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토부,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경비원 가능 업무 제시
  • 경비 업계 "업무 범위 확대하고 갑을 관계에서 거부도 어려워"
  • 경비 보다 관리 업무 더 많은 현장..."일반 노동자로 전환돼야"
경비원 갑질 논란이 이어지자 당국이 ‘경비원 갑질 금지법’을 내놓았다. 관련법은 경비원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해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목표지만, 일선에서는 오히려 경비원을 옥죌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계속되는 경비원 갑질...법으로 막는다
21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이날부터 경비원에 대한 갑질을 금지하는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된다.

그동안 경비원에 대한 갑질 논란은 꾸준히 제기됐다. 지난해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공개한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경비원 3388명에 대해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4명 중 1명꼴(24.4%)로 입주민으로부터 비인격적인 대우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는 “경비원은 위험 발생을 방지하는 업무만 하게 되어 있지만 현실에서 고유의 경비업무 비중은 절반이 안 된다. 대부분 청소, 주차관리, 택배 등 관리업무다”라고 분석했다.

일부 입주민은 경비원이 갑질을 거부하면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지난 6월 서울 마포구 한 아파트 입주민 A씨는 업무방해·보복 협박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A씨는 수년 동안 경비원들에게 택배 배달을 강요하고 ‘10분마다 흡연 구역 순찰’ 등 각종 잡무를 시키고 폭언과 욕설을 일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월에는 서울 노원구 한 아파트 입주민이 경비원들을 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몽둥이로 때렸을 뿐만 아니라 술과 담배를 사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기도 했다”라고 진술했다.

이러한 갑질을 막기 위해 소위 ‘경비원 갑질 금지법’으로 불리는 이번 개정안은 경비업법에 따라 공동주택 경비원이 시설경비 업무 외에 맡는 공동주택 관리 관련 업무 범위를 구체화했다.

개정안이 정의한 경비 업무 외 수행 가능 업무는 △청소와 이에 준하는 미화 보조 △재활용 가능 자원 분리배출 감시 및 정리 △안내문 게시 및 우편수취함 투입이다.

반면, △개인 차량 주차 대행 △택배물품 세대 배달 등 개별 세대의 업무를 직접 수행하거나 관리사무소의 일반 업무를 보조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제한된다. 다만, 도난‧화재나 그 밖의 혼잡 등으로 인한 위험 발생을 방지하기 위한 범위에서 주차관리와 택배물품 보관은 할 수 있다.

위 사항을 위반하는 경우 최대 1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해당 경비원을 간접 고용한 경비업자는 경비업법에 따라 경비업 허가 취소 처분을 받을 수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근무조건 개선과 고용불안 방지 측면을 모두 고려해 업무 범위를 설정했다. 국회, 관계부처, 노동계, 입주자, 주택관리사가 참여한 사회적 대화 및 지자체 의견수렴 등을 거쳐 합의안을 도출했다”고 전했다.
 
현장에서는 유명무실한 시행령...오히려 업무 가중 우려

21일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에 경비업무 도우미 수첩이 걸려있다. [사진=연합뉴스]

경비 업계는 이번 개정안을 마냥 반기지 못했다. 경비원을 위해 법을 개정한 것이 오히려 경비원 근로 조건을 열악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비협회는 지난 19일 이번 개정안에 대해 “경비노동자 처우를 개선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가장 큰 문제는 입법 과정에 경비업계를 간담회의 등에 배제하여 의견개진 기회조차 박탈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에 담긴 업무의 명확성이 오히려 업무 범위를 과도하게 확대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경비협회 관계자는 “제한 업무로 수목, 정원 조성을 예시로 두었음에도 부분적 가지치기, 수목 관수 업무를 허용범위로 둔 것은 사실상 조경업무를 허용하겠다는 뜻이다. 도색이나 제초작업 시 전문 인력을 보조하는 것도 사실상 업무의 일체를 허용하겠다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는 등 이번 개정안은 현장의 혼란만 가중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일선에서는 고용주와 경비업체‧경비원의 갑을관계에서 현실적으로 규정된 업무 외 업무를 거부하기 어렵고, 갑질을 당해도 신고 절차가 복잡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공동사업단 소속인 안성식 강북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장은 “현장에서는 경비 외 다른 업무를 거부하는 것이 쉽지 않다. 경비 노동자분들 중에는 이렇게 업무를 제한하면 누가 우리를 고용하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앞서 협회 관계자는 “경비 업체에는 허가 취소라는 과도한 행정 처분을 내리고 공동주택 관리주체에게는 벌금형이라는 솜방망이 행정 처분을 내리는 것은 갑질로 인한 생존권 위협을 초래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행정처분도 복잡한 행정절차로 인해 실제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복잡한 절차로는 경비원 처우를 개선할 수 없고 갑질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용노동부가 아파트 경비원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내놓은 경비원‧관리원 구분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도 나왔다. 국토부의 이번 시행령에 따르면 규정한 업무를 모두 수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근로계약서에 공동주택 경비원에게 허용되는 업무 외의 업무를 추가해 작성해도 시행령에서 허용한 업무만 수행할 수 있다. 별도 수당을 지급하여도 허용되지 않는 업무를 경비원에게 수행하게 할 수 없다.

반면, 관리원은 이번 개선안에 명시된 금지 업무를 하는데 제약이 없다. 또한, 노동부는 관리원의 주52시간 근로 시간 보장을 강조했지만, 현장에서는 휴게 시간이 유명무실해 근로 시간 만큼 급여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경비협회 측은 “인건비 상승으로 시설물 소유자의 압력에 의해 인력이 감소하는 사례가 발생됐다.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제도가 남은 노동자에게 오히려 업무를 가중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안 센터장은 “이번 개선안이 경비원법에 해당되는 것은 모순으로 보인다. 경비 노동자를 경비원법에 포함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노동자로 전환하는 게 맞다. 근무 시간을 줄이더라도 휴일, 주휴수당 때문에 급여가 깎이지 않으면서 관리 업무까지 다 해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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