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영 前뉴시스 도쿄특파원·日와세다대 국제관계학 박사


오는 29일 치러지는 일본 집권 자민당의 총재 선거는 일본 정치에 적잖은 변화를 몰고 올 조짐이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에서는 집권 여당 총재가 총리를 맡는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현 자민당 총재 겸 총리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분신으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1년 전 아베가 건강상 이유로 중도 사임하고 남은 임기 1년의 총리 자리를 당시 관방장관이던 스가가 이어받을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아베의 충실한 대리인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 스가 총리가 지난 3일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코로나19 대응에 전념하기 위해서”라는 게 불출마의 이유였지만 사실은 당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스가 총리는 2020년 9월 집권 당시에는 지지율이 74%에 달했지만(요미우리신문), 코로나19 대응 부실과 도쿄올림픽 강행 등으로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다. 올림픽 폐막 직후인 지난 8월 말에는 내각 지지율이 26%(마이니치신문)까지 추락하면서 정권 유지의 마지노선으로 불리는 30%의 벽도 무너졌다. 게다가 요코하마 시장 선거에서 스가 총리가 전폭 지원한 오코노기 하치로(小此木八郞) 전 국가공안위원장이 참패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요코하마는 8선 중의원인 스가 총리의 지역구다. 7월 도쿄도의회 선거에 이어 요코하마 시장 선거까지 패배하자 자민당 내에서는 “스가 총리 지휘 아래서는 올가을 예정된 중의원 총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확산됐다. 스가 총리는 당내 젊은 의원들의 기수로 꼽히는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 환경상에게 당 간사장 자리를 파격적으로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결국 스가는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이것으로 아베-스가 시대는 종언을 고하는 것일까. 그렇게 결론짓기에는 아직 이르다. 스가가 빠진 자민당 총재 선거는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자민당 간사장 대행,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총무상, 고노 다로(河野太郞) 행정규제개혁담당상,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외무상의 4파전으로 진행 중이다.

아베는 자신이 총무상으로 기용했던 다카이치를 지지하고 나섰다. 나라현을 지역구로 둔 8선 중의원인 다카이치는 ‘자민당 내에서도 가장 오른쪽’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A급 전범을 합사 중인 야스쿠니 신사의 단골 참배 정치인인 그녀는 총재가 된 후에도 계속 참배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평화헌법 개정도 적극 지지한다. 한반도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를 담은 무라야마 담화는 수정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다카이치는 무파벌이다. 공식적으로는 아베가 속해있는 호소다파가 아니다. 지난 8월 초부터 일찌감치 출마 의지를 밝혀 왔지만, 출마에 필요한 국회의원 20명 추천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9월 초 스가의 불출마 선언 직후 아베가 그녀를 지지하고 나서면서 판도가 달라졌다. 다카이치는 지난 2월부터 아베의 재등판을 준비하기 위한 모임을 주도해왔다. 출마 선언에서 발표한 공약도 이 모임에서 정리한 것으로, 아베의 정책을 계승·발전시키는 내용이었다. 아베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의 복사판 같은 ‘사나에노믹스’를 주창했고, 헌법개정도 전면에 내세웠다.

아베의 지지로 다카이치가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만큼 아베의 영향력은 아직도 강력한 것이다. 그러나 아베가 다카이치의 당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지지 선언을 한 것은 아니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번 총재 선거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거론되고 있는 고노와 기시다는 보수정당인 자민당 내에서 비둘기파 또는 좌파에 가깝다. 때문에 강성 보수 성향의 지지층을 규합하기 위해 아베가 다카이치를 지지한다는 분석이다. 다카이치가 총재 선거에서 모은 표는 고스란히 아베 지지 세력으로 간주될 것이며, 이것이 아베의 재등판을 위한 발판이 될 것이라는 관측까지 제기된다. 다카이치 출마 선언 직후 한 포털사이트에서 실시된 온라인 여론조사에서 다카이치가 지지율 49.1%로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2위 고노(26.5%), 3위 기시다(11.3%) 순이었다. 아베의 저변 지지세력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총재 선거는 1차에서 당 소속 의원 382명과 당원 선거인단 382명이 투표권을 갖고, 여기서 과반 득표자가 없어 1, 2위 간에 2차 투표를 할 경우 의원 382명과 지자체 대표 47명이 참가한다. 따라서 의원 표의 비중이 커지는 2차 투표는 파벌의 영향력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호소다파(의원 96명)의 실질적 리더인 아베가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가 관건인 상황이다. “누가 새 총재가 되건 뒤에 아베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까닭이다.

