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윤 칼럼] 앞뒤가 바뀐 종전선언과 ‘북한 비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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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윤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글로벌인텔리전스학과 특임교수
입력 2021-10-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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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윤 교수]



북한은 지난 9월 신형미사일을 네 차례씩이나 발사하였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북한 핵프로그램이 전속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9월 21일 UN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도 워싱턴포스트와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북한에 종전선언처럼 구체적인 유인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북한은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을 통해 “종전선언이 흥미로운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다. 종전이 선언되자면 적대시 정책, 이중기준부터 먼저 철회되어야 한다”고 화답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와 남북정상회담 가능성도 언급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석하도록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관대한 조치를 해주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북한은 10월 4일 남북통신연락선 복원에 맞추어 문 정부에 “남북관계를 수습하며 선결해야 할 중대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중대과제는 한미연합훈련 및 전략무기 투입 영구중단, UN의 대북제재 해제로 해석된다. 이것이 최근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요상한 남북관계 변화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문점이 많다.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북한의 비핵화인데, 아무리 보아도 찾을 수 없다. 실종되었다. 대신, 뜬금없이 종전선언과 북한의 중대과제만 화두가 되고 있다.

문 정부가 제안한 종전선언의 실체를 살펴보자. 미국과 국제사회, 한국, 북한 모두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미국의 시각은 부정적이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먼저 논의해야 하고, 북한의 신형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며 UN의 대북제재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국제사회도 북한의 위협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는 북한의 핵 포기를 강조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UN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비공개로 긴급회의를 소집하였다.

한편 정부는 위협적인 ‘북한 신형미사일 발사’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고, 남북관계 개선이란 명분 아래 국제사회에 종전선언의 필요성만 홍보하고 있다. 국민생명 보호에는 안중에도 없고 임기 말 업적을 쌓기 위해 4차 남북정상회담 성사에만 올인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북한의 속내를 들여다보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금년 1월 “핵무력 건설을 중단없이 추진할 것이다”고 언급했다. 올해에만 일곱 차례에 걸쳐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등 신형미사일을 시험 발사하였다. 지난 8월에는 한미연합훈련을 빌미로 일방적으로 남북통신연락선을 끊어버렸다. 최근 북한은 남북통신연락선을 다시 복원하면서 문 정부에 요구사항을 빨리 해결해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북한은 남북통신연락선 차단과 재가동을 통해 문 정부에 대해 길들이기를 시도하고 있다. 종전선언과 남북정상회담을 미끼로 삼아 문 정부가 바이든 정부에 북한의 중대과제를 수용하도록 설득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종전선언에 대한 이해득실을 따져 보자. 종전선언은 한마디로 시기상조다. 북한의 비핵화가 먼저 이루어진 후에 종전선언을 해야만 순서가 맞다. 문 정부는 앞뒤가 바꿨는데도 밀어부치고 있다. 대북정책 실패를 만회하고자 얼마 남지 않은 임기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종전선언을 추진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에 따른 후속 조치로 UN의 대북제재 완화나 해제 문제를 협상해야 하는데, ‘북한 비핵화’는 쏙 빼버린 채 북한이 주장하는 종전선언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UN의 대북제재 완화 문제 등을 논의하려 한다. 주객이 전도되었다. 문 대통령은 ‘국군의 날’ 행사에서도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에 대해서는 일체 말이 없었다. 그 대신 종전선언의 취지를 또다시 주장했다. 문 정부에서 ‘북한의 비핵화’ 없는 종전선언에 왜 그토록 집착하는지 알 수 없다. 종전선언은 현실성 없는 정치적인 말 잔치이다. 현 상황에서 종전선언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한미동맹에 균열만 생길 뿐이다. 한미연합훈련까지도 북한의 눈치를 보고 있는 한심한 지경이다.

만일 북한의 시나리오대로 종전선언을 할 경우, UN의 대북제재는 무력화되어 북한의 핵실험과 각종 미사일 도발 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주게 된다.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도 사실상 인정해주는 사태를 초래한다.
북한의 다음 수순은 주한미군 철수카드이다. 북한은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남북통신연락선 단절과 재가동을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바꾸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개성공단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통째로 폭파시켰다. 종전선언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속셈은 우리 손발을 묶어 놓고,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일어날 끔찍한 재앙을 과연 누가 책임질 것인지 묻고 싶다. 정부가 국민 생명을 보호할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미군이 떠난 후, 월맹군은 손쉽게 월남을 점령하였다. 지금 아프가니스탄 사태에서도 똑같은 장면을 보고 있다.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북한 핵무기’가 존재하는 한, 종전선언은 무의미하다.

최근 남북관계를 바라보니,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북한과 문 정부가 추진했던 당시 상황이 문득 떠오른다. 문 정부는 마치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으며 북한의 비핵화가 곧 실현될 것처럼 국민과 국제사회에 밝힌 것으로 기억된다.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고, 문 정부가 다리를 놓아 미북정상회담도 열렸다. 그러나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북한에 미북정상회담이라는 선물만 안겨주었다.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은 실패하였다.

최근 북한의 영변 핵시설이 재가동되는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문 정부는 북한의 나쁜 행동을 너무 빨리 잊어버린다. 마치 북한 입장을 두둔하는 듯한 자세도 보인다. 북한의 도발에 강력히 대응하지 못하고 또다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위해 북한을 바라만 보는 정부의 유약한 태도가 실망스럽다.

문 정부의 대북정책으로는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없다. 북한이 비대칭 전력인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한, 우리가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전술핵무기 개발이 우리는 물론 주변국들까지 위협하고 있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그동안 한국과 미국은 북한에 대해 다양한 대북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북한의 핵 위협만 가중되고 있다. 북한의 핵이 있는 한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향후 한반도에서 북한의 비핵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똑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2030 MZ세대의 미래는 더욱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북핵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과 국민생명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대북정책이 시급하다. 국제사회와 공조하여 UN의 대북제재를 더욱 촘촘히 하고, 전술핵무기 재배치 문제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문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로 끝났기 때문에 차기 정부에서는 실패한 대북정책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대북정책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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