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석, 과학의 시선] 카불 함락, 탈레반 치하 아프간 여성 걱정하는 분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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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과학작가,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 저자
입력 2021-08-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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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과학작가, 언론인



 

[카불 새 시장의 한 점포, 최준석 필자 재공]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도심에 새(bird) 시장 골목이 있다. 차르 차타(Char chata) 바자르 인근에 있다. 비좁은 골목에 나무로 된 새장을 걸어놓은 가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오랜 전화(戰禍)에 시달린 아프간 사람들이 새를 좋아하나, 싶었다. 녹색-노란색의 앵무새도 있었고, 비둘기와 비슷한 몸집이나 털 색깔은 좀 다른 새도 있었다. 새를 사지는 않더라도 조롱 속의 새에게 풀을 먹이로 주는 행인도 있었다.

새 시장 골목을 눈구멍만이 나 있는 쪽빛 외출복을 뒤집어쓴 여성들이 지나갔다. ‘차도르’ 혹은 ‘부르카’라고 불리는 옷이다. 옷차림을 보자, 숨이 막혀 왔다. 이슬람세계를 많이 돌아다녀봤지만, 아프가니스탄처럼 얼굴까지 가린 부르카를 착용한 여성을 많이 본 곳은 없었다. 그때가 2005년 9월이었다. 나는 당시 아프가니스탄 국회의원 총선거를 취재하려, 조선일보 뉴델리 특파원으로 일하던 중 카불에 갔었다. 그때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기세가 좋았고, 반군인 탈레반은 도시 인근에서 힘을 못 쓰고 멀리 힌두쿠시 산맥의 깊은 산중으로 달아나 있었다.

16년이 지났고, 지난 8월 15일 반군인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점령했다. 탈레반 반군의 카불 접수는 시간 문제라고 생각했으나, 생각보다 빨랐다. 세상은 항상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고 예상치 못하게 돌아가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한국의 우파는 ‘카불 함락’을 보면서, 1975년 ‘사이공 함락’을 떠올린다. 외세에 의존하다가 외세가 손절하면 그대로 훅 간다는 교훈을 되새김질하고 있다. 그러는 한편, 탈레반 정권 치하에서 아프간 여성들의 인권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아프가니스탄 카불 거리의 부르카를 뒤집어 쓴 여인들. 사진=위키피디어


탈레반이 자국에서 남녀의 사회적 평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줄을 우리는 다 안다. 여성의 학교 교육에 반대하고, 남편과 동행하지 않는 외출을 문제 삼으며, 결혼은 부모가 정해준 대로 해야 하는 건 물론이며, 집안의 불명예가 되는 딸자식을 아버지나 오빠가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아프가니스탄 남자들이 적지 않다. 혹자는 그게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구태의연한 유산이라고 말하나, 나는 그에 동의하지 않는다. 많은 이슬람 세계가 그런 낡은 세계관을 뒤로 했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인의 여성관은 그건 그 사람들의 세계관이자 문화의 현 주소이지, 그걸 이슬람이라는 종교와 결부시킬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리고, 모든 사회는 그들 수준의 갈등이 있고, 진통을 겪고 있다. 남녀 평등이란 주제에 관한 한 한국은 물론이고 다른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과학계 안으로 좁혀보면, 신경과학계가 그런 남녀 이슈를 갖고 있다. 한국에 소개된 책들을 봐도, 전쟁터의 화약 냄새가 난다. 남자와 여자의 뇌는 같다, 아니야 같지 않다는 싸움이다. ‘같다’(same) 쪽의 책으로는 <여자의 뇌, 남자의 뇌 따윈 없어>(송민령, 동아시아, 2019년)가 있다. 반대편(not same)에는 <그 남자의 뇌, 그 여자의 뇌>(사이먼 배런코언, 바다출판사, 2007년)와 <여기까지 알았다! 여자의 뇌, 남자의 뇌>(아라이 야스마사, 전파과학사, 1995년)가 보인다.
 

신경과학 연구 저널(JNR)의 2017년 '남녀의 뇌' 특집호 표지 이미지.


신경과학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대중을 겨냥한 책이 아니라, 과학학술지를 들여다봤다. 과학학술지는 학자들이 논문을 발표하는 공간이다. 어떤 진검 승부를 겨루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학술지 ‘신경과학연구 저널’(Journal of Neuroscience Research)의 2017년 1/2월호 특집호가 눈에 띈다.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는 다르다‘라는 얘기를 한다. 래리 커힐(Larry Cahill) 캘리포니아대학(어바인 소재) 신경과학자가 주도해서 이 학술지를 온통 관련 특집 논문과 글로 채웠다.

