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위드 코로나' 주장에 매국노 된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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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재호 특파원
입력 2021-08-1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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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원훙 "코로나와의 공존법 찾아야"

  • 웨이보 글에 "미국이 키운 개" 비난

  • 前 장관·베이징대 교수가 저격 앞장

  • 中공산당 코로나 승전론 퇴색 우려

  • "과학을 정치영역에 끌어들여" 비판

장원훙 푸단대 부속 화산병원 감염병학과 주임이 코로나19와의 장기간 공존 가능성을 시사하는 글을 게재한 웨이보 화면(왼쪽)과 그를 '반동 학술 권위'라고 비난하는 내용의 온라인 만평. [사진=웨이보]


"세계는 바이러스와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더불어 살아야 할 '위드(with) 코로나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이 평범한 문장이 중국을 발칵 뒤집어 놨다.

발화자는 의사 장원훙(張文宏). 상하이 푸단대 부속 화산병원 감염병학과 주임으로, 중국 내 유명한 보건 전문가다.

글이 올라오자 전직 장관과 베이징대 교수를 포함해 수많은 중국인들이 그를 욕하기 시작했다.

바이러스는 박멸할 상대지 공존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이러스에 대한 항복 선언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언뜻 방역 의식 약화를 걱정하는 투로 들리지만, 미국이나 영국 등 서구에서 주창하는 '위드 코로나' 개념을 중국이 왜 따라야 하느냐는 정서가 근저에 흐른다.

전 세계에서 코로나19를 가장 성공적으로 막아낸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공이 퇴색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감지된다.

장원훙은 "우리는 이미 코로나19에 한 차례 승리했다. 미래에는 더 오래도록 승리할 수 있는 길을 반드시 찾아낼 것"이라고도 썼지만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이 와중에 장원훙의 논문 표절 의혹까지 불거졌다. 푸단대 측은 조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제보자는 밝히지 않았다.

지난해 초 중국을 뜨겁게 달궜던 '리원량 사태'가 재연되는 분위기다. 중국 의사 리원량(李文亮)은 코로나19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렸다는 이유로 당국의 처벌을 받고 그 또한 감염돼 숨졌다.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자 장원훙은 아예 입을 닫아버렸다. 그의 웨이보(중국판 트위터)는 보름 넘게 감감무소식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도시 전체가 봉쇄됐던 우한의 참상을 고발했다가 맹비난을 당한 작가 팡팡(方方)은 "극좌 세력의 공격을 지켜보며 내 조국이 문화대혁명 시기로 후퇴하는 게 아닌가 걱정됐다"고 했다.

과학까지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공세를 퍼부을 정도로 맹목적 애국주의에 사로잡힌 중국의 현주소다.
 

최근 "코로나19와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는 이유로 맹비난을 받고 있는 장원훙. [사진=바이두]


◆장원훙 "코로나와 공존할 수밖에"

논란의 글은 지난달 29일 게재됐다. 장쑤성 난징의 루커우(祿口)공항을 통해 유입된 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던 때다.

장원훙은 "엄격한 방역이 이뤄지고 백신 접종이 속도를 내는 시점에 여러 성에서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 불안이 커지고 있다"며 "이번 불안은 미래에 대한 거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다양한 수치를 인용하며 "모두가 백신을 맞아도 코로나19는 여전할 것이다. 다만 유행은 하되 사망률은 낮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의 내용은 글 말미에 나온다. 그는 "우리가 겪었던 것보다 더 힘든 건 바이러스와 장기간 공존할 지혜가 필요하다는 점"이라며 "세계의 대다수 학자는 (코로나19가) 일종의 상주 바이러스라는 걸 인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미래의 위험은 항상 있을 것"이라며 "어떻게 바이러스와 공존할지에 대해 각국이 나름의 해답을 내놔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원훙은 "향후 중국은 세계와 소통하면서 정상 생활로 복귀하고 동시에 국민들의 공포를 없앨 수 있는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며 "중국은 이 같은 지혜를 갖고 있다"고 격려했다.

사실 이런 얘기는 새로운 게 아니다.

코로나19 사태 발발 직후인 지난해 2월 왕천(王辰) 중국공정원 부원장은 중국중앙방송(CCTV)에 출연해 "이번 바이러스는 독감처럼 만성적으로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는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3월에는 가오푸(高福) 중국통제예방센터장이 "코로나19가 사라질 것이라는 증거는 없다. 인류와 공존하는 가운데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할 수도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중국에서 코로나19 방역 영웅으로 불리는 중난산(鐘南山) 중국공정원 원사도 지난 5월 "코로나19가 인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든다는 전제 하에 장기간 공존할 수 있다"며 "독감 예방처럼 주기적으로 백신을 맞아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장원훙의 글이 알려진 뒤 동조하는 전문가들도 나왔다.

