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원작자 강미강 작가가 옷소매 붉은 끝동을 통해 얻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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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이 객원기자
입력 2022-02-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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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마음 가는 대로 살고 싶다’는 궁녀와 “넌 궁녀니 나의 것”이라면서도 마음을 강요하지 않았던 왕세자의 로맨스에 시청자들이 빠져들었다.

자신이 선택한 삶을 지키고자 한 궁녀와, 사랑보다 나라가 우선이었던 제왕의 애절한 궁중 로맨스를 담은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원작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원작자인 강미강 작가는 ‘옷소매 붉은 끝동’이 첫 작품이었음에도 탄탄한 전개와 섬세한 필체로 호평을 받았다. 강미강 작가와 ‘옷소매 붉은 끝동이 강미강에 남긴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옷소매 붉은 끝동 드라마의 한 장면 [사진=문화방송] 

Q. 17살 때 어쩌다가 옷소매 붉은 끝동을 구상하게 됐나요? 영감들은 어떻게 얻었나요? 고등학교 때 처음 의빈성씨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A. 정확히는 16살에서 17살로 넘어가는 겨울이었는데, 본격적인 입시 준비가 시작되기 전이라 시간 여유가 있었어요. 그래서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때 정조의 후궁이 고전소설 ‘곽장양문록’의 필사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의빈성씨는 물론 함께 작업을 했다는 궁녀들에 대해 흥미가 생겼어요. 또한 나름대로의 삶이 있었던 인물에게 주어진 왕의 사랑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지 궁금했어요.
 
Q. 사료를 찾아보면서 쓰느라 10년 가까이 걸렸다고 들었는데요. 사료를 어떻게 찾아보셨나요? 이야기를 풀어나가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해요. 자료조사는 어떻게 했나요?

A. 정조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책과 영상물은 많은데, 의빈성씨에 대해서는 도통 찾아낼 수가 없었어요. 정조의 비극적인 인연으로서만 설명될 뿐, 개인으로서 어떤 인물이었고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는 오리무중이었죠. 때문에 사료를 통해 의빈성씨의 행적을 짚으면서 빈 공간은 상상으로 채우게 되었어요. 일성록을 비롯한 각종 문헌들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1차 사료를 통해 윤곽을 잡은 뒤부터는 정사든 야사든 정조시대를 다룬 서적을 계속 읽었고, 모교 도서관과 국회도서관을 통해 제가 쓰는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 대해 연구한 논문 등도 다수 참고했어요.
 
Q. 작가님의 청소년 시기는 어떻게 보냈나요? 책을 쓴 후 인생에 있어서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궁금해요.

A. 저는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확고한 취향이야 있었지만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어요. 그대로 어른이 되어 책을 쓰고 난 지금도 제 평범한 인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번 시작한 일을 끝내 본 경험은 귀중하게 남았어요.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삶의 한 지점에서 세운 목표였던 ‘옷소매 붉은 끝동’을 마무리했기에, 평범한 제 인생에도 기분 좋은 성취감 정도는 생긴 것 같아요. 
 
Q. 집필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작가님께서 살면서 영원히 남았으면 하는 순간, 영원처럼 남은 순간은 언제인가요?

A. 1권 중후반부에 덕임과 효의왕후가 ‘놀이’를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제가 그 장면을 쓰기 시작했을 때가 저녁 9시 즈음이었어요. 어차피 다음날 수정할 거니까 대충 쓰고 잠이나 잘 생각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다가 결국 새벽 4시에 끝이 났는데 힘들거나 피곤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전에 없던 신기한 행복감까지 느꼈어요. 좋아하는 일에 몰두했다는 성취감 덕분이었겠지요. 그렇게 써낸 대목이 머릿속의 구상보다 더 잘 나와서 뿌듯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옷소매 붉은 끝동’ 전체에서도 그 장면을 가장 아낍니다. 그날 느낀 기분은 아마 몇 십 년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아요. ‘옷소매 붉은 끝동’을 쓰면서 그 기분을 두어 번 더 느껴봤는데, 하나같이 제 안에서 영원처럼 남아있습니다. 
 
Q. 오랫동안 쓴 책이 드라마로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어떠셨나요? 그리고 드라마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도 궁금해요.

A. 솔직히 계약을 진행할 때나 그 이후에나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실감을 잘 못 했어요. 그러다가 막상 방영을 시작하자 오랫동안 제 머릿속에만 있었던 이야기를 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신기했어요.
 
Q. 소설이지만 실제 역사를 따라야 된다는 부담감 같은 것도 있었을 것 같아요. 글을 쓰는 과정에서 꼭 지키려고 하는 원칙이 있었나요? 그리고 작가님의 창작에 있어서 습관도 궁금해요.

A. ‘옷소매 붉은 끝동’을 쓸 때 실제 역사를 따르면서도 로맨스 장르를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어요. 제 욕망을 따르면 실제 있었던 일에서 벗어나기 쉽고, 실제 역사에 충실하자면 로맨스 소설이라는 틀에서 멀어지기 쉽거든요. 동시에 얄팍한 지식을 늘어놓느라 바쁘면 정작 장르 소설로서 제일 중요한 재미를 놓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원칙을 가급적 어기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저는 항상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는 습관이 있어요. 그러면 막히더라도 일단 뭐라도 쓰게 되어서 도움이 돼요.
 
