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지금] “내가 장영술이다”…우리가 뽑는 2022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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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논설위원
입력 2021-08-0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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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도쿄 올림픽으로 본 2022 대선

  • 오로지 실력, 국대 선발의 기준은 하나

  • 지지하라, 정의선처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20 도쿄 올림픽이 8일 막을 내린다. 환호와 탄식이 엇갈렸던 이번 올림픽 몇몇 종목과 장면에서 내년 3월 9일이 아른거렸다. 8일 기준, 212일 뒤가 2022년 3월 9일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일이다.

스포츠와 정치권은 공통점이 참 많다. 이번 올림픽을 보면서 유권자와 대선 주자들이 배울 점, 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적잖이 눈에 띄었다. 유권자 입장에서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 과정과 그 결과를 통해 대한민국 국가대표인 대통령으로 누구를, 무슨 기준으로 뽑아야 할지 엿볼 수 있다. 특정 후보 지지자, 정당도 해야 할 것과 말아야 할 것에 대해 깨달아야 한다. 또 대통령 선거의 의미, 대선 후보들이 스스로 내려야 할 결단의 모습도 비슷하다.

◆뽑자, 장영술처럼
장영술 대한양궁협회 부회장은 우리 양궁의 ‘공정 선발 시스템' 확립 일등공신이다. 선수로서 올림픽 금메달은 없지만 세계 최강 한국 양궁을 한 땀 한 땀 일군 지도자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남자 코치, 2000 시드니 올림픽 여자 감독, 2004 아테네 올림픽 남자 코치, 2008 베이징 올림픽 남자 감독, 2012 런던 올림픽 총감독을 거쳤다. 2015년부터는 양궁협회 전무를 시작으로 체육행정가로 변신해 지금에 이르렀다.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때마다 그는 매번 똑같이 설명했다. “우리는 실력 있는 선수를 공정하게 뽑는다!”라고.  지연, 학연, 심지어 팀연(소속 실업팀 인맥)도 절대 개입할 수 없는 공정한 선발이다. 심지어 올림픽 3관왕 안산 선수도 다시 선발전을 뛰어야 한다. 장 부회장은 올림픽 기간 중에도 “안 선수는 오는 10월 열리는 선발전에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양궁에선 이게 당연한 일이다.

그 과정의 핵심은 대표선발전을 본게임처럼 치르는 거다. 미국과 유럽의 양궁은 선수층이 두텁지 않아 예측 가능한 선수들이 대표가 된다. 하지만 한국은 워낙 강자가 많아 매번 새 얼굴이 대표가 될 때가 많다.

때문에 국제대회 때마다 신인이 낯선 환경, 새로운 경험을 하다보니 좋은 성적을 못 올릴 때가 있었다. ‘경험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대표 선발전의 횟수와 기간을 늘렸다. 또 매번 선발전을 △기본기 △체력 △토너먼트 능력 △강풍 등 변수를 달리 했다. 그 경기 방식 별로 배점을 다 다르게 했다. 여기에 국제대회 성적도 포함시켰다. 모든 걸 실력, 능력 기준으로 뽑는다. 다각도에서 능력을 평가하고, 제일 잘 하는 선수를 순위대로 뽑는다. 이번 혼성 금메달 조합도 안산, 김제덕 선수 각각 여남 1위였기 때문에 만들어진 조합이다. 
 

장영술 대한양궁협회 부회장 . [사진=양궁협회 제공]

대선 때마다 대한민국은 ‘새 대표’를 뽑는다. 5년 단임, 헌법이 정한 규정 때문에 우리 대통령은 항상 신인이다. 경제, 안보, 외교 등에서 한 번도 국가 최고 자리에 있어본 적이 없는 정치인, 정상외교 무대 출전 경험이 전무(全無)한 새내기 국가대표다.

