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대화만 외치는 文정부, 손자의 '벌모'(伐謨)를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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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호주, 미얀마 대사)
입력 2021-10-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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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인류의 역사는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고 어떤 집단도 전쟁 자체를 목적으로 하여 전쟁을 일으키는 경우는 없다. 그리고 전쟁보다 평화를 원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끊이지 않고 발생하였다. 전쟁은 국제사회에서 기본적인 이해관계가 다른 두 집단이 협상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에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어쩌면 인류가 존재하는 한 피하지 못할 숙명이다. 문제가 있는 두 집단 간에 대결적인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한쪽이 전쟁과 평화 사이에 무조건 평화를 선택할 것이라는 속내를 보이면 전쟁은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굴욕적인 수모 또는 심각한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

전쟁은 국익을 추구하는 마지막 수단이기에 외교를 통하여 국가간 대결적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외교가 끝나는 곳에서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외교와 국방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며 국가 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외교력은 공허한 것이다. 평화를 원한다는 열망만 가지고 평화를 지켜낸 사례는 역사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라는 격언이 로마 시대부터 존재하여왔다. 역사적으로 상대의 환심을 사고 상대의 요구를 충족시켜 전쟁을 회피하려는 정책을 유화정책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유화정책의 대표적인 실패사례로 2차 대전 발발 직전 영국의 체임벌린 총리와 독일의 히틀러 간 맺은 뮌헨협정이 손꼽힌다. 나치독일의 팽창정책이 계속되어 체코슬로바키아 내 독일인 거주지역을 나치군이 점령한 것은 인정하되 나머지 체코 영토를 독일이 손대지 않는 조건으로 양측이 평화에 합의한 것이다. 이를 두고 체임벌린 총리는 ‘우리 시대의 평화를 이루었다’고 귀국 비행장에서 홍보하였다. 그러나 불과 6개월 만에 독일군은 체코 전체를 합병하였고 뒤이어 폴란드까지 합병하려고 침략을 하자 2차 대전이 발발하게 된다.

이 당시 영국 체임벌린 총리는 히틀러의 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영국 국민들도 1차 대전 기억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다른 전쟁을 하고픈 마음도 없었다. 게다가 독일을 공동으로 견제해야 할 프랑스와 소련도 각기 다른 마음이었다. 이런 상황적 여건을 고려하더라도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은 히틀러의 야심을 더 키워주었고 결국 전쟁을 막지 못한 실패한 외교였다. 오히려 영국이 더 일찍 단호하게 대응하였더라면 독일의 팽창을 미리 저지할 수 있었다는 분석들도 있다.

손자도 자신의 병법서에서 적대국에 맞서 이길 수 있는 전략 중 최상의 전략은 전쟁을 하지 않고도 이기는 방법, 즉 전승법(全勝法)이라고 설파했다. 이 전승법은 상대국의 전쟁 의지를 미리 눌러 꺾어서 상대가 아예 전쟁을 일으킬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는 방책이다. 이 전승법에는 벌모(伐謨)와 벌교(伐交)라는 대표적인 방책이 있다. 벌모는 상대방이 전쟁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는 것인데 이는 상대방의 전략적 셈법을 바꾸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가 전쟁을 하면 이득을 볼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전쟁을 일으킬 준비를 한다면 그 셈법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알게 해주는 방책이다. 여기에는 우리의 국방력이 상대보다 훨씬 강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적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상대가 알게 하는 것이다. 아니면 전쟁을 하는 것보다 우리의 계책을 잘 따르면 얻게 될 이득이 전쟁을 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벌교는 상대편을 도울 나라들이 없도록 우리가 먼저 선수를 쳐서 주변국을 설득 하여 상대를 고립시키고 상대가 이 상황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 손자의 병법을 보더라도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일전불사의 각오로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 평화를 위해 오히려 낫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외교와 국방은 연계되어 있어 벌교라는 외교를 전개하더라도 국방에 대한 대비는 항상 되어있어야 벌모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한반도 주변과 국제사회 전반에도 역사상 최장기의 평화시대가 저물고 전쟁의 기운이 스며들고 있다. 이런 대변환기를 맞아 우리는 전쟁과 평화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이런 격변기에 대결정책을 취하면 상대도 더욱 대결적으로 되어 전쟁을 앞당기는 안보 딜레마가 발생한다. 그렇다고 전쟁을 피하고자 유화정책을 취하더라도 상대를 오판하게 만들어 전쟁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가급적 이 두 정책을 배제하고 상대에 대해 포용정책 또는 관여정책을 펼쳐야 한다. 단, 이 포용과 관여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일전불사도 각오하는 국가 무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외교적 협상이 성공을 하고 유화정책이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대화 이외의 다른 선택지를 항상 우리가 갖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대화 이외 다른 선택지를 포기하고 있다는 것을 상대가 이미 간파한 경우에는 대화를 통한 유화정책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포용정책은 벌모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월하거나 상대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무력을 보유한다는 것을 전제로 상대와 대화를 하고 교류를 함으로써 상대의 변화를 유도하는 정책이다. 우리의 선의가 상대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상대가 우리를 오히려 얕보고 도발적인 정책을 계속할 때에는 대화를 중단시키고 우리도 대결정책으로 바로 돌입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이런 대결정책에는 상대를 봉쇄하고 제재를 가하거나 우리 우호국과 결속을 하여 상대를 압박, 고립시키거나 혹 상대가 도발할 경우 무력으로 강하게 응징할 자세를 갖추는 것을 포함한다.

전쟁과 평화는 완전히 분리되어서 존재하고 양자택일하는 선택지가 아니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여있어 다른 면처럼 보이는 면이 실제로는 연결되어 있어 한쪽을 끝까지 가다 보면 자연히 다른 쪽에 다다르는 것과 같다. 이런 점을 인식한다면 우리는 ‘전쟁을 택할 것인가 평화를 택할 것인가?’라는 현명치 못한 이분법적인 질문을 던져서는 안 된다. 평화를 무조건 좇다가는 혹 전쟁을 피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굴종과 수모를 피할 수는 없는 것이 국제사회의 현실이다. 우리 주권과 자존을 지키기 위해서도 전쟁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제나라의 명장 사마양저는 망전필위(忘戰必危), 전쟁을 잊는 순간 위기는 찾아온다고 설파했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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