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美中 첨단기술 갈등 '회색지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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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호주, 미얀마 대사)
입력 2021-11-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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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에게 경제.기술 안보 왜 중요한가

 

[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미·중간의 전략적 갈등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미·중간 갈등이 신냉전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일어나지도 않을 신냉전이란 프레임을 사용하면서 지금 미·중간에 이분법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미·중간의 전략적 갈등이 신냉전으로 진전할지 여부는 아직 확실치 않으나 이에 대한 대비는 지금부터 해나가야 할 필요성은 분명히 있다.


신냉전이 과거 미·소간의 구냉전과 그 양상이 달라서 미·중간의 교류와 협력이 완전히 단절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화 과정을 거치는 동안 미국과 중국은 물론 전 세계가 공급·소비망으로 얽혀졌기 때문에 이 공급·소비망들이 구냉전 시대처럼 완전히 단절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미·중간에 교류·협력 관계는 다층적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도 중국을 대하는 관계방식을 협력(Cooperation), 경쟁(Competition) 그리고 대결(Confrontation) 세 가지로 규정하고 관계 분야별로 다른 방식을 적용할 전망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로 미국을 대하는 관계방식을 순응, 적응, 대응 세 가지로 정리하고 각 분야별로 맟춤형 방식을 적용하려 하고 있다. 먼저 양국간 장벽이 없거나 협력이 게속 유지될 분야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양국간 중층적 관계의 하층부로서 관광이나 인적교류, 일반 소비재의 유통분야를 말한다. 이 분야에서는 별 장벽 없이 사람과 제품이 순조로이 양국간을 왕래할 것이다. 또한 지난 기후변화(COP26) 회의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듯이 양국은 기후변화, 자연재해, 전염병과 같은 범세계적 문제에 대해서는 협력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다음은 중층부에 해당하는 일반제조업과 범용기술 분야인데 이 분야에서는 양국이 경쟁을 하면서 자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 할 것이다. 그래서 일부 장벽은 있겠지만 경쟁 속에 제품의 유통은 지속적으로 이루어 질 것이다. 그 다음 분야는 상층부로서 첨단기술 분야인데 AI, 빅데이터, 플랫폼, 양자컴퓨터, 나노기술, 첨단 반도체, 바이오, 자율운행 관련 기술 등을 포함하는 분야이다. 이 최상층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미·중간 단절과 갈등양상이 심화되고 지금 협력하고 있던 부분들에서도 분리(Decoupling) 현상이 벌어질 것이다. 또한 양국간 기술표준 경쟁에다 안보적 고려로 인하여 상호간 호환성이 차단되므로 세계 다른 나라들도 미·중간 기술표준이나 시스템의 한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즉 구냉전과 같이 이 분야에서는 완전한 단절이 발생하고 각국은 이분법적인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미·중간에 첨단기술 분야에서 갈등이 첨예해지고 양측간 단절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분야에서 누가 기술을 선도하느냐에 따라 패권국 지위가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1820년경 영국이 증기기관을 발명하고 이를 산업의 각 영역에 이용하여 획기적으로 생산력을 발전시킴으로써 패권국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혁신은 세계경제에 대격차(Great Divergence) 시대를 초래하였다. 그 결과 영국의 생산력이 그때까지 세계 생산력 1위였던 중국을 압도하기 시작하면서 중국은 그 후 치욕의 세기를 겪게 되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첨단기술 분야에서의 경쟁도 4차 산업혁명을 누가 주도하느냐, 즉 미국이 21세기에도 패권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느냐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으므로 미국은 여기서 물러설 수 없다. 중국으로서도 기술굴기를 통하여 중국몽을 실현하여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에 세계 최강국이 되어 치욕의 세기를 설욕하려 하기에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지난 4월 2021 ‘전략경쟁법’을 통과시켜 동맹국과 힘을 합쳐 세계 기술표준을 제정하고 기술이전을 통제하려 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은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양국관계를 미래기술동맹으로 격상시켜 제3국에 대한 투자 및 기술이전에 대해 공동심사위를 구성하여 통제하자는 문안을 삽입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중국도 지난 6월 ‘반외국 제재법’을 채택하여 외국기업이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제재조치에 가담할 경우 손해배상과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수출통제법도 보완하여 국가안보를 위하여 자국 제품과 원료의 수출을 통제할 수 있도록 했다. 미·중 양국의 이러한 입법조치들은 첨단기술 갈등에서 더 이상 회색지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기업들은 이분법적 선택을 불가피하게 강요당할 것이다.
 
첨단기술 분야에서 갈등은 패권 쟁탈과 관련이 있기도 하지만 국가안보와도 직결되어 있어 양측간 단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사회는 6G 기술을 이용한 초연결 사회가 될 것이며 우리 사회의 모든 시스템과 장비들이 AI와 IoT, 자율운행 기술로 다 연결되어 움직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단번의 사이버 공격으로 상대편 사회 시스템 전체를 마비시키는 상호확증파열(MAD: Mutually Assured Disruption)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는 것이 국가안보의 초미의 과제가 되었다. 과거 구냉전 시대에 미.소간에는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엄청난 인명이 희생되는 상호확증파괴(Mutually Assured Destruction)를 초래한다는 우려가 오히려 전쟁을 억지하였다. 그러나 신냉전에서는 인명을 살상하는 부담이 없으므로 새로운 MAD를 상대국에 선제적으로 적용할 유혹이 존재한다. 그리하여 측은 서로가 첨단통신 분야에서는 연결되려 하지 않고 상대의 기술과 장비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차단의 벽(Digital Wall)을 높이 쌓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노력에 동참하지 않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제재조치를 가하거나 자신들의 연결망에서 제외시키려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첨단기술 분야 양 강대국간 갈등을 우리 기업들이 자율적 판단으로 헤쳐나가라고 한다면 기업들에 대해 너무 큰 부담을 주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복합적인 국가 전략적, 안보적 고려가 필요한 결정들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내려야 한다. 최근 외교부에 경제안보 TF가 신설되었다고 하지만 외교부뿐 아니라 우리나라 여러 경제부처와 국방부가 다 관련되어있는 첨단기술 갈등과 공급망 재편에 대한 조정과 결정은 더 높은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신정부가 수립되면 대통령실에 경제·기술 안보 보좌관직을 신설하여 이 문제를 범정부적으로 대처해 나가야만 할 것이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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