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뭐할까] 철학적 사고 담은 작품과의 특별한 만남 ‘필로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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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민 기자
입력 2021-08-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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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례, ‘空-159,160,161,162,166,164,167,163‘, 수성 목판화, 70x100cm(x8), 2019 [사진=이안아트스페이스 제공]


작품 하나에는 작가의 수많은 생각이 담겨 있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작품을 보고 있으면 작가의 마음이 전달될 때가 있다.

다른 재료로 다양한 생각을 전하는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뜻깊은 전시가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 철학 가득한 미술...이안아트스페이스, 단체전 ‘필로소피아’

서울 강남구에 있는 이안아트스페이스는 오는 9월 14일까지 단체전 ‘필로소피아’를 선보인다.

신진 작가들의 활동 무대를 후원하기 위해 준비한 이번 공모전에서는 약 100여명의 작가들이 지원하였으며, 그중 김하경, 배윤재, 최례 작가가 최종 선발되어 단체전 ‘필로소피아’로 기획되었다.

김하경, 배윤재, 최례 작가는 각각 도예, 동양화, 목판화 라는 다른 재료를 활용하지만, 철학적 사고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시의 제목 ‘필로 소피아’는 바로 그 점에 착안한 것으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철학’을 의미한다. 고대 플라톤의 <향연>에 소개된 토론 자리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비롯한 철학자들은 인간의 끊임없이 배우려는 의지를 소개하며 ‘지혜(Sophia)’를 ‘사랑한다(philo)’라는 의미로 철학(philosophy)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김하경, 배윤재, 최례 작가의 작품은 모두 작품 이면에 지혜를 사랑하는 현대 예술가들의 탐구 정신이 담겨 있다.

김하경 작가의 도예 작품은 풍부한 유약의 강약을 통해 회화적 특성이 두드러진다. 다양한 색이 층층이 쌓여 만들어 낸 결과물은 태고의 시간이 담긴 듯한 암석이나 지층의 무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눈속임(trompe l’oeil) 기법을 통해 무엇이 실재이고 아닌지를 붇는 것이야말로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작품의 주제다.

작가는 가마 안에서 각각의 원료들이 화학 작용하는 현상을 만물의 상호작용에 비유하며 결국은 세계가 보이지 않게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임을 가시화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김하경, ‘기록된 변화 시리즈2‘, 도자, 가변크기, 2021 [사진=이안아트스페이스 제공]


배윤재 작가는 전통 동양화 기법을 활용하여 동그란 형태를 만들어나간다. 작가의 기억과 상상이 결합된 것으로 제목에서처럼 ‘무엇이든 가능한 물체’다. 둥근 물체를 채우는 흐르는 듯한 패턴은 작가의 무의식 속에 가장 많이 떠오르는 이미지이며, 각각의 아름다운 색들은 설렘, 불안 등 작가의 감정과 연결된 주관적인 상징을 담은 것들이다.

모호한 것을 붙들고 해답이 떠오를 때까지 탐구하고, 그 과정에서 나온 작품들은 관객들에게 무수히 많은 생각과 연상을 불러 일으키고 그 속에서 저마다 자신의 심리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최례 작가는 수성 목판화 기법으로 하나만 완성되는 작품을 제작하는데, 동그라미가 지닌 의미에 방점을 둔다.

모난 부분이 없고, 세상의 모든 것을 포함하기도 하고 그 무엇도 없는 텅 빈 것이기도 한 원을 중첩하며 다양한 형태로 변주하는 과정은 서로 다른 에너지를 파생시키는데, 전시의 설치와 관객의 참여가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세 작가는 ‘필로 소피스트’이며 또한 각 전공 분야에서 부단한 연마를 거듭해온 작가들이기도 하다.

