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원 칼럼] 네거티브 굿판을 치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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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형 정치사회부 부장
입력 2021-07-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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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주경제 대선 자문단]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사진=채 교수 제공]


20대 대선을 8개월여 앞두고 여야 정치권은 대권후보자들의 대권 도전 선언 및 후보등록과 함께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했다. 유력한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이재명 경기지사는 각각 6월 29일과 7월 1일 잇따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대선 링 위에 여야 유력주자가 동시에 오른 만큼 이들에 대한 검증과 견제도 본격화됐다. 두 사람의 독주를 막기 위한 여야 다른 주자들의 치열한 수 싸움과 혹독한 내외부 견제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초장부터 네거티브 캠페인 그리고 흑색선전으로 번역되는 마타도어(Matador)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이런 비방과 중상모략은 유권자들이 후보들과 정책·비전을 놓고 공론장을 펼치면서 국민의 대표를 뽑는, ‘대의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 본래의 의미를 퇴색시킨다는 점에서 공정과 정의로운 수단과는 거리가 있다.

만약 정치권이 무조건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승리지상주의’에 빠져 네거티브와 흑색선전을 동원한다면, 정치권 전체에 대한 유권자의 불신이 부메랑으로 돌아가는 것은 너무나 뻔하다. 유권자의 공감과 참여 없이 정치권에서 자기들끼리의 리그전으로 선거가 흘러간다면, 불공정에 민감한 청년세대와 중도층의 외면과 이탈은 불가피하다.

◆네거티브 매몰 땐 MZ세대·청년층 이탈

많은 전문가들은 지난 4·7 지방선거가 ‘기승전 네거티브’ 선거로 끝났다고 평가했다. 본선에 들어가기 전부터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흑색선전, 나쁜 이미지 씌우기 선거로 난타전을 벌였다. 그런 최악의 네거티브 선거로 양당이 서로에게 제기한 고소·고발 건수만도 14건이며 시민단체까지 합하면 20건에 달한다. 너무 창피한 일이다.

20대 대선 투표일(2022년 3월 9일)이 다가올수록 네거티브와 마타도어의 흐름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이런 흐름의 사례는 무엇이고 왜 발생하는지 진단해보고,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에 대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현재 네거티브의 대표적인 사례는 윤석열과 이재명에 대한 공격이다. 그들은 도덕성 검증과정에서 경쟁자들로부터 공통적으로 이른바 ‘X파일’과 ‘논문부정’ 등으로 혹독한 검증 공격을 받았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유례없는 네거티브와 마타도어에 시달리면서 고통받고 있다며 자제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부친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 빈소를 찾아 조문을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우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6월 29일 대선출마 선언을 마친 뒤 X파일 문건에 대해 묻는 취재진에게 한마디로 ‘마타도어’라고 답했다. 그는 “국민 앞에 공직자, 그것도 선출직 공직자로 나서는 사람은 능력과 도덕성에 대해서 무제한 검증을 받아야 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밝힌 뒤 “그러나 그런 검증은 합당한 근거와 팩트에 기초해서 이뤄지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이것이 출처 불명의, 아무 근거 없는 일반적인 마타도어를 시중에 유포하는 것으로 되면 국민들께서 판단하실 것으로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윤 전 총장은 지난 7월 9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X파일’에서 거론된 쥴리 의혹의 당사자인 부인 김건희씨에 대해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얘기인가”라며 “집사람에 대한 이런저런 주장도 이미 허위사실 명예훼손으로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이 난 것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6월 23일 이 지사가 ‘윤석열 X파일’을 언급한 것에 대해 김부선씨는 페이스북에 “내게도 이재명과 그 일가의 X파일이 있다”며 경고를 보내며, 이 지사 신체의 은밀한 부분의 점에 대한 재검사를 법원에 신청함으로써 의혹의 재점화를 시도하였다.

그리고 최근 민주당 후보자 토론에서 여배우 스캔들 의혹이 다시 제기되자 이 지사는 “바지를 다시 내릴까요”라고 응수한 것이 논란이 돼 ‘토론은 없고 바지만 남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지사는 이미 2018년 5월 30일 이 문제와 관련해서 “네거티브가 도를 넘고 있다. 근거 없는 흑색선전과 마타도어, 아니면 말고식 인신공격이 정책선거를 가리고 도민들의 합리적 판단을 흐리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논문 부정’ 의혹에 대한 견제와 공격도 혹독하다. 윤 전 총장은 부인 김씨의 논문 부정 의혹에 대한 여당 측 공세에 “김씨 결혼 전 논문 문제는 해당 대학교의 조사라는 정해진 절차를 통해 규명되고 그 결과에 따를 문제”라고 하면서 “여당 대선 후보들 본인의 논문 표절에 대해 조치를 취하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이런 윤 전총장의 공세에 논문 표절 의혹이 있는 정세균·이재명·추미애 후보는 켕길 수밖에 없다.

