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

승승장구하며 세계은행에 의해 ‘동아시아의 기적’으로 칭송받던 한국 경제를 강타한 초유의 외환위기는 1997년 말에 발생했다. 외환위기의 원인으로는 오랜 정부 주도 성장 정책 추진 결과 누적된 과도한 기업 부채와 금융 부실, 경상수지 적자 등 누적된 구조적인 요인도 있었지만 단기적·직접적으로는 1997년 말에 있었던 대선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1997년 말 대선을 앞두고 있던 1월에 김영삼 대통령 차남 김현철의 한보그룹 개입 의혹과 야당의 집요한 공세로 정국은 혼란에 빠졌다. 검찰 조사와 국회청문회에서도 김현철의 한보그룹 개입 의혹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연말 대선을 앞둔 야당의 공세는 계속되었다. 5월 김현철은 한보그룹 개입 문제가 아니라 전례 없이 정치자금에 대한 증여세 포탈 혐의로 구속 수감되었다.

집권 5년 차 김영삼 대통령의 국정 추진 동력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한보 삼미 진로 등 대기업들이 줄줄이 부도나고 수출도 급락했으나 국정 동력이 급격히 약화된 데다 민주노총 파업이 이어지면서 당시 추진 중이던 노동개혁과 금융개혁은 불발되고 부실 기업의 구조조정도 하지 못해 기업 부실은 가속화되고 금융 부실도 치솟았다. 엄청난 부실에도 불구하고 야권 노동조합 등이 연대한 연이은 반대시위로 구조조정을 못했던 기아자동차 사태는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를 극도의 불안으로 몰고갔다.

설상가상 미국 연준은 1994년 1월부터 1995년 4월까지 연방기금금리를 2.96%에서 6.05%로 인상했다. 반면 역플라자 합의로 엔·달러 환율은 1995년 4월 달러당 83.59엔을 저점으로 1995년 5월부터 상승하기 시작해 1998년 8월 144.58엔까지 상승했다. 슈퍼달러·초엔저 현상이 지속된 것이다. 반면 한국은 고금리·저환율 정책을 추진한 결과 원·엔 환율이 하락해 수출이 악화되었다. 마침내 주로 외국 금융기관 대출금을 중심으로 외국 자금이 급격히 유출되면서 1997년 말에 위기가 발생했다. 만약 정치위기와 국정 공백 사태가 없었더라면 아무리 한국 경제가 허약해도 동아시아에서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와 같은 반열에서 위기를 당했을까 하는 반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대선 후보들이 막무가내로 쏟아내는 공약들을 보고 있노라면 외환위기를 초래했던 1997년 대선 정국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 경제는 문재인 정부의 이념 편향적인 무능한 정책과 설상가상 겹친 코로나19로 대붕괴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반기업·친노조 정책은 끝이 없다. 이미 2020년 12월 이른바 '3%룰'을 완화한 상법 개정안, 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복합기업집단법 등 기업 파괴 3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노동 3법(노동조합법·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도 국회 문턱을 넘었다. 특히 해고자·실업자의 노조 가입과 핵심 사업장 점거 파업도 허용되어 앞으로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지난해에는 중대재해처벌법도 통과돼 27일 시행을 목전에 두고 있다.

스튜어드십에 기반한 국민연금의 주주 대표소송도 추진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24일 제10차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주주 대표소송을 적극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긴 '수탁자책임 활동 지침' 개정안을 상정했다. 그간 국민연금의 대표소송 결정 주체는 원칙적으로 기금운용본부가 담당하고, 예외적 사안에 대해서만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가 판단해왔는데 이를 수책위로 일원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위원회 특성상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지는 가운데 정부 추천·노조 추천 위원들이 과반수를 차지하면서 반기업 성향의 대표소송이 남발될 것으로 재계는 우려하고 있다. 이미 손볼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 리스트도 언론에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법무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인권정책기본법도 기업들을 긴장하게 하고 있다. 기업들이 인권을 침해하거나 제3자 인권 침해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인권정책기본법안에는 △기업의 인권과 관련된 정보 공개 △정부는 기업의 인권 관련 활동에 대한 평가기준 제정 △정부조달 시 기업의 인권 활동을 반영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인권 존중’이라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법이 실제 적용되는 과정에서 취지와는 무관하게 엉뚱한 부작용과 폐해를 낳을 수 있을 가능성뿐만 아니라 이 법을 근거로 외국인 근로자 고용법, 남녀고용평등법 등 관련 법의 처벌 기준을 강화하는 개정 작업이 연쇄적으로 일어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여당이 공언해 왔던 벤처기업 차등의결권은 여당 측 반대로 끝내 무산되었다.

