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n번방 방지법'의 진짜 문제점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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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완 기자
입력 2021-12-14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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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카오·네이버는 규제하고, 텔레그램은 규제서 '쏙' 제외…기울어진 운동장 지적

  • 필터링 프로그램 적용 땐 트래픽 급증 우려…서버 증설 비용이 이용자에게 돌아올 수도

  • 시민단체 "불법 촬영물 유통 방지 필요성엔 공감하면서도 통신 비밀 침해하는 조치" 비판

[사진=연합뉴스]

디지털 성범죄물을 막자는 취지의 'n번방 방지법'이 시작부터 삐거덕거리고 있다. n번방 재발을 막겠다고 제정된 법률이 정작 n번방 사태를 초래한 텔레그램엔 적용되지 않아 국내 기업만 규제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지적이 나오면서다. 또 정부가 구축한 데이터베이스(DB)에 없는 불법 촬영물은 필터링에 걸러지지 않을 수 있어 '반쪽짜리' 규제란 문제도 제기된다.

n번방 방지법은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 방지를 목적으로 지난 10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대상은 연 매출이 10억원 이상이거나 하루 평균 이용자가 10만명을 넘는 인터넷 부가통신사업자다. 이들에겐 불법 촬영물에 대한 기술적·관리적 조치 의무가 부과된다. 불법 촬영물 판별 여부는 정부 DB를 기준으로 이뤄진다.

이용자가 플랫폼을 통해 영상을 올리면, 영상 코드가 정부 DB에 있는 불법 촬영물 코드와 일치하는지 대조한다. 이후 문제가 없다고 판단될 때 전송되는 식이다. 반면 이용자가 공유한 영상이 정부 DB에 등록된 불법 촬영물 코드와 일치할 땐 업로드가 제한된다. 현재 네이버와 카카오는 이용자가 올리는 영상 코드를 불법 촬영물의 디지털 코드와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필터링 기술을 적용한 상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n번방 사태 재발을 막는다는 취지와 필요성엔 이견이 없다. 하지만 n번방이 실제로 개설됐던 텔레그램이 규제 대상에서 쏙 빠지면서 잡음이 나오고 있다. 불법 촬영물이 오가는 디스코드도 필터링 대상에 빠져있다. 그러다 보니 n번방 재발 방지를 표방하는 n번방 방지법이 정작 성착취물 범죄 온상인 텔레그램은 규제를 못하면서 국내 포털과 메신저에만 회초리를 들고 있단 지적이 나온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n번방 사태 매개가 됐던 텔레그램은 실질적으로 규제하지도 못하고 국내 사업자에게만 규제를 부과하는 법안은 재개정을 통해 현실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n번방 방지법 적용대상인 사업자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이용자들이 올리는 이미지를 일일이 감별하는 필터링 기술을 적용하면 속도 저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필터링하는 프로그램을 추가할 땐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해 시스템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결국 늘어난 트래픽을 감당하기 위해선 서버 용량을 늘려야 하고 이에 들어가는 비용은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단 얘기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또 뽐뿌와 보배드림, 디시인사이드 등 온라인 커뮤니티도 법 적용 대상에 포함되면서 이용자들은 지금까지 자유롭게 올려온 움짤과 영상 등이 필터링을 거친다는 사실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디시인사이드 측은 전날 이용자 이름과 이메일 등 개인정보를 모두 파기하고 인증 수단으로 사용했던 이메일을 보안 코드로 대체한다고 밝혔다. 디시인사이드 측은 이같은 조치가 기업의 개인정보 보유로 인한 사회적 문제 증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n번방 방지법 시행 나흘 만에 나온 조치라는 점에서 이용자들의 불안감을 낮추려는 의도로 보인다.

n번방 방지법이 국민의 기본권을 정면으로 침해한다는 우려도 있다. 이용자가 올린 콘텐츠가 불법인지를 판별하려면 영상 코드를 일일이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n번방 방지법 논의 과정부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해온 IT시민단체 오픈넷은 "카카오톡을 비롯해 비공개 대화방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가 대화 내용을 들여다봐야 한다면 헌법 제18조 위반"이라고 꼬집었다. 헌법 제18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 오픈넷은 "(n번방 방지법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의 대화 녹음 또는 청취를 금지하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라고도 비판했다. 오픈넷은 지난 3월 n번방 방지법이 통신의 비밀과 표현의 자유, 알 권리 등을 침해하는 조치로 보고 헌법 소원을 청구한 상태다. 오픈넷 측은 불법 촬영물 유통 방지 취지와 필요성엔 공감한다면서도 "일반에 공개된 정보만 관리하더라도 추후 검찰이 비공개 대화방까지 적용할 가능성이 있는 데다 해외 메신저는 잡지 못해 '메신저 망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전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다만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지금까지 제기된 모든 의혹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텔레그램이 이번 조치에서 제외된 이유가 해외 사업자이기 때문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방통위는 "(텔레그램은) 해외 사업자라서 적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적 대화방이라서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이는 국내외 사업자 모두 동일하다"고 말했다. 또 일부 이용자가 불법 촬영물을 올리지 않았는데도 이용제한을 당했다는 주장에 대해선 "카카오의 자체 운영 정책 위반으로 신고돼 제재된 사항"이라며 n번방 방지법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한편 n번방 방지법을 두고 문제가 없다는 여당과 국민 검열이라고 주장하는 야당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이를 둘러싼 잡음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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