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춘 칼럼] 바이든의 '디지털稅 물타기' 속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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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입력 2021-08-0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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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세계의 시각이 곱지 않다. 돈은 벌어가면서 세금은 별로 내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은 전통적인 기업과 달리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시장에 별도의 사업장을 설치할 필요가 없다. 사업장이 없어도 국경을 넘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술적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국제 조세원칙에 의하면 고정사업장이 없는 국가에는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꿩 먹고 알 먹고다. 사정이 이러하니 미국기업들이 눈에 곱게 비칠 리 만무하다. 누가 봐도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 세금을 걷고 싶다. 그래서일까? EU 집행위원회는 2018년에 EU 차원의 디지털세 입법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합의에는 실패했다. 그러다 2019년부터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헝가리, 영국 등이 독자적으로 디지털 서비스세를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인도, 터키도 가세하였다. 미국과의 마찰은 불가피하였다. 미국은 무역법 301조에 따라 디지털 서비스세가 미국기업에 불공정한 조치라고 판단하고 25%의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런데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서 반전이 시작되었다. 바이든 정부는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행위 방지를 위한 국제협상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국제협상은 두 가지 축으로 진행되어 왔다. 첫째는 앞서 언급된 디지털기업에 대한 과세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기업은 고정사업장을 가지지 않은 국가에서 매출이 발생해도 그 국가에 세금을 낼 필요가 없고 그 국가는 과세권을 가지지 못한다는 현재의 조세원칙을 수정, 매출이 발생한 국가에도 과세권을 부여하도록 하는 새로운 원칙에 미국이 동의한 것이다. 이는 커다란 진전이다. 다만 미국은 앞에서 소개한 개별국가의 독자적 디지털 서비스세의 폐지를 주장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미국은 과세대상기업의 범위를 교묘히 수정하였다. 그동안의 협상에서는 과세대상이 디지털서비스 기업이면서 소비자대상 사업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미국은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업종 구분이나 사업유형의 구분이 없이 연간 글로벌 매출액이 200억 유로를 넘으면서 이익률이 10%를 초과하는 거대 다국적기업을 모두 과세대상에 포함시켰다. 미국은 자국의 디지털 빅테크 기업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거대 다국적기업도 끌어들였다. 물타기 아닌가? 예외 업종도 있다. 채굴업과 금융이다. 거대 에너지 및 금융 다국적기업은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 기업들이 많다. 여기에 소비자대상사업이 아닌 B2B 사업까지 포함되니, 반도체를 수출하는 우리기업도 엉뚱하게 세금을 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미국이 강하게 밀어붙이니 독자적으로 디지털서비스세를 거두려 했던 유럽 국가들도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으로 보인다. 어느 쪽이 더 많은 세수를 거둘 것인지는 계산을 해 봐야 하겠지만 미국이 제안한 방식에 의한 세수증가효과는 일단 대상기업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극적인 효과를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둘째는 과도한 법인세율 인하경쟁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1990년대 이후 30년간 세계화의 물결과 더불어 각국은 다국적기업 투자 유인수단으로 세율인하 경쟁을 벌여왔다. 그런데 미국은 이러한 세율인하 경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글로벌 최저한세율을 제안했다. 미국은 처음에는 21%의 최저한세율을 제안했지만 최종적으로는 15%의 세율로 합의되었다. 미국이 이러한 제안을 한 가장 큰 이유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는 향후 거액의 인프라 투자를 계획하고 있고 이에는 막대한 재정이 소요된다. 더욱이 미국은 중국과 첨단분야에서 치열한 기술경쟁을 벌이고 있고 중국의존도가 높은 핵심산업의 글로벌 공급망도 과감하게 재편해 나갈 의지를 보였다. 글로벌 최저한세율은 미국의 이런 전략에 부합한다. 미국기업이 세율이 낮은 나라로 나갈 유인을 제거하며 오히려 미국으로 복귀할 유인을 높일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다국적기업 투자를  유치하는 데도 일부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다. 글로벌 최저한세율이 다국적기업의 투자행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보다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세율인하 경쟁으로 인한 세수 감소와 투자유출을 막는 데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조세의 새로운 규범 도입을 둘러싼 공방은 올해 안에 어느 정도 합의에 이를 것으로 보이며, 이 규범을 각국이 제도화하고 실행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몇 년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이번 협상에서는 고정사업장이 없더라도 과세를 할 수 있도록 조세원칙을 개선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진전을 보았다. 또한 기후위기와 팬데믹 등 글로벌 도전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재정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최저한세율의 설정은 세수확보 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그런데 이러한 이익이 모든 국가에 공평하게 배분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미국은 자국의 디지털기업을 타깃으로 여러 나라에서 우후죽순처럼 도입되고 있던 독자적인 디지털 서비스세를 이번 협상에서 한방에 철폐시켰다. 물론 모든 나라들이 이를 잘 실행할지 여부는 좀 더 두고 볼 필요가 있지만 말이다. 미국은 자국의 디지털 서비스 기업 이외에도 타 업종의 거대 고수익 다국적기업도 새로운 과세대상에 포함시켰다. 졸지에 우리나라 대표기업 몇 개도 과세대상이 되었다. 글로벌 최저한세율을 설정하여 미국으로의 리쇼어링과 다국적기업의 대미 투자가 늘어날 가능성을 높였다. 미국정부의 세수증대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 이번 합의의 최대 수혜자는 다름 아닌 미국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정성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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