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이노베이션] 인재혁신의 시대...탈학벌·탈스펙 없인 기업도, 미래도 없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김성현·장문기 기자
입력 2022-01-03 05: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고스펙, 입사 후 성과와 크게 상관관계 없어…기업들, 직무 수행능력 위주로 채용

  • 직원 교육·인사도 위계 문화 없애…조직개편도 구성원 역량 강화에 초점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외 경제 불안 확대는 기업에 다시 변화를 강요했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서는 우수 인재를 어떻게 뽑아야 할지가 최대 관심사다. 기업의 미래를 위한 인재를 찾기도 힘들지만 채용 환경 역시 크게 달라지고 있는 양상이다. 기술혁신을 통해 세계 최고 반열에 오른 우리 기업들은 이제 인재혁신을 통한 향후 100년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 최대 IT기업인 구글은 기업 내에서 최고 성과를 내는 인재의 상당수가 명문대 출신이 아니라는 점에 의문을 품고 대대적인 분석을 시작했다. 그 결과 학교, 학력, 시험성적 등이 기업 입사 후 성과와 상관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구글은 지원자 필수 자격 조건에서 학위를 제외하고 대신 인지능력, 리더십, 조직문화와의 적합성, 직무수행 능력 등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아마존은 ‘바 레이저(Bar Raiser)’를 도입했다. 바 레이저는 아마존의 채용을 주도하는 직군으로, 리더십과 조직문화와의 적합성을 평가한다. 이들의 평가 기준에 있어 학력 등은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

이는 세계 최고 기업의 인사혁신 사례다. 이들은 채용혁신이 곧 기업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한다고 판단하고 다양한 측면에서 채용 브랜드 제고에 힘을 쓰고 있다.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우리 기업들도 인재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그룹, SK그룹, LG그룹 등을 중심으로 채용뿐만 아니라 직원 교육, 인사 등 전체적인 인사 제도 개선을 통해 미래를 준비 중이다.

31일 산업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최근 새로운 변화를 이끌기 위한 인사제도·조직문화 혁신을 단행했다. 이를 통해 △연공서열 타파 △인재 제일 철학 실천 △성과관리체제 혁신 등을 이뤄내고 100년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경쟁력 강화를 도모하겠다는 복안이다.

삼성은 임원 중 부사장·전무 직급을 통합하고 직원들의 직급별 체류 기간을 폐지하는 강수를 뒀다. 임원 제도 개편을 통해 젊은 경영진층을 두껍게 하고 능력이 있는 직원을 승진시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복안이다.

같은 부서에서 5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이 다른 부서로 이동할 수 있는 자격을 공식적으로 부여하는 ‘사내 FA 제도’, 국내외 법인의 젊은 우수 인력을 선발해 일정 기간 교환 근무를 실시하는 ‘STEP 제도’도 도입한다. 이를 통해 차세대 리더 후보군을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산업계에서는 이와 같은 삼성의 시도가 다양한 경험을 쌓은 경영진을 양성하기 위한 시도로 보고 있다.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구축한 경영진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보유한 경영진을 육성하는 인적자원 관리의 경향성을 반영한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삼성의 이번 인사제도 개편안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미국 출장을 다녀온 직후 “현장의 처절한 목소리들,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고 오게 되니 마음이 무겁다”고 말한 뒤 전격적으로 공개됐다는 점에서 국내 산업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그래픽=아주경제 그래픽팀]

현대차그룹은 현대차는 2019년 국내 10대 기업 중 처음으로 정기공채를 폐지하고 수시 공채로 채용 방식을 전환했다. 당초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오히려 채용 규모는 매년 최대치를 찍었으며,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력을 배치함으로써 기업의 경쟁력도 크게 향상됐다.

조직개편도 단행했다. 자동차 산업의 대전환 시기를 맞아 연구개발(R&D)본부 내 엔진 개발센터를 전격 폐지했다. 현대차는 엔진 동력을 바퀴까지 전달하는 모든 장치를 총괄하는 파워트레인 담당을 전기차 R&D 전담조직인 전동화 개발 담당으로 바꿨다.

동시에 배터리개발센터를 신설해 전기차 경쟁력의 핵심인 배터리 기술 확보에 주력하기로 했다.

지난달 17일 정기 인사에서는 새 임원 중 37%를 연구개발직 출신으로 선임하는 등 미래차 기술 인재를 집중적으로 등용했다. 특히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전환을 위해 전기공학도 출신 임원들을 각 분야에 전진 배치했다.

국내 이공계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H-모빌리티 클래스’도 진행한다. 차량 전동화 분야에 350명, 자율주행 분야에 350명 등을 뽑아 배터리, 모터 등 차량 전동화 분야와 제어, 네트워크 등 자율주행 분야의 전문적인 교육을 제공할 계획이다.

