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심화시킨 아베노믹스…기시다 정권의 최대 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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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 국제경제팀 팀장·최지현 기자
입력 2021-10-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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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4일 공식적으로 선출됐다. 제100대 일본 총리대신의 앞에는 여러 가지 난제가 놓여있다. 무엇보다도 코로나19 사태와 장기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세) 상황 속에서 활로를 찾지 못하는 일본의 경제 회복세가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국외 물가가 상승하고 있는 국제 경제 환경에서 '엔저(低)' 상황이 일본 경제의 타격을 더욱 키울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10년간 더욱 심화한 양극화 상황 역시 기시다 정권의 과제로 넘어왔다. 

◆수출 부양 위한 엔저, '부메랑' 됐다. 

1990년대 이후 일본 경제는 길고 긴 디플레이션을 이어왔다. 여기에 엔고까지 겹치며 수출은 힘들어졌다. 일본은 수차레 경기 부양책을 이어갔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결국,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무제한 금융완화', '마이너스(-) 금리' 등을 도입해 일본 경제를 장기 침체에서 탈출시키겠다고 선언한다.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가 이끄는 일본은행(BOJ)은 그야말로 전례없는 통화완화 정책을 펴면서 경제 살리기에 앞장섰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공세에도 불구하고 2∼3%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세) 목표 달성은 여전히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 국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공급망 균열과 원자재 가격 급등세는 일본 경제를 더욱더 힘겹게 만들고 있다. 

최근 달러 강세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다음 달부터 자산 매입 규모를 축소하는 이른바 '테이퍼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는 탓이다. 미국 달러화의 가치가 올라가면서 엔저 현상도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에너지 가격 등도 급등하면서 도매 물가를 더욱 끌어올리고 있다. 9월 일본의 도매 물가는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결국 이는 수입 물가를 높이면서, 기업 이윤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일본은행이 이달 12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기업 간의 물품 거래의 가격을 나타내는 '기업물품가격지수(CGPI)'는 9월 기준으로 전년 대비 6.3% 상승했다. 이는 예상치인 5.9%를 크게 웃도는 것이다. 앞서 8월 CGPI는 전년 대비 5.8% 상승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도매 물가 상승세는 기업의 이익에만 타격을 줄 뿐 일본은행이 목표로 하는 소비자 물가 상승세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난 8월에도 일본의 소비자 물가는 크게 변화를 보이지 않으면서, 일본은행의 목표치인 2%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도매 물가 상승세를 주도한 요인은 에너지 가격이기 때문이다. 내수 회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높아져만 가는 비용 부담은 기업들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엔저 상황은 수출에 유리한 환경이라고 인식되지만, 수입 물품의 가격이 올라가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엔저는 부메랑이 되어 오히려 수출 기업들의 부담을 더욱 늘릴 수 밖에 없다. 최근 시장에서 엔저와 에너지 가격 급등세가 일본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4일 도쿄 의사당에 도착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내각 출범 4주 만인 이날 임시 각의에서 중의원 해산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일본은 오는 31일 4년 1개월 만에 총선을 치른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


◆양극화의 키운 아베노믹스 

기시다 일본 총리는 지난 8일 국회 '소신 표명 연설'에서 과거 아베노믹스로 소외됐던 분배를 강조하고 나서면서, 향후 경제 정책에서 성장과 분배를 함께 지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일본 경제의 심화하는 불평등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코로나19 피해지원금 정책을 펴겠다고 약속했다. 그간의 정책이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이들을 제대로 지원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 탓이다. 

또한, 기시다 총리는 분배 강화를 위해 금융소득 과세 방식을 수정하는 등 조세 개편도 추진할 예정이라고 일본의 경제 전문지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전했다. 이처럼 기시다 정권이 초기부터 분배를 강조한 데는 이유가 있다. 아베노믹스 정책 이후 안 그래도 심화하던 양극화 상황이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더욱더 악화하고 있다는 성토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로이터는 "(일본의) 주식시장이 상승하고 고급 자동차 판매 대수도 늘어나는 등 아베노믹스 부양 정책의 효과를 보고 있는 곳도 있지만, 이는 매우 일부에 국한되는 이야기"라면서 "기시다 총리는 양극화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내놓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기시다 총리는 11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금융소득 과세 정책에서 한발 물러섰다. 그는 "임금 상승을 위해 기업들을 세제 지원을 강화하는 일에 먼저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분배에 초점을 두었던 초기 입장과는 다소 다른 것이다. 일률적으로 20%를 부과한 금융소득 세율을 조정하겠다는 공약은 불과 며칠 만에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 것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일본의 빈곤율은 주요 7개국(G7) 가운데 가장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는 9번째를 차지한다. 평균 임금은 지난해에서 올해까지 1.2%가 올랐다. 상위 10%의 재산은 늘었지만, 2014~2019년 사이 가계 평균 재산은 3.5%가 감소했다. 물론, '불평등 지수'로 불리는 지니계수에서 일본은 2018년 기준 0.334를 기록해 중간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곤 있다. 최상위 수준인 0.4에 수렴하고 있는 미국·영국보다는 확연히 낮은 상황이지만, '소득 격차가 크다'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선인 0.35에 근접하고 있는 상황을 결코 낙관할 수만은 없다.

이에 따라, 기시다 일본 총리는 아베노믹스를 포함한 새로운 형태의 '일본식 자본주의'를 강조하면서, 빈부격차 줄이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아베노믹스 시대의 엄청난 돈풀기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했던 과제를 달성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나가이 시게토 옥스포드이코노믹스 일본경제실장은 "무엇보다도 정치인들은 일본이 명목상의 성장을 회복하는 것만으로 모든 병폐를 고칠 수 있다는 아베노믹스의 비현실적이고 낙관적인 전제를 버릴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새로운 자본주의, '총선용 면피 정책' 비판도

일각에선 기시다 일본 총리가 내놓은 '일본식 자본주의' 구상이 선거용 면피 공약이란 비판도 거세다.

일본 중의원 선거(총선)는 오는 31일 예정된 가운데, 여당인 자민당 내부에선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자민·공명당의 연립 정권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감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분배를 강조하는 기시다의 경제 구상 면면은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이 그간 앞세웠던 기조라는 점에서 '화두를 뺏겼다', '정책을 베꼈다'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지난 11월 중의원에서 진행된 당대표 질문에서 에다노 유키오 입헌민주당 대표는 "(기시다) 총리가 말하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은 아베 전 총리 당시에도 말했던 것이고 애당초 일반론에 지나지 않아 지금의 일본엔 해당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기시다 총리의 새로운 자본주의론이 말만 거창할 뿐 내용이 없다고 공격하며 야당의 차별성을 강조한 것이다.

한편, 입헌민주당 내부에서는 아베 전 총리의 지원을 받는 기시다 신임 내각이 '고치카이(宏池会) 파벌' 출신이란 점에서 해당 정책의 진정성을 믿을 수 없다는 반응도 보이고 있다. 고치카이 파벌은 자민당의 보수 본류를 자처하는 세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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