지난 4일 스정리(石正麗) 우한바이러스연구소 소장은 "델타 변이는 최소 98개국에서 출현했고 변이와 진화를 지속하는 중"이라며 "우리는 공포심을 내려놓고 코로나19와 한동안 공존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원훙이 미국 등 서방 진영의 방역 전략을 맹종한다는 취지로 저격에 나선 가오창 전 위생부 부장(왼쪽)과 장이우 베이징대 교수. [사진=바이두]


◆매국노 비난 속 뜬금없는 표절 의혹

온라인에서는 바이러스 '공존파'와 '퇴치파'로 나뉘어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중 위생부 부장(장관)을 지낸 가오창(高强) 중국건강관리협회 총고문이 퇴치파의 선봉에 서서 장원훙에 대한 비판에 나섰다.

가오 전 부장은 지난 5일 인민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인류와 바이러스는 '네가 있으면 내가 없고 네가 죽으면 내가 사는' 관계"라며 "인류 생존과 번영은 일정한 의미에서 바이러스와의 목숨을 건 투쟁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류가 바이러스를 없애지 않으면 바이러스에 먹히게 될 것"이라며 "여태껏 인류가 바이러스와 장기간 공존한 사례는 없다"고 덧붙였다.

가오 전 부장은 특정인을 지목하지 않았지만 장원훙을 겨냥한 기고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여기에 장이우(張頤武) 베이징대 교수가 숟가락을 얹었다.

환구시보 등에 따르면 장 교수는 "맹목적인 방역 해제 및 완화는 단순하게 백신 접종에 따른 집단 면역을 추구하는 발상"이라며 "바이러스와 공존한다는 주장이 전 세계에 코로나19가 다시 만연하게 된 주요 원인"이라고 짚었다.

추스(求是) 등 관영 매체는 공식 웨이보 계정에 장원훙의 주장을 반박하는 글을 올렸고, 일각에서는 '당대의 왕징웨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왕징웨이(汪精衛)는 1940년 중국 내 친일 정권의 주석직에 올라 중화민족을 배반한 친일파 오명을 쓴 인물이다.

이런 가운데 뜬금없이 장원훙의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됐다. 푸단대 대학원은 지난 15일 "표절 의혹 제보가 접수돼 학교 측에서 이미 조사를 시작했다"고 확인했다.

2000년에 발표한 박사 논문의 총론 부분에서 3700여자를 별도 인용 표시 없이 사용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해당 논문은 7만자 분량이다.

시점이 공교롭다. 중화권 매체 둬웨이는 "왜 지금 이런 의혹이 나온 건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며 "문제는 있지만 그의 학술적 권위가 훼손될 정도는 아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 극복 성과 훼손 막아라 

많은 의학자들이 일관되게 위드 코로나 시대의 도래를 전망하지만 유독 장원훙에게만 공격이 집중된다.

중난산 원사 등 공적 영역에 오래 몸 담으며 인지도를 높여 온 노회한 학자들과 달리 민간 출신인 그가 타깃이 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홍콩대와 미국 하버드대 등에서 경력을 쌓은 장원훙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 관변 학자들과의 의견 차를 종종 드러냈다.

중 원사가 "중국에 다수의 무증상 감염자는 없다"고 하자 "현재 가장 큰 위험은 무증상 감염자"라고 맞받아친 게 대표적이다.

이런 사례들로 젊은 층의 큰 지지를 받는 그가 코로나19와의 공존을 언급하자 위기 의식이 발동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코로나19를 가장 성공적으로 극복했다고 선전해 왔다.

특히 사태 초기 방역 혼란으로 막대한 수의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생한 미국과 유럽 등 서구 진영과 극명한 대조를 이뤄 중국인들의 자부심은 최고조에 달한 상황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상존을 염두에 둔 방역 체계를 구축 중인 서구와 비슷한 길을 가는 데 대한 거부감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장원훙을 향해 '외국을 숭상하고 아첨하는 인간(崇洋媚外)', '매국노(漢奸)', '미국이 키운 개(美國養的狗)' 등의 맹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다.

가오 전 부장은 장원훙을 저격하는 글에서 "우리는 서방 국가들처럼 백신 접종 후 방역에 소극적이어선 안 된다. 이는 시기상조"라고 적었다.

장이우 베이징대 교수도 "미국과 영국 등은 '바이러스와의 공존'에서 경제·사회적 장점을 얻지 못하고도 이를 중국에 선전한다"며 "중국 같은 인구 대국은 상상할 수 없는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서방의 연환계(간첩을 적에게 보내 계교를 꾸며 승리를 얻는 전략)에 당하면 안 된다"고도 했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처럼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의학에 문외한이라는 점이다.

가오 전 부장은 위생부장을 지내긴 했지만 인민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경제 전문가다. 장 교수는 베이징대 중문과 소속이다.

일부 유력 인사들이 과학을 정치의 영역으로 소환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중국 관찰자망은 장원훙 관련 논란을 보도하며 "어떤 이가 이치와 동떨어진 말을 하면서 이를 정치화 혹은 이데올로기화하고 오명을 씌우는 건 고약한 일"이라며 "코로나19 방역의 큰 흐름에도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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