이 지사는 지난 7월 10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건희씨를 둘러싼 논란이 ‘혜경궁 김씨’ 사건과 본인의 ‘논문 표절’ 사건으로 불똥이 튀는 걸 의식하였는지, “부인의 결혼 전 문제나 이런 것까지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문제 삼는 것이 어떨지 모르겠다”며 “가급적이면 검증은 후보자 본인의 문제로 제한해야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흑색선전 공작, 민주정치 죽이는 암

흑색선전의 파괴력은 실로 무섭다. 흑색선전의 대표적인 피해사례는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이다. 2012년 12월 16일 이 전 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네거티브 공작과 흑색선전은 민주정치를 죽이는 정치적 암으로 철저히 배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02년 대선 당시 ‘김대업 사건’을 제기한 민주통합당의 ‘3대 의혹’ 사건에 휘말려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에게 57만여표, 불과 2.4% 포인트 차이로 패했다”고 밝혔다. 그는 “선거 결과에 영향을 받은 3대 의혹은 선거가 끝나고 난 뒤 모두 사실무근으로 판명됐으나 이미 선거는 끝난 뒤였다. 운명이 바뀐 것”이라고 흑색선전의 피해자가 됐음을 밝힌 바 있다.

그리고 네거티브 공격이 부메랑이 돼 자신에게 치명상을 입히게 되는 자승자박의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예는 이정희 통진당 후보다. 그는 2012년 대통령 후보 TV토론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내가 출마한 것은 당신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라고 한 막말 한마디로 치명상을 입고 공공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됐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3일 오후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이회창·이정희 사례는 마타도어와 네거티브가 얼마나 민주주의와 공공성을 파괴하는 해악이자 공공의 적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정치권이 네거티브를 중단하지 않는 이유는 왜일까. 그 핵심은 유권자들이 좋은 후보를 선택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에 유권자들은 좋은 후보의 장점을 보고 선택하기보다는 나쁜 후보의 단점을 보면서 덜 나쁜 후보를 선택하려고 한다. 유권자들은 네거티브 공방을 보면서 더 나쁜 후보와 덜 나쁜 후보의 기준을 가린다.

그렇다면 유권자들은 왜 좋은 후보를 선택하기가 어려울까. 이는 정치권이 선거를 정책과 공약에 대한 국민과 대표자 간의 대화와 숙의 그리고 신뢰와 합의 형성 과정으로 보지 않고, 그런 여건과 분위기를 만드는 데 소홀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즉, 정치권이 정책과 공약 그리고 국정운영에 대해 유권자와 충분히 공감하고 소통하지 않은 채 일방적인 공약과 정책을 선전선동하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이기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선거 승리지상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선거를 어떻게 봐야 할까. 선거를 ‘평가와 소통을 통한 통합의 과정’으로 보면 좋다. 우선 선거는 평가의 장이다. 열심히 잘한 후보자에게는 승리와 공직을 주고, 그렇지 않은 후보자에게는 패배를 줘서 분발을 촉구한다. 또한 선거는 공감과 소통, 통합의 장이기도 하다. 선거과정에서 유권자와 대표자 간 불통과 불신을 해소하고 서로의 관심과 요구사항에 대해 공감하고 소통하면서 신뢰를 얻는 통합의 과정이다.

​◆숙의민주주의 통해 '정책경쟁 장' 열자

학술적으로 숙의민주주의 관점에서 보는 선거와 선거 후 국정과정은 숙의투표(deliberative voting)를 매개로 양쪽으로 선순환하면서 환류(feed back)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선거는 단순히 후보자가 일방적으로 공약하고 유권자를 동원하여 정권을 잡고, 자기가 공약한 대로 국정을 독단하는 과정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숙의민주주의 관점에서 보는 선거과정은 투표하기 이전에 다음 정권의 국정운영과 주요 정책에 대해 유권자와 소통하고 조정하는 대화와 숙의의 과정이다. 쟁점이 되는 주요정책에 대해 국민의 눈높이와 이익 관점에서 숙의를 통해 이익과 선호 및 정체성을 변형하고 조정하여 합의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숙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 관점에서 어떤 후보가 좋은 후보인지는 분명하다. 유권자의 삶의 처지에 공감하며 유권자의 눈높이에 다가서서 대화와 토론을 하고 숙의하면서 서로 신뢰를 형성하는 후보가 좋은 후보다. 유권자는 후보자에게 어떻게 말하고 지지를 선택해야 할까.

자신의 고통과 처지를 말하고, 이것을 개선하겠다는 후보를 선택하는 게 좋다. 청년들은 비정규직 임금차별과 좋은 일자리의 부족으로 취직도 못하고, 연애도 포기하고,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이른바 N포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많은 여성들이 가정과 직장에서 성차별, 성희롱, 성폭력으로 고통받고 있다.

플라톤은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 했다. 이 말은 옳다. 그렇다면 정치권의 네거티브를 견제해야 할 언론과 시민단체의 역할은 무엇일까. 당연한 말씀이지만 ‘정책선거의 장’을 열어야 한다는 점이다. 언론과 시민단체가 정책과 공약에 대한 토론의 장을 만들고 유권자들이 대화와 숙의의 장에 참여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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