㉔담빛예술창고와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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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 교수
입력 2022-02-1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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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곡수매창고의 실험적 변신

담양 도심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객사리 석당간(石幢竿), 남산리 5층 석탑, 이 세 곳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붉은색 창고 건물이 있다. 객사리 관방천변에 위치한 담빛예술창고. 바로 뒤로 10미터만 가면 관방제림이 쫙 펼쳐진다. 담빛예술창고는 해동문화예술촌과 함께 담양을 대표하는 문화예술공간이다. 모두 근대산업유산을 되살렸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담빛예술창고는 2015년 문을 열었다. 이곳에 가면 두 채의 붉은색 창고가 사람을 맞이한다. 붉은 벽돌을 쌓아올린 단순하고 육중한 건물 두 채는 ㄱ자로 연결되어 있다. 창고 외벽에는 페인트로 큼지막하게 ‘南松倉庫’(남송창고)라고 쓰여 있다. 붉은 벽돌 위에 쓰여진 뽀얀 페인트 글씨가 정겹게 다가온다. 영락없는 1970~1980년대 풍이다. 그 시대를 건너온 사람들이라면 건물의 외모에서 양곡창고였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것이다.
 

1968년 지은 양곡수매 창고를 담빛예술창고로 리모델링했다. [사진=이광표]

이 창고 건물은 1968년 담양 지역에서 수확되는 양곡을 보관할 목적으로 지은 양곡수매창고였다. ‘남송(南松)’은 이 창고 주인의 아호. 그때부터 남송창고는 담양의 주요 양곡창고의 하나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2004년 양곡수매제도가 폐지되면서 그 기능을 상실한 채 방치되었다. 그렇게 10년 정도 세월이 흘렀고 건물이 너무 아깝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유익하게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사람들은 머리를 맞댔다. 시대적 트렌드에 발맞춰 창고를 리모델링해 문화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담양군이 매입한 건물은 보수와 리모델링 과정을 거쳐 2015년 9월 담빛예술창고로 다시 태어났다. 2020년엔 그 옆에 비슷한 분위기로 건물을 한 채 더 지어 담빛예술창고 2관으로 사용 중이다. 담빛예술창고는 옛 양곡창고건물(남송창고) 2개동과 새로 지은 1개동으로 되어 있다.

담빛이라는 이름이 이색적이면서도 참 따스하고 아름답다. 담빛은 창고를 문화예술공간으로 꾸미는 과정에서 공모를 통해 채택한 이름이라고 한다. ‘담양의 빛’이란 뜻으로, 담양의 분위기에 참 잘 어울린다.

담빛예술창고는 야외 전시공간, 문예카페(남송창고 1개동), 갤러리(남송창고 1개동과 신축 건물)로 꾸며져 있다. 앞쪽 외부의 잔디마당에는 귀여운 판다 조형물, 자동차 조형물 등을 설치해 놓았다. ‘천년 담양’ 심벌마크가 새겨진 우체통도 보인다. 이 우체통은 무언가 시간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잔디마당에는 갤러리 전시에 맞춰 수시로 새로운 미술품을 설치하고 교체하기도 한다.
 

담빛예술창고의 문예카페와 대나무 파이프오르간. [사진=이광표]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공간은 남송창고 건물에 조성한 문예카페. 차를 마시면서 책도 보고 관방제림도 감상할 수 있다. 양곡창고 특유의 높은 천장을 노출시켜 트러스 구조를 직접 느껴볼 수 있도록 했고 육중한 철문을 입구로 활용해 옛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문예카페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것은 단연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이다. 남송창고 리모델링이 한창이던 2015년 담양에선 담양세계대나무박람회가 열렸다. 이때 박람회를 기념하고 동시에 미래의 문화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논의 끝에 대나무 이미지를 살려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을 만들기로 했다. 필리핀의 파이프오르간 전문업체인 카릴론 테크놀로지에 제작을 맡겼다. 700여개의 대나무가 들어갔고 높이 4미터, 폭 2.6미터. 문예카페의 한쪽 벽의 절반 정도를 꽉 채우는 웅장한 규모다. 국내 유일의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은 그렇게 탄생했다.
 

담빛예술창고에선 매주 주말 오후에 대나무 파이프오르간 공개연주회가 열린다. [사진=담양군 문화재단]

지난해까지는 주말과 평일에 대나무 파이프오르간 공개연주회를 열었다. 올해 들어선 매주 토·일요일 오후 3시로 연주회가 축소됐지만 공연이 열리는 주말이면 점심시간쯤부터 카페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다. 미리 좋은 자리를 잡으려는 것이다. 위치가 좋은 2층에 자리를 잡는 젊은이들도 있고, 대나무 파이프오르간 바로 앞을 차지하는 가족들도 있다. 공연은 연습 30분 정도, 본 연주 30분 정도로 진행된다. 연주시간에는 감상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음료 주문도 받지 않는다. 연주곡은 우리에게 익숙한 클래식과 종교음악이 대부분이고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캐럴을 연주하기도 하고 가끔씩 드라마나 영화 OST도 들려준다. 연주자가 직접 해설을 곁들이는 경우도 있다.