반면 추가적인 친노조 관련 법안들도 일사천리로 처리되고 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공공기관 노동이사제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렇게 되면 지난해 이미 550조원을 돌파한 공공기관 부채 감축을 위한 경영 효율화는 물 건너 간 것이나 다름없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져야 할 것이다. 만약 이 노동이사제가 민간 기업으로까지 확산되면 메가톤급 폭탄이 될 전망이다. 공무원·교원 타임오프제(노조 활동 근로시간 면제 제도)나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 확대 법안도 곧 처리될 예정이다. 노조에서는 타임오프제 확대까지 요구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비정규직에 대해 고용 불안을 보상할 수 있는 ‘공정수당’을 지급하겠다는 공약도 내놓고 있다. 나랏빚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국가채무는 이미 1000조원을 돌파해 재정위기 마지노선을 넘어서고 금년 예산도 역대급 최대 예산인데도 대선 전 20조~30조원 규모의 추경 통과가 예상되고 있다. 이미 고갈되어 재정지원을 받고 있는 건강보험에 대해서도 이재명 후보는 탈모약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고 공약하고 이있다. ‘탈모약 건보 적용’이 관심을 끌자 가발과 모발 이식 수술도 건보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발 더 나아갔다. 건보 재정은 2018년 ‘문재인 케어’를 시작하면서 만성 적자 구조에 빠져 있는 데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로 위기에 처했다. 지금도 막대한 정부 재정을 쏟아붓고 있다. 그런데도 건보 재정을 건실하게 할 방안은 내놓지 않고 건보기금을 쌈짓돈처럼 빼내 득표에 쓰려는 무책임한 공약만 남발하고 있다.

일하는 어르신의 국민연금을 깎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연금 제도는 국민연금을 받을 때 일을 해서 월 소득이 254만원을 넘으면 연금을 최대 절반까지 깎는다. 일하게 유도해도 시원찮은데 근로 의욕을 꺾는 제도라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없지는 않다. 이 후보가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국민연금 삭감에 반대하려면 20년 후 적자로 돌아서고 2040~2050년께 고갈 위기를 맞는 국민연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처방을 담은 공약을 내놓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의 재정 고갈은 하루라도 빨리 개혁하지 않으면 우리 미래 세대에게 재앙으로 다가오게 된다.

가계부채와 기업부채을 합한 민간신용이 국내총생산(GDP)의 220%, 약 4400조원에 달하고 있는 가운데 금리 인상기로 접어들고 있다. 특히 소상공인 자영업에 대해 원리금 상환을 연기해 주고 있는 부채만도 약 220조원에 달하고 있다. 금리 인상기에 상당 부분이 부실화될 우려가 크다. 금융 부실로 전이되고 심할 경우 금융위기로 비화할 우려도 있다.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외자 유출 우려도 작지 않은 가운데 유일한 달러 스와프인 한·미 통화 스와프도 지난해 말 중단되었다. 한국 경제는 재정위기·금융위기·외환위기가 한꺼번에 올 수도 있는 복합 위기의 우려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대선 후보들은 개혁해야 할 노동개혁은 외면하고 친노조·반기업 공약만 남발하고 재정 쏟아붓기는 마치 집권을 위해 막무가내로 재정을 퍼붓다 재정위기를 초래했던 그리스의 파판드레우 총리를 연상케 할 정도다. 한국이 초유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엄청난 희생을 치렀던 1997년에도 대선이 있었다는 교훈을 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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