반대편 진영 논문도 보인다. 학술지 ’신경과학 및 생물행동학 리뷰‘(Neuroscience and Biobehavioral Reviews) 2021년 6월에 미국 신경과학자(로잘린드 프랭클린 의과학대학)인 리즈 엘리엇 등이 쓴 ’이형성을 버려라‘(Dump the dimorphism)란 리뷰 논문이다.

먼저 ‘not same’ 쪽의 신경과학연구저널에 실린 특집 내용을 살펴본다. 신경과학연구 저널은 와일리-리스(미국 학술지 출판업체)가 발행하는 월간지이고, 학술지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피인용 지수(impact factor, 2020년 기준)가 4.164이다. 특집호 에디터인 래리 커힐(UC Urvine) 교수는 90페이지 특집을 시작하면서 “뇌 기능에서의 성차를 연구하기 시작하던 2000년, 나는 한 선배로부터 강한 충고를 받았다. 그는 ‘조심해 그건 금기야’(Be careful, it's the third rail)라고 했다”라고 전한다. 커힐은 이어 이렇게 말한다. ”그 선배는 어느 면에서 옳았다. 뇌 기능이 성에 따라 어떻게 다른가를 연구하는 건, 잘해야 신경과학계에서 신용을 잃지 않을 뿐이고, 잘못하면 학계 주류의 눈 밖에 나는 것이었다.” 이어서 그는 묻는다. 왜 남녀 성차를 연구하면 안 되는가? 왜 그건 금기인가. 그러면서 그때까지의 신경과학계 분위기를 전한다.

당시 학계가 남녀 성차가 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지 않은 다섯 가지 이유를 지목했다. “뇌기능에 대한 성차의 영향은 작거나 신뢰할 수 없을 정도다” “그건 모두 호르몬 때문이다” “성차는 인간의 문화 때문에 생긴다” “분자(molecule) 수준에서는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는 “정치”였다. 래리 커힐 교수는 “’동등’(equal)하다는 게 ‘같다’(same)는 걸로 신경과학자는 잘못 알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하지만 지난 15-20년 새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성별로 뇌 기능이 어떻게 다른지에 관한 연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며, 뇌 기능의 모든 영역에서 성차를 기록하고 있다”라는 식으로 전했다. 그는 이어 “이제 시대정신의 변화를 선언한다. 주류 신경과학학술지가 뇌와 신경계 기능에 대한 성차를 온통 한 잡지를 털어 전하는 건 처음이다”라며 “성은 중요하다(sex matters)”라고 말했다.

이제 ‘same’ 쪽 연구를 살펴보자. ‘여자의 뇌, 남자의 뇌 따위는 없어’라고 말하는 쪽이다. 미국 로절린드 프랭클린 의과학대학의 리즈 엘리엇 교수의 2021년 논문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형성을 버려라‘(Dump the dimorphism)란 리뷰 논문. 이형성은 두 가지 형이라는 말이다. 남녀가 서로 각기 다른 뇌를 갖고 있다는 게 ’이형성‘이다. 그리고 그가 쓴 논문은 ’리뷰 논문‘인데, 리뷰 논문은 특정 주제의 연구 현황을 정리한 논문이다. 특정 주제의 연구 현황이 궁금하면 리뷰 논문을 찾아보면 된다.

엘리엇 교수의 논문이 실린 ‘신경과학 및 생물행동 리뷰’ 학술지는 네덜란드의 세계적인 학술 출판사인 엘스비어가 출판하며, 이 학술지는 국제행동신경과학 소사이어티(IBNS)의 공식 저널이다. 피인용지수는 8.329(2020년 기준)이다. ‘not same’ 쪽 특집이 실린 학술지보다 피인용지수가 두 배 가까이 높다. 일반적으로 피인용지수가 높다는 건 더 학계에 영향력이 있다는 식으로 풀이된다.

리즈 엘리엇 교수는 논문에서 “뇌의 남녀 성차에 대한 학문적인 관심은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오래되었다”라고 했다. 남녀의 뇌에 대한 관심과는 별도로, 남녀간 뇌가 다르다는 주장이 그간 대세였고, 이런 주장은 역사적으로 남녀 불평등을 옹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그는 최근의 신경과학계에서 남녀 뇌의 구조와 기능이 다르다는 보고가 많았다고 분위기를 전한다. ‘same’ 진영의 래리 커힐 교수의 말과 일치한다. 엘리엇 교수는 “생리적 그리고 신경장애가 남녀 간에 같지 않다는 보고가 많았다. 자폐, ADHD, 알코올 사용 장애가 그렇다. 이는 남녀간 선천적인 뇌의 차이로 일어나는 게 아닌가 생각해 왔다. 분자(molecule)적인 차원에서 남녀 뇌 차이가 있다는 보고도 있다”라고 말했다.