김하경 작가는 홍익대 도예과 및 애리조나 주립대 세라믹 전공으로 석사를 마쳤으며, 미국 몬타나클레이센터, 일본 시가현 도예의 숲, 김해 클레이아크미술관, 서울문화재단 신당창작아케이드 등의 창작공간(레지던시)을 거쳤다.

배윤재 작가는 이화여대 동양화과 학사 및 석사를 마치고 IBK 기업은행 신진작가 공모전 최우수상,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프로젝트 상을 수상하였다.

최례 작가는 중앙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중국 베이징 중앙미술학원(CAFA)에서 석사, 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다수의 전시회에 참여했다.

이안아트스페이스는 ‘삶 속의 예술’을 매개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해온 이안아트컨설팅에서 운영하는 전시공간으로 청담동에 있으며 장유정, 문연욱, 조재, 조민지 등 회화, 조각, 공예, 사진 등 한국 현대미술의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을 소개해왔다.

배윤재, ‘무엇이든 가능한 물체‘, 장지에 채색, 33x33cm, 2021 [사진=이안아트스페이스 제공]

 

‘Ripple 2023‘, 2021, Acrylic on canvas, 162 x 130 cm (100호) [사진=가나아트 제공]


◆ 자연을 다르게 만날 수 있는 박철호 개인전 ‘Ripple’

가나아트는 자연을 추상적인 이미지로 시각화하는 박철호 작가의 개인전, ‘Ripple’을 오는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 제3관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도 작가는 수면 위의 물결과 물결 사이의 빛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순환함을 드러내는 ‘Ripple(파문)’ 연작을 선보인다.

박철호의 회화에서 새, 꽃, 구름, 하늘, 바다 등의 자연 요소들은 얇은 선으로 묘사되는데 작가는 이를 ‘결’이라고 표현한다. 결이란 구름의 흐름,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나 풀의 움직임, 물결의 파문, 새의 날갯짓, 빛의 파장과 같은 자연의 움직임으로, 그는 모든 자연에 이러한 결이 있다고 말한다.

작가는 이러한 자연의 움직임을 이차원의 평면으로 시각화하기 위해 판화의 실크스크린(Silkscreen) 기법을 활용한다. 이 기법은 다른 판화에 비해 잉크가 많이 묻어나기 때문에 색상이 선명하게 남아 명확한 시각적 효과를 준다.

이번 전시에 공개되는 신작 ‘Ripple’은 '수면(水面)'을 주제로 한 것으로, 이는 작가가 오랜 시간 동안 밤바다를 보았던 기억이 뇌리에 각인되어 무의식 상태에서 나오는 결과물이다.

작가는 자연을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자연의 결을 표현하는 방식에서의 차이를 두었는데, 이는 두 가지 형상으로 작품에 구현된다.

먼저 수면 위의 물결을 표현한 작품은 주로 푸른색을 사용하여 흐릿한 색과 짙은 색상의 농담이 서로 겹치며 리듬감이 느껴지는 일렁이는 형태로 표현된다. 그리고 다른 형상은 자연을 보는 시야를 넓혀, 보다 먼 곳에 있는 수면 위에 미세하게 반짝이는 빛을 시각화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이목을 끄는 작품은 ‘Ripple 2041’(2020)과 ‘Reflection’(2020), ‘Ripple’(2021)이다.

이 세 작품은 즉흥적으로 자른 린넨을 자유롭게 이어 붙인 것으로, 작품의 크기의 한계를 넘고자 한 작가의 시도이다. 작가는 작업의 크기를 확대함으로써 캔버스나 종이와 같이 규격화된 화면에서 벗어나 표현의 영역까지도 확장하고자 했다.

그 중에서도 이번 전시의 백미는 너비가 약 10m에 달하는 설치 작품인 ‘Ripple’(2021)이다. 이 작품은 크기에서 관람자를 압도할 뿐만 아니라 광활한 자연이라는 작가의 일생의 주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Reflection‘, 2020, Acrylic on canvas, 259 x 193 cm (200호) [사진=가나아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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