현재 총재 선거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로는 고노가 꼽힌다.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이 후지TV와 함께 지난 18~19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52.6%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기시다(15.2%), 다카이치(11.6%), 노다(6.4%) 순으로 뒤를 이었다. 고노는 칸막이 행정 타파, 도장·팩스 문화 폐지와 같은 개혁 정책과 적극적인 백신 보급 정책으로 주목을 받았고, 트위터 등 활발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으로 젊은 층의 지지를 받고 있다. 트위터의 팔로어 숫자는 약 240만명으로, 일본의 현역 의원 중 가장 많은 수를 확보하고 있다. 그에게는 특히 지역구 기반은 약하지만, 개혁 성향이 강한 젊은 의원들의 지지가 모인다. 고노가 총리가 돼 자민당의 얼굴이 된다면 자신들의 중의원 선거운동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러한 젊은 의원들의 목소리는 자민당 내 ‘자율투표’를 이끌어냈다. 이번 총재 선거에서 자민당 7개 파벌 중 6개가 ‘자율투표’ 방침을 정했다. 그동안 자민당 총재 선거는 각 파벌이 지지 후보를 정하고, 소속 의원들이 이를 따르는 ‘파벌투표’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지난해 아베 전 총리의 후임을 정하는 총재 선거에서도 5개 파벌이 스가를 지지하면서 선거는 사실상 시작도 전에 싱겁게 끝났다. 하지만 최근 지방선거에서 자민당계 후보들이 잇따라 패배하자 ‘파벌투표’를 따르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파벌의 영향력을 약화시킨 주역은 ‘아베 키즈’로 불리는 당내 신진 세력들이다. 이들은 2012년 제2차 아베 정권 발족 이후 당선된 3선 이하 의원들로 자민당 소속 중의원 275명 중 126명(45%)에 달한다. 최근에는 파벌을 초월한 소장파 모임이 자주 열린다. 지난 10일에는 7개 파벌의 3선 이하 젊은 의원 90명이 모여 ‘당풍(黨風) 일신 모임’을 만들었다. 이들은 아베-스가 정권이 밀어붙이기식 국정 운영을 반복한 탓에 자민당의 의사 결정 과정이 유권자의 불신을 초래했고 국민의 눈높이에서도 벗어났다고 주장하면서, 이번 총재 선거에서는 의원 개인의 판단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각 파벌이 ‘자율투표’를 결정한 데에는 이러한 젊은 의원들의 목소리가 작용한 것이다.

이번 총재 선거에서는 파벌 타파를 외치는 소장파들과 파벌의 강력한 영향력으로 정국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아베를 비롯한 기존의 파벌세력이 미묘한 물밑 대결구도를 형성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자민당 내에서 소장파 의원들의 비판적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은 결국 아베-스가의 장기집권에 따른 피로감이 누적돼왔고 그만큼 당내 분위기의 쇄신이 절박하다는 자각에 따른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베 정권의 가장 큰 특징은 아베 개인의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리더십이었다. 내각책임제인 일본은 전통적으로 총리와 각 부처의 대신(장관)은 정치인이 맡지만, 실질적인 행정은 관료가 맡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아베 정권은 인사권을 통해 강력한 통제력을 발휘하면서 관료들이 정권의 눈치를 보는 풍조가 만연했다는 지적이 강하다. 제2차 아베 정권의 최대 위기로 이어졌던 모리토모 학원 등 사학스캔들도 모두 이 같은 분위기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가 행정을 강력히 통제하는 이 같은 현상은 파벌 정치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베의 장기집권도 아베 개인의 카리스마를 동력으로, 아베가 속한 호소다파(의원 96명),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이 이끄는 아소파(의원 53명),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의 니카이파(의원 47명)가 당내 의사 결정을 좌지우지함으로써 가능했다는 지적인 것이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11~12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8%가 “차기 총리는 아베-스가 내각 노선을 계승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답했다. 이런 여론에는 스가 총리의 개인적인 자질 부족, 이를테면 “남이 써준 원고를 기계처럼 읽기만 한다”는 등의 지적이 작용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일본 국민들이 이제 새로운 정치와 새로운 정책을 원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강력한 파벌정치를 바탕으로 톱다운 방식의 정책 결정을 해오면서 국민과의 대화를 경시해 온 아베-스가식 정치가 국민들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야당의 존재가 미미한 일본에서 집권 자민당은 일본 정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 총재를 뽑는 이번 선거에서 일본 정치를 좌지우지해 온 기존 파벌들의 영향력과 성격에 어떤 변화가 올 것인가. 기성세력에 도전하는 신진 정치세력들의 시도는 일본 정치에 지각변동을 가져올 작은 신호인가, 아니면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것인가. 전후 일본의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우며 10여년 일본 정치를 압도해 왔고 지금도 막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아베의 위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일본 정치를 바라보는 관찰자에게는 흥미진진한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그 결과는 한국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이 자명한데도 국내는 온통 우리 대통령 선거에만 빠져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조윤영 필자 주요 이력

△이화여대 북한학 석사 △일본 와세다대 국제관계학 석·박사 △뉴시스 도쿄특파원 △<北朝鮮のリアル(북한의 현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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