리즈 엘리엇은 이어 “심리학이 성숙한 것과는 달리, 뇌에서 성차 연구는 체계적으로 종합된 적이 거의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심리학에서는 논문들에 대한 대규모 메타 분석과 메타 종합 연구가 있었다. 그 결과, 남녀는 인지, 성격, 태도에서 대부분 다르기보다는 비슷한 걸로 나왔다. 육체적인 공격, 또래 애착(peer affectopm), 인지 심적 회전 능력(mental rotation ability: 같은 물체를 회전시켜 놓고 같은 물체인지, 다른 물체인지 구분해 보라는 시험이 이 능력을 측정하는 한 사례다)에서만 남녀 차이가 있었다. 신경과학 논문을 대상으로 대규모 메타 분석을 한 결과에서도 발견은, 심리학의 발견과 비슷했다. 뇌구조에서 남녀 뇌는 다르기보다는 같다.”

엘리엇에 따르면,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와 같은 뇌를 촬영할 수 있는 새로운 이미징 기술의 도입으로, 남녀간 뇌의 차이가 무엇인지는 지칠 정도로 분석됐다. 지난 30년간의 MRI촬영, 그리고 검시 데이터를 보면 남녀 뇌는 구조와 기능에서 뚜렷한 차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일반적인 성 차이는 뇌에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개인 편차에 묻힐 정도로 작다”라고 말했다. 그러면 질병 관련 남녀 차이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엘리엇은 “시간이 지나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그 기술을 갖고 뇌를 들여다보면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미국 노스웨스턴 의과대학의 이언 마이클 그랜트 교수는 두 진영 사이에 서 있는 걸로 내게는 보인다. 노스웨스턴의대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글의 제목은 ‘뇌의 전쟁: 남자 대 여자’이다. 그랜트 교수는 “남녀 뇌 크기는 다르다. 그렇다고 크기가 지능에 어떤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 크기 차이에 불구하고, 남녀 뇌는 당신이 기대했던 것보다 더 비슷하다. 크기 말고, 추가적인 차이가 있다. 그것들이 당신과 당신 건강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자”라며 다음과 같이 전한다.

“남자 뇌의 특징을 보면, 여자보다 10% 크기가 크고, 뇌의 앞과 뒤로 연결이 특히 강력하며, 운동 능력에 최적화되어 있다. 질병 관련해서는 알코올 의존도가 높을 수 있으며, 반사회적 성격장애로 진단을 받을 가능성이 세 배 높으며, 자폐를 앓을 가능성이 4배 높고, 파킨슨병에 걸릴 확률이 여자보다 두 배 높다.

여자 뇌의 특징을 보면, 옆면과 반대편 옆면의 연결이 강하며, 직관적인 사고에 최적화되어 있고, 뇌의 회색질 부위가 남자보다 더 많다. 여자는 남자보다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두 배이고, 미국인의 경우 알츠하이머에 걸릴 가능성이 두 배 높으며, 다발성경화증을 앓을 확률은 4배이고, 뇌졸중에 걸릴 가능성도 높다.”

두 진영의 연구를 살펴보았다. ‘same’ 쪽과 ‘not same’ 진영의 말이 달라 혼란스럽다. 남녀 뇌의 기능과 구조에 차이가 있기는 한데. 그게 의미가 있는 차이냐, 아니냐로 일부 신경과학자들의 논란은 귀결되는 듯하다. 국외자인 내가 보기에 중요한 건, ‘같다(same)’ 여부가 아니고 ‘평등’(equal)이다. 같지 않아도 남녀는 평등해야 한다. 다르다 할지라도 다르면서 평등하게 사는 사회를 만들고,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결국 아프가니스탄은 아프가니스탄대로, 한국은 한국대로, 신경과학계는 신경과학계대로 다 진통을 겪고 있다. 그러면서 한발 한발 앞으로 가고 있다고 믿는다. 내일은 또 오늘과 다를 거라고 기대한다.


최준석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조선일보 정치부 차장 ▷뉴델리 특파원 ▷카이로특파원 ▷주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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