내년 대선에서 우리 유권자 모두 ‘내가 장영술이다’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위에 적은 대한민국 양궁 국가대표 선발 기준은 대통령을 뽑는 유권자의 판단 기준과 별반 다르지 않다. 5년 동안 대한민국을 잘 이끌어갈 지도자의 능력, 그 하나만 제대로 눈여겨보자. 정치에 금메달은 없다. 하지만 장영술 같은 유권자가 많아야 한다.

◆지지하라, 정의선처럼
이미 마음 속으로 내년 대선에서 누굴 뽑을지 이미 정했다면 그 후보를 지원하는 건 양궁의 ‘키다리 아저씨’ 정의선 양궁협회 회장(현대자동차그룹 회장)처럼 하면 좋겠다. 물심양면 지원은 하지만 선수 선발에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  응원하면서도 결코 '선'을 넘지 않는다.

정 회장은 페미니스트 논란으로 마음 고생이 심한 안산 선수를 세심하게 살폈다. 안산은 혼성 단체전과 여자 단체전에서 금메달 2개를 따낸 뒤 난데없는 비난 여론에 직면했다. 지난 7월 30일 개인전 결승을 몇 시간 앞둔 오전 6시 30분쯤 정 회장은 장영술 부회장에게 문자를 보내 안산에게 전화를 걸어도 좋을지 조언을 구했다. 장 부회장이 ‘괜찮을 것 같다’는 답을 보내자 정 회장은 안산에게 전화를 걸어 힘이 돼 줬다. 아마 “별 거 아니다. 신경쓰지 마라”정도였을 터.

안산은 3관왕을 달성한 뒤 기자들에게 “회장님 말씀이 도움이 됐다. 아침에 회장님 전화를 받고 가벼운 마음으로 경기장에 올 수 있었다”고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7월 31일 일본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 양궁 개인전 8강전에서 당즈준(대만)에 패한 김우진을 격려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 회장은 앞서 개인전 8강에서 탈락한 뒤 우는 강채영 선수를 안아주며 위로했고, 혼성전과 남자 단체전에서 2관왕을 달성한 뒤 개인전 32강에서 김제덕 선수에게는 “이제는 양궁뿐 아니라 영어 공부도 좀 하자”고 등을 두드려줬다고 한다.

무엇보다 정 회장은 경기 내내 에어컨이 마련된 VIP 라운지를 마다하고 뙤약볕 아래 관중석에서 현장 응원을 펼쳤다.

만약 당신이 내년 대선에서 누군가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유권자라면 정의선 회장이 양궁선수들을 응원한 것과 같이 하라. 어떤 후보를 당선시키고 싶다면 독이 될 수 있는 지지는 삼가야 한다. 어두운 골방에서 댓글만 열심히 다는 ‘사이버 전사’는 결국 메달에 방해가 될 뿐이다.

◆야구와 축구…대선은 증명하는 무대
유감스럽게도 이번 올림픽 야구는 양궁처럼 선수를 뽑지 않았다. 국가대표로 뽑힌 일부 선수가 코로나19 확진자들과 호텔 방에서 술을 마시다 발각됐고, 올림픽 대표에서 제외됐다. 특히 거듭된 국제대회에선 초라한 성적을 기록한 ‘국내용 간판 선수’들을 감독 찬스로 뽑았다. 미국 메이저리그에 오르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는 실력파 해외 선수는 아예 대상에도 오르지 않았다. 실력이 아닌 이름값, 일부 협회 실세들의 입김으로 국대가 된 선수들이 있었다. 파벌과 학연, 팀연이라는 불공정 선발의 폐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올림픽 축구는 지난 2014년 월드컵 참패와 별 차이가 없다.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 우리는 벨기에에 0대1로 져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홍명보 당시 축구대표팀 감독은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우리 선수들이 이번 월드컵을 통해 좋은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홍 감독과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이영표 KBS 해설위원의 비판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월드컵에 경험을 쌓으러 나오는 팀은 없다. 월드컵은 증명하는 자리다. 체력적인 준비를 못한 실패다. 보여줘야 하는 무대에서 증명하지 못했다”