일반 파이프오르간에 비해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은 더 따뜻하고 아늑한 소리가 난다고 한다. 양곡창고 건물이다 보니 천장이 높다. 그래서 소리의 울림이 공간 내부를 휘감아 도는 듯 더 넉넉하고 더 깊다. 태교에 좋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최고의 힐링이라 말하는 이도 있다. 대나무 파이프오르간 연주를 듣다보면 성당이나 교회 예배당에 들어온 듯하다. 그 평화롭고 성스러운 분위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대나무 파이프오르간 연주는 담빛예술창고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주말이면 이 연주를 감상하기 위해 담양과 광주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찾아온다. 이에 대해 담빛예술창고의 이명지 큐레이터는 “마니아층이 형성되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귀띔한다. 이제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은 담양에서 만나는 최고의 매력 가운데 하나다.
 

담빛예술창고 2층 카페에서 내려다본 관방제림 [사진=이광표]

카페 뒤쪽 벽 일부는 커다란 통유리 공간으로 만들었다. 벽의 일부를 트고 이 부분을 돌출시켜 유리 공간으로 꾸민 것이다. 이곳에선 바깥 관방제림의 노거수와 조각공원을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다. 문을 열고 나가볼 수도 있다. 카페 내부의 일부 공간은 2층으로 꾸몄다. 2층 바에 앉으면 카페 내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대나무파이프오르간의 연주 장면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어서 주말이면 자리 경쟁이 치열하다. 가로로 길쭉하게 만들어놓은 창을 통해 내려다보는 관방제림 풍경도 일품이 아닐 수 없다.

새로 지은 담빛예술창고 2관의 2층에는 담양의 역사문화와 관방제림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는 공간이 있다. ‘관방제 관방제림’과 ‘천년 담양 역사보기’다. 이 가운데 특히 ‘천년 담양’ 코너가 눈길을 끈다. 고려 때인 1018년에 새로운 군현제도가 이뤄지면서 담양군이라는 지명이 처음 쓰이게 되었다는 설명이 흥미롭다. 그때부터 담양이라는 지명이 1000년 넘게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담양 역사전시실에 전시된 송순의 '면앙집' [사진=이광표]

갤러리 공간에서는 부지런히 전시가 열린다. 전시는 담양 지역의 미술가에게만 국한하지 않는다. 담양과 광주뿐 아니라 전국 각지의 작가를 섭외해 전시를 기획한다. 전시 내용은 진취적이고 실험적인 편이다. 일반적인 회화보다는 사진, 영상, 미디어, 설치 등 실험적인 스타일의 작품을 많이 선보인다. 아울러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작품도 적지 않다. 그동안 개최한 기획전의 주제만 보아도 흥미롭다. ‘듣고 보고 만지는 현대미술전’ ‘예술, 즐기는 데 정답은 없다’ ‘미식가들의 만찬’ ‘창고에서 만나는 팝아트, 아트상품전’ ‘컨템포러리 아트 인 남도’ ‘아르-떼창:다양성의 합창’ 등등.

담빛예술창고의 전시 기획은 자신감이 넘친다. 담양군문화재단의 설명문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담양이 큰 도시는 아니지만, 담양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전시, 국내에서 최초가 되는 전시를 기획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일반 대중이 좋아하는 전시나 상업적인 전시보다는 미술사에 기록이 될 만한 전시나 현실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전시를 선보이고자 합니다.’
 

담빛예술창고의 갤러리 [사진=이광표]

이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면서도 긍정적이라고 한다. 이명지 큐레이터의 설명. “다소 어려워하는 분들도 있고 참신하다고 하는 분들도 있어요. 호기심을 드러내는 분들도 많습니다. … 어쨌든 담양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더 많은 미술을 제공해 드리고 싶습니다.” 담양 사람들은 이렇게 담빛예술창고에서 새롭고 젊은 미술과 만나면서 예술을 경험하고 있다.

담빛예술창고는 도시재생 차원을 넘어 어느덧 담양 문화의 간판으로 자리 잡았다. 담양의 대나무 문화, 가사와 누정 문화에 그치지 않고 우리 시대의 싱그러운 문화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옛것과 요즘 것의 조화가 그윽하고 향기롭다. 담빛, 그 이름에 잘 어울린다.

이광표 서원대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위원
후원=담양군(군수 최형식) 뉴파워프리즈마(회장 최대규)
 
 참고문헌
1. 담양군․ 담양군문화재단 '담빛, 예술을 담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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