Q. 강미강이라는 예명을 사용하게 된 계기와 본명과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요?

A. 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출판하기 직전에 당시 편집자님께서 필명을 쓰겠냐고 물어봐주셨어요. 덕분에 마침 주변에 보이는 것들에서 따다가 이름을 만들었어요. 저는 굳이 본명과 얼굴을 공개까지 할 이유가 없을 만큼 평범한 사람이에요. 따라서 ‘강미강’이라는 필명으로 만족하고 있어요.
 
Q. 마지막쯤에 ‘그리고 순간은 곧 영원이 되었다’라는 말이 있는데요. 왕이 죽었다는 것을 암시한 건가요?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행복한 시간을 살았다는 건가요?

A. ‘옷소매 붉은 끝동’의 마지막 장면에 대한 저의 의도는 명확하게 존재해요. 다만 지난 몇 년 간, 독자님들께서 그 문장을 두고 여러 가지 좋은 말씀과 해석을 해주셨어요. 책장을 덮으실 때 그 문장에서 무언가를 느껴주셨던 것 같아 저에게 감동으로 다가왔어요. 저는 제 의도가 정해진 답이 되지 않았으면 해요. 또한 독자님들 저마다 고유한 감상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영향을 받지 않기를 바라요. 따라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독자님들의 것으로 남기를 기원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Q. 옷소매 붉은 끝동은 도깨비보다 무서운 왕과 가늘고 길게 살고 싶은 궁녀의 이야기 인데요. 작가님께서는 도깨비보다 무서운 존재가 있나요?

A. 저희 집 고양이요(웃음). 아침 6시만 되면 빨리 출근하라고 일어날 때까지 제 귀에다 소리를 지르거든요. 주말에도 꼭 그래서 너무 무서워요(하하). 
 
Q. 책과 드라마와 똑같이 현실에서도 여러 인간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데요. 작가님의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이 있나요?


A. ‘옷소매 붉은 끝동’을 쓰면서 여러 형태의 관계를 다뤘는데, 말씀하신 대로 사람과 사람 사이는 참 복잡한 것 같아요. 저 역시 답을 찾지 못 하고 있어요. 그래도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늦지 않게 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Q. 삶을 살면서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게 있나요? 그걸 어떻게 되돌리고 싶으세요?

A. 저는 ‘옷소매 붉은 끝동’의 마지막 장면처럼, 특정한 순간으로 돌아가 그때와는 다른 선택을 하는 상상을 주로 해요. 하지만 결국에는 어쩔 수 없으니 앞으로 더 잘 하자는 마음으로 노력하는 게 옳은 것 같아요.
 
Q. 처음이 쉽지 두 번째는 어렵지 않다는 말을 흔히 하는데요, 오히려 작가님께서는 처음보다 그 다음이 어렵다는 걸 배웠다는 말을 하셨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A. ‘옷소매 붉은 끝동’을 쓰는 과정은 분명 즐거웠지만 그만큼 고통스럽기도 했어요. 아시다시피 하나의 이야기를 쓸 때에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고, 다 지나고 난 지금 돌이켜봐도 결코 쉽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처음에야 멋 모르고 할 수 있지만, 두 번째부터는 어떤 과정을 겪는지 알면서도 해야 돼요. 그래서 저는 처음보다 그 다음이 훨씬 어렵다는 걸 배우게 됐어요.

Q. 강미강에게 행복의 의미가 궁금해요. 작가님에게 행복을 주는 건 뭔가요?

A. 저는 밤에 불을 끄고 혼자 음악을 들으며 잡생각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옷소매 붉은 끝동’의 많은 장면도 바로 그렇게 행복한 시간에 떠올렸던 것 같아요.
 
Q. 취미로 쓴 글이 대박이 났어요. 글을 쓰면서 ‘독자들이 좋아할까’라는 고민도 들었을 것 같은데요, 그런 순간에 확신을 준 건 뭔가요?

A. 그런 확신은 한 번도 없었어요. 한창 글을 쓸 때도, 감사하게도 출판을 하게 되었을 때에도, 저는 ‘옷소매 붉은 끝동’이 저에게 특별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흥미를 끌 만한 책은 아니라고 여겼거든요. 서점 한 구석에라도 꽂혀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첫 출간 이후로 시간이 제법 흐른 지금도 확신은 없어요. 그래서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여러 가지 좋은 말씀을 들을 때마다 참 감사할 따름입니다.
 
Q.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싶으세요? 작가님의 꿈은 뭔가요?

A. 저는 ‘옷소매 붉은 끝동’과는 많이 다른 이야기도 쓰고 싶고, 비슷한 이야기도 또 써보고 싶어요. 그렇게 칠십살이 넘고, 팔십살이 넘어서도 늘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사는 게 저의 꿈이에요.
 
Q. 마지막으로 수많은 스토리텔러, 창작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독자들이 원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저도 항상 찾고 있어요. 하지만 세상에는 수많은 취향이 있고 저에게는 천부적인 재능이 주어지지 않았으니 끝내 구할 수 없는 답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나면, 일단 아무 생각 없이 쓰는 게 참 중요한 것 같아요. 뭐라도 쓰고 보면 머릿속에 없던 것도 나오게 되고 내가 원하는 것 이상이 나올 수도 있어요.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하고 계시다는 점에서부터 이미 절반은 이루셨다고 생각해요. 꾸준히 꿈을 향해 달려가시는 분들을 멀리서나마 항상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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