현대모비스는 미래차 인재 확보를 위해 ‘채용 연계형 SW아카데미’ 교육생 모집에 나섰다. 채용 연계형 SW아카데미는 취업 준비생들에게 회사와 연계한 외부 기관의 소프트웨어 교육 기회를 무료로 제공하고 이 교육을 이수하면 회사에서 채용하는 방식을 말한다. 현대모비스는 이 교육을 이수한 학생들에게 최종 면접을 실시해 곧바로 채용할 예정이다. 최종 채용 규모는 두 자릿수로 알려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경영철학인 딥체인지(Deep Change·근본적 혁신)는 교육을 통한 전문인력 양성이 첫걸음이다.

구성원 역량 강화 플랫폼 ‘써니(mySUNI)’가 이 역할을 맡고 있다. 써니는 SK그룹의 딥체인지 가속화를 목표로 지난해 1월 인공지능(AI), 행복, 사회적 가치 등 8개 분야로 출범했다. 이후 반도체, 환경 및 비즈니스 모델 스토리텔링 등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그룹의 친환경 사업 목표에 발맞춰 기존의 에너지솔루션 칼리지를 환경 칼리지로 확대 개편했다. 환경 칼리지는 △넷제로 △수소에너지 △순환경제 △에너지 솔루션 △그린 정책 △그린 파이낸스 △Why Green 등 총 7개 채널, 62개 코스로 구성됐다.

써니는 현업에서 환경 사업을 직접 이끌어갈 전문가 육성을 위해 외부 파트너십도 활용하고 있다. 올해 초부터 카이스트(KAIST) 녹색성장대학원과 ‘환경·에너지 심화 과정’을 운영 중이다. 지난 7월 그룹 내 다양한 관계사에서 온 구성원 46명이 1차 과정을 수료했고, 현재 2차 과정이 진행 중이다. 관계사별 사업 특수성을 살린 맞춤형 과정 설립도 진행 중이다.

써니 관계자는 “딥체인지는 사업 주체인 구성원들이 공감하고 역량을 강화하는 것부터 시작한다”며 “향후 분야별 맞춤형 과정을 기획해 각 관계사의 비즈니스 모델 전환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SK그룹은 인사에 있어서 ‘성과 보상’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SK그룹은 지난 2011년부터 ‘수펙스추구상’을 제정해 그룹 내 우수한 공로를 세운 직원과 팀을 시상하고 있는데 최근 단행한 인사에선 이 상을 받은 수상자들이 연이어 승진에 성공했다. 노종원 SK하이닉스 사장,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추형욱 SK E&S 사장이 대표적이다. 확실한 보상으로 구성원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우수 인재가 꾸준히 발굴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래픽=아주경제 그래픽팀]

LG화학, LG디스플레이 등 LG그룹 계열사들은 3차원 가상세계 ‘메타버스’를 통해 신입사원 교육을 진행해 호응을 끌어냈다.

신입사원들은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를 비롯해 기업의 주요 사업장을 온라인 공간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교육에 임할 수 있었다.

LG디스플레이의 경우 신입사원의 91%가 메타버스 방식을 활용한 온라인 교육 방식이 동기들과 교류하는 데 효과가 있었다고 답했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는 전언이다.

LG화학 역시 자신을 대신하는 캐릭터를 통해 적극적으로 교육에 임하면서 동기간 유대감 형성에 큰 도움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기업은 시간과 장소에 제약이 없는 메타버스 교육 프로그램을 신입직원뿐만 아니라 기존 임직원 교육에도 확대 적용할 방침이다.

LG는 그룹 차원에서 유망 청년 창업가를 발굴·지원하는 ‘LG 커넥트(LG CONNECT)’ 행사도 메타버스를 통해 진행했다.

청년 창업가들과 접점을 넓히고 적극적인 소통과 교류를 활성화하는 동시에 재미와 현장감도 확보하기 위한 시도였다.

메타버스를 통해 구성된 가상 행사에는 인공지능(AI), 디지털 전환, 모빌리티, 지속 가능성 분야에서 독자적인 기술을 보유한 국·내외 유망 스타트업 50곳이 참가했다.

이처럼 LG가 메타버스를 통한 대내외 인재 양성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강조하는 데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구 회장은 2018년 취임 이후 임직원에게 ‘고객가치 경영’이 중요하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내고 있다. 지난달 20일 공개한 2022년 신년사에서도 “고객이 감동할 사용 경험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며 “우리의 생각과 일하는 방식도 여기에 맞게 혁신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기업들의 ‘인재혁신’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조직의 위계 문화를 타파하고 조직 구성원 개개인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대학 교수는 “기업은 일하는 사람 스스로의 의지로 혁신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주고 그 혁신을 이뤄낼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줘야 한다”며 “이런 과정을 통해 국내에서도 충분히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4차 산업 혁명, 디지털 전환 등 급변하는 시대에 융합형 인재 양성, 혹은 융합형 조직 구성을 통해 인재혁신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 교수는 “최근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AI) 등의 이슈로 인해 기업이 선호하는 인재상이 특정 분야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며 “새해에는 융합형 인재를 등용하거나 분야별로 인재 배합이 잘된 조직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분위기를 쇄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