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세계가 인정할, 센 '디지털 주권국'이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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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1-07-05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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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




‘국민국가’가 돌아왔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강풍에 뒷전으로 밀려난 것처럼 보였던 ‘국가’가 신자유주의의 퇴조, 디지털 혁명의 가속화와 함께 이중적 차원에서 복권되고 있다. 한편으로 시장 또는 경제에서 퇴출 요구를 받던 ‘국가’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최종 대부자’로서의 면모를 확실하게 보여주었고 2020년 팬데믹 상황에서는 유일한 구원자로 등장했다. 미국은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갈 핵심소재인 반도체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 ‘미국반도체법(Chips for America Act)’을 제정하고 한국과 대만 기업에게 미국 내에서 생산하도록 ‘팔을 비트는’ 산업정책을 노골화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트럼프의 야만적 세계 통치는 멕시코 국경장벽 설치로 상징되는 ‘국민국가’의 복귀를 요란하게 선언한 바 있다. 코로나19의 발원 책임을 빌미로 한 미국의 중국 견제와 포위는 급기야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한국의 줄타기를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금융자본을 기반으로 한 미국의 글로벌 경제패권이 중국의 일대일로에 더하여 디지털 제조업은 물론 디지털 플랫폼·디지털 금융 등에서 강한 도전을 받으면서,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노골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디지털 롤백’을 ‘민주주의 가치동맹’의 이름으로 가속화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5월 말 방미는 미국의 디지털 패권 강화에 한국경제가 기여할 것을 약속하는 자리가 되었다. 미국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적인 소재인 반도체와 배터리 공급망의 취약성으로 인해 자칫 발생할 수 있는 디지털 주권 제한의 우려를 일부 불식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은 코로나19 국면에서 주권문제로 급부상한 백신의 원천기술 확보와 글로벌 생산기지로서의 위상 확립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다만 한국 기업들의 구체적인 400억 달러 투자 약속은 정상회담에서 한국정부의 보증을 받은 데 반해 미국 기업의 백신 협력은 미국 정부의 보증 없이 이루어지는 모양새가 되었다. 한국도 반도체와 배터리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세기적 행운’ 덕분에 디지털 주권을 강화하는 ‘전략적 플레이어’가 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지난 6월 초 G7 정상회의에서는 법인세 최저세율을 15%로 하는 데 합의가 이루어졌다. 아일랜드 등 조세덤핑을 주요 국가경쟁력 요인으로 선택한 나라를 제외하고 이의제기는 없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미 1998년에 채택한 '조세경쟁의 폐해 – 글로벌 이슈의 등장' 보고서에서 제살 깎아먹기 경쟁은 모두에게 손해가 된다는 단순한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아일랜드의 국가부도위기 경험은 조세덤핑만으로는 결코 국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음을 실제로 보여주었다. 한국에게는, 세율보다는 기업이 소재한 나라가 아니라 매출이 발생한 나라에서 과세가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합의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한국은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 등 글로벌 플랫폼 기업에 대해 굴욕적인 편의주의를 지양하고 조세주권을 명확하게 확립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주권의 핵심은 기술주권이다. 반도체 생산 세계 1위의 위상은 디지털 주권 역량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반도체장비 국산화율이 20%에 불과하고 반도체 소재에서의 대일 의존 탈피는 지난 2년 동안의 성공적인 ‘소부장 내재화’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시장에서의 존재감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승자독식’과 ‘고착효과’가 특히 크기 때문에 선도국가의 장점이 그 어느 기술보다 뛰어나다. 세계화 시대의 국제분업구조를 특징지웠던 ‘글로벌 소싱’은 개념조차 사라졌다. 팬데믹과 미·중 패권경쟁의 가열과 함께 기업과 국가의 공급망 ‘내재화’는 결국 주권 개념과 결부되었다. 중국은 미국 플랫폼들에 대해 주권 개념을 적용하면서 영업활동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시장을 포기하는 글로벌 기업은 생겨나지 않았다. 한국에게는 디지털 플랫폼의 부재로 디지털 주권 제한의 위험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유럽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도 차선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정보보호를 통해 개인의 ‘데이터 주권’을 보강하는 것도 궁극적으로 국가 차원의 디지털 주권을 강화하는 길이다. 당장의 기업활동을 위해 개인의 데이터 주권을 완화하는 것은 지속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기업의 경쟁력을 국내시장으로 한정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 카카오의 인공지능 채팅로봇 ‘이루다’의 실패사례는 한국의 허술한 개인정보보호가 자초한 참사이다.

디지털 미디어의 활용, 개인정보 보호를 포함하는 디지털 보안, 디지털 플랫폼의 안정적 접근 등에서 한국이 자기결정권을 강화하려는 노력은 비록 단기적으로는 적지 않은 비용을 수반할지라도 장기적으로는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디지털 안전성을 보장해 주므로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자기역량의 강화와 함께 상호존중의 대전제 하에서 협력관계를 다변화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디지털 국경’을 접하고 있는 모든 나라들과 국익에 부합되는 포괄적인 관계 설정에 모든 지혜를 모을 때이다.
 
 
김호균 필자 주요 약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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