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격변하는 국제정세 이분법적 접근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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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호주, 미얀마 대사)
입력 2021-10-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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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한 외교전문가는 최근 우리 현대사에 대해 ‘독자적 노선으로 우리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과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잘 살펴 그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 간의 갈등의 역사이다’ 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독자노선, 민족노선을 따르는 부류와 외세영합, 동맹노선을 주장하는 부류간의 갈등이 늘 존재한다는 말이다. 사실 2003년 외교부 내에도 자주파와 동맹파로 지칭되어진 두 개의 다른 그룹이 있었고 이들 간의 갈등이 존재하였다. 그리고 이 갈등으로 인해 자주파와 동맹파의 선봉으로 분류된 자들은 정권의 교체에 따라 공직사회에서 심한 부침을 겪거나 심지어 퇴출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앞의 전문가 서술은 표면적 갈등의 양상을 잘 묘사하였는지는 몰라도 근본적 문제점에 대한 진단을 시도하지 않은 흠결이 있다. 우선 독자노선이든 동맹노선이든 그것은 우리 국익증진을 위한 방법론이고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는 점이 중요하다. 따라서 방법론을 기준으로 전문집단을 분류하는 것은 어폐가 있고 전문가들이라면 진정한 국익이 명하는 바는 무엇인지, 그리고 주변정세가 가하는 압력으로 인해 국익을 추구하는 한계점은 무엇인지를 잘 분별하여 우리의 외교정책의 방향을 설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번 설정된 정책방향도 주변여건 변화를 면밀히 살피고 그 실현 가능성을 점검해가며 유연하게 수정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필요하다면 자주노선과 동맹노선을 적절히 배합해서 우리 정책을 만들 수도 있어야지 어느 노선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명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특히 지금과 같이 국제정세가 격변하는 시기에는 과거의 시각에 고착된 채점표를 들고 우리에게 주어지는 문제들의 해답을 찾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자주노선이든 동맹노선은 둘 다 우리 국익을 극대화하고 우리 생존을 담보하기 위한 정책의 두 축이지 그 자체가 지켜야 할 원칙은 아니다. 심지어 동맹까지도 우리 국익을 지키기 위해 맺은 것이고 우리 국익에 부합되는 한도 내에서 운용되어야 하지 동맹 자체가 목적이 되거나 동맹 보존을 금과옥조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대영제국 시대 영 재상이었던 팔머스턴이 말한 것처럼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는 것이 오히려 국제사회의 게임규칙임을 알아야 한다. 최근 미국이 아프간에서 철군할 당시 국제안보군의 한 축이었던 EU측과 사전조율을 하지 않았다. 또한 미,영.호 3국동맹인 오커스((AUKUS)가 출범하면서 호주-프랑스간에 지난 5년간 추진해오던 47조원 상당의 잠수함 건조계획이 프랑스측에 사전통보도 없이 밤사이에 물거품이 된 사실도 눈여겨 봐야 한다. 이 사례들을 보면 우방국들 사이에서도 기존 우호관계를 단번에 버리고 새로운 관계를 맺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질 것을 예견할 수 있다.

자주노선도 그 자체가 민족의 일원이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당위론처럼 행세하는 것도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주노선이 민족주의 명분론이나 감상적 통일론에 기초한 것이든 이념에 기초한 것이든 우리 국익에 부합하는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면 그것은 환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우리의 선의가 상대방에 의해 같은 방식으로 보답받지 못한 상황에서 자주노선을 계속 밀고 나갈 때 우리의 국익과 생존을 해치는 일이 될 수 있다. ‘모든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라는 선각자의 경구를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깊은 신앙심이나 자비심을 가진 개인은 상대방이 악인이라도 그가 변할 때까지 무한한 인내를 가지고 선의를 계속 베풀 수는 있다. 그러나 국가는 그런 불확실하고 장기적으로 국익에 반할 수 있는 정책에 계속 기댈 수는 없다. 그러면 그 나라는 다른 나라들로부터 소외되거나 상대방으로부터 역이용당할 것이다. 프랑스 제국 시절 명재상이었던 리슐리에는 ‘개인은 내세가 있어서 잘못하고도 구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는 한번 잘못하여 멸망하면 부활할 길이 없다’라고 갈파하였다. 그만큼 외교,안보정책은 신중하게 다뤄야 하고 감상적인 선의로 상대를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명청 교체기나 구한말 격변기에 국난을 당한 것은 우리가 국제정세 변화의 큰 그림을 읽지 못하고 우리 국내문제에만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화파,척화파니 수구파.개화파니 하는 이분법적인 당파싸움에만 매몰되어 국론결집을 못하고 우리 약점을 노출한 잘못이 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자주파,동맹파 노선투쟁이나 논쟁도 과거 두 번 국난을 겪었던 시대 때 전개된 것보다 더 나은 수준에서 전개되는 것 같지도 않다. 이런 식의 협량하고 고착적인 사고로 또 다른 국난을 부르지 않도록 현실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외교.안보 노선에 국민지지를 결집시키는 것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것이 바로 다음 대통령이 해내야 할 가장 큰 책무이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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