이번 올림픽 축구는 어땠나. 미안하지만 ‘김학범호’는 또 경험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예선전 대승에 취해 강팀과의 ‘단두대 매치’(지면 탈락하는 경기)에서 참패했다. 우리는 예선 마지막 2경기를 큰 점수 차(루마니아 4:0, 온두라스 6:0)로 이겼다. 하지만 정작 8강 토너먼트 첫 경기에서 크게 패해(멕시코 3:6) 짐을 쌌다. 예선 대승이 준 자만, 방심이 패인이었다.
 

7월31일 멕시코전 실점 장면. [사진=연합뉴스]

김학범 감독 본인도 이를 인정했다. “수비적이 아니고 충분히 맞받아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경기를 준비했다. 6골을 내줬는데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서. 일대일 능력이 뛰어난 멕시코를 대비하지 못하고 공격 일변도 전술로 나선 게 6골 실점, ‘실감 나지 않는 패배’의 이유다.

대선 주자가 극렬 지지층에 눈이 멀어 공격 일변도, 특히 네거티브 공세에만 나선다면 백전백패 가능성이 높다. 실력 있는 후보라면, 그를 증명하는 무대인 대선에 임하는 선수라면, 모름지기 공격과 수비에서 균형을 맞추는 실리 축구, 이기는 게임을 해야 한다.

내년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오로지 국정 능력을 기준으로 뽑아야 하고, 대선 주자들은 그 준비한 실력을 잘 보여줘야 한다. 이제부터 능력을 기르고 준비를 하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대통령 선거라는 무대는 경험하는 자리가 아닌 증명하는 자리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 중 제대로 된 준비도, 실력도 없이 지지율에 취해 대통령을 경험하는 자리로 여기는 사람은 반드시 걸러져야 한다. 월드컵에서는 예선 탈락이지만, 대한민국으로선 국가 폭망이다.

2021 올림픽의 양궁을 본보기로, 야구와 축구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2022 대선을 대한민국 1호 국가대표를 뽑는 축제로 치르자.

3일 체조 평균대에서 동메달을 딴 시몬 바일스. [사진=연합뉴스]

P.S 접어라 바일스처럼
도쿄 올림픽 초반 미국 팬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4관왕 ‘체조 여왕’ 시몬 바일스가 스스로 기권했기 때문이다. 그는 리우 대회 단체전과 개인종합, 도마, 마루운동에서 금메달을 따냈고 평균대 동메달을 차지했다. 도쿄에서도 바일스가 4관왕, 체조 메달을 쓸어 담으며 '전설'이 될 거란 기대가 컸다.

하지만 바일스는 지난달 27일 단체전에서 기권했다. 이후 개인종합, 도마, 이단평행봉, 마루운동 4개 종목에도 출전을 포기했다. 바일스는 갑자기 찾아온 트위스티(체조 선수가 공중에 떠 있을 때 천장과 바닥을 구분 못해 자신의 몸을 제어하지 못하는 현상)와 ‘멘탈 붕괴’를 호소했다. 그는 자신의 건강을 먼저 지키겠다고 선언하며 5년 동안 준비한 올림픽을 스스로 접었다. 스스로 뛸 준비가 안 됐다고 판단해 기권한 것이다. 바일스의 고뇌에 찬 결단에 많은 이들이 위로와 격려를 보냈다. 포기하는 위대한 용기에 찬사가 쏟아졌다.

대선에 출마한 무수히 많은 후보들도 보고 배웠으면 좋겠다. “나는 준비가 부족하다, 포기하겠다”는 위대한 결단을 내린다면 반대자들도 그를 다시 볼듯하다.

지난 3일 바일스는 마침내 평균대에 출전해 ‘의미있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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