈래 길에서 취해야 할 스탠스는 분명하다. 관용과 포용을 바탕으로 한 국민 통합이다. 국민 통합을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한 걸음도 나아가기 어렵다. 국민 통합은 실천적 의지에서 시작된다.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폭넓게 소통하는 게 첫걸음이다. 조선 세종과 중국 당태종은 좋은 본보기다. 그들은 끊임없이 듣고 편벽을 경계했다.

22일 후면 대한민국을 이끌 새로운 지도자가 선출된다. 선거기간 동안 그들이 보인 자질이나 도덕적 흠결, 부인 리스크에 실망한 국민들이 적지 않다. 이 모든 흠결을 덮고 존경받는 정치 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다면, 누가 국민 통합을 실천하느냐다. 남은 선거기간 동안은 얄팍한 공약을 내놓기보다 국민 통합 의지를 밝히는 게 우선이다. 참고로 김대중, 만델라, 무히카 세 지도자에게 보이는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얼굴 표정이다. 그들에게서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이들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평온하고 넉넉함을 볼 수 있다. 우리 후보들에게 그런 넉넉함과 인자함이 있는지 살펴 볼 일이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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