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아이·디어·유] 사퇴한 정세균…다시 신사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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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수석논설위원
입력 2021-09-1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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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국회의장+국무총리’의 대권 도전 중도 사퇴

  • 미국 정치계 신사 바이든 대통령 벤치마킹

  • 백봉신사상 15회, 최다 수상자



▶대한민국 국가 의전 서열 1~3위는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순이다. 3권 분립 원칙에 따라 행정, 입법, 사법부 수장 순서대로다. 이어 4위 헌법재판소장, 5위 국무총리, 6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고, 여당 대표(7), 야당 대표(8), 국회부의장(9), 감사원장(10)까지가 우리나라 톱10이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이 톱10 중 세 자리에 앉아 본 유일무이한 이가 바로 정세균(71)이다. 그는 2020년 1월부터 올 4월까지 제46대 국무총리, 2016년 6월부터 2018년 5월까지 국회의장을 지냈다. 2007년 참여정부 시절에는 여당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당 대표격인 당의장을 겸임했다.

▶일반적으로 전(前)이라는 호칭을 쓸 때는 두 가지로 나뉜다. 가장 높은 자리를 붙이거나, 바로 직전 지위를 부른다. 그래서 정세균 전 국회의장 혹은 정 전 총리라고 칭한다. 202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대권 후보로서 정세균 전 총리로 호칭을 통일했다. 아무래도 대권 도전에 전직은 국회의장 보다는 국무총리가 더 유리하기 때문이라 판단했을 거다.

▶애초부터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낙연 전 총리과 함께 ‘빅3’로 꼽혔던 정 전 총리가 13일 오후 전격적으로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정 전 총리는 “이제 평당원으로 돌아가 하나 되는 민주당,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백의종군하겠다. 저는 민주당을 사랑한다. 대한민국을 더 사랑한다”고 분루를 삼켰다.
 

[정세균 전 총리. 사진=연합뉴스]


▶낮은 지지율 때문이다. 9월 4~5일 치러진 충청·대전, 11일 대구·경북, 12일 강원, 1차 슈퍼위크 선거인단 투표를 모두 합친 누적 득표율 4.27%(2만 3731표)를 기록, 4위에 그쳤다.

명운을 걸었던 충청권에서 10%대 득표에 실패했고, 선대위원장이 강원지사 이광재 의원임에도 강원에서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에 이어 4위에 그쳤다.

지역투표가 아닌 ‘찐 당원’이 대거 참여한 1차 슈퍼위크에서 거둔 초라한 성적(4.03%)이 결정적이었다. 누적 득표율에서도 3위 추 전 장관(11.35%)에게 역전 당한 충격이 컸다.

▶한가위 연휴(18~22일)이후 24,25일 열리는 호남경선에서 의미 있는 지지를 거두지 못할 거라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북 진안이 고향인 정 전 총리 입장에선 호남을 돌며 지지를 호소하는 데 대한 부담이 컸을 거다.

이광재 의원과 단일화로 정 전 총리 캠프에 합류했던 전재수 의원이 앞서 이재명 경기지사 지지를 공개 선언하며 이탈한 것도 중도 사퇴에 한몫했다.

코로나 악재도 있었다.  정 전 총리는 코로나19 밀접접촉자와 접촉해 지난 8월말에서 6일까지 2주 가량 자가격리를 했다. 중차대한 시기에 코로나에 발목이 잡히는 불운까지 겹쳤다.

▶국회의원 재선에 떨어졌다 3선에 성공한 정치인이 있다. 그는 4선에 도전했다가 다시 떨어졌다. 그에게 “재선에 떨어졌을 때와 4선에 실패한 선거 중 어느 게 더 고통스럽냐”라고 물었다. 그는 정색하며 “2층에서 떨어진 거랑 4층에서 떨어진 거랑 어느 게 더 아플까”라고 반문했다.

정세균 전 총리는 6선 의원, 국회의장, 국무총리, 여당 대표까지 했다. 그가 이번 민주당 대선 후보 예선에서 사실상 탈락했다. 대단히 아플 거다. 하지만 다시 신사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1년동안 품위 있는 의정활동을 벌인 국회의원에게 주는 백봉신사상은 독립운동가이자 제헌의회 의원인 라용균 전 국회부의장의 호 백봉에서 왔다. 일제강점기 영국 유학을 다녀온 그의 별명이 ‘영국신사’였기 때문이다. 정치부 기자들이 선정하는 이 상의 최다 수상자는 바로 정세균 전 총리다. 1999년부터 2019년까지 전체 21회 중 15회를 받았다.

▶지난해 11월 총리 취임 300일 기자간담회에서 당시 정 총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품격있는 정치인이다. 안정감도 있고 경륜이 풍부하고 포용의 정치를 펼친다”고 했다. ‘바이든처럼 되겠다’며 사실상 대권 도전을 선언한 거다.

미국 정치권이 인정하는 ‘신사’ 바이든 대통령은 1942년생이다. 정 전 총리는 1950년에 태어났다. ‘미스터 스마일’ 정 전 총리가 앞으로 대선 국면뿐 아니라 미래 한국 정치에 신사의 시간을 이끌어주길 바란다. 후원회장인 ‘욕쟁이 탤런트’ 김수미에게 배운 욕은 잊고 품격 있는 신사의 모습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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