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對中 '굽신외교'와 對韓 '호통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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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경희대 교수
입력 2021-06-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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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경희대 교수 ]


[주재우의 프리즘] 2021년 6월 9일은 대한민국 대중외교사에서 국치일로 기억될 것이다.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두고 중국 외교부장이 전례없이 모욕적이고 내정간섭식 발언으로 우리를 압박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를 지난 31년 동안 공부하면서 수많은 중국 외교 문헌과 기록물을 읽었지만 중국이 상대 국가에 이런 수준의 모욕을 준 사례를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지난 5월 21일 발표된 한·미정상회담의 공동성명에는 사상 처음으로 대만문제가 언급이 되었다. 이에 우리 여론은 적지 않은 우려를 쏟아냈다. 중국의 ‘핵심이익’을 건드렸다에서부터 대만문제 언급의 연유가 무엇인지, 중국의 보복제재 가능성 등, 나라와 국익을 진심으로 염려하는 충정어린 비판의 목소리였다.

정부는 이에 즉답을 피하고 여론과 국민의 우려를 진화시키기에 급급했다. 대통령에서부터 외교장관, 청와대까지 중국과 소통이 잘 되고 있으니 걱정마라는 식의 천편일률적인 발언들을 쏟아냈다. 대만문제와 관련해서는 ‘원칙적인 차원’에서 언급이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중국의 보복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정부의 입장에 동조하는 이들도 중국의 ‘미온적인 반응’을 소개하며 이들의 진화에 힘을 실어줬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중국 외교부가 홈페이지에 지난 9일 한·중 외교장관의 통화내용을 공개하면서 정부의 해명이 허구였음이 드러났다. 국민을 호도하기 위함도 밝혀졌다. 우리 국민은 이렇게 대내외적으로 모욕을 당한 것이다. 중국 측이 통화내용을 이같이 기습적으로 공개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20년 12월 한·중 외교장관회담 결과로 중국은 외교부 홈페이지에 ‘10가지 공동인식’을 공개했다. 우리 측에서는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중국이 이런 기습적인 행위를 벌이는 이유를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통화내용이 공개된 내용을 보면 중국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보인 한국의 외교적 행보에 불만이 커 보인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 보면 중국의 언사는 가히 내정간섭이라고 할 정도로 도가 지나쳤다.

첫째, 중국은 우리의 늦장 보고에 불만을 표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에서 지난 23일에 귀국했는데 우리 외교장관의 연락이 근 20여일 만에 이뤄진 데에 대해 잘못을 추궁한 것이다. 그의 화두가 훈계조로 시작했다. 그는 “근래에 세계와 지역 정세 변화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어 한·중이 전략적 협력 동반자로서 앞으로 적시에 소통하는 것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지적했다. 이는 세상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데 제때 제때 신속하게 보고하라는 뜻이었다.

둘째,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인태전략)’에 대한 우리의 협력 강화 입장을 노골적으로 비판한 것이었다. 그는 인태전략이 냉전적 사고가 충만하기에 집단적 대결 구도를 추동한다고 인태전략 자체를 부정했다. 그래서 이는 지역 평화의 안정적 발전에 이롭지 않기 때문에 중국이 이에 단호하게 반대하는 이유를 훈계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하고, 올바른 입장을 견지하며 정치적 공감대를 지키고 잘못된 장단에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혼을 냈다. 이는 우리 언론의 번역이었다. 그러나 중국어의 의미와 뉘앙스는 이보다 더 혹독했다.

우선 “옳고 그름을 가려야”하는 문장의 번역에서 중국의 불만 수준을 제대로 읽어내기가 어렵다. 왕이의 중국어 발언을 직역하면 “옳고 그름, 곱고 곧음”, 즉 시시비비와 왜곡과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라고 질타한 것이었다. 즉, 우리가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할 뿐 아니라 왜곡과 사실을 분간하지 못하면서 도리에 맞는 것과 어긋나는 것을 판단하지 못한다는 질책성 발언이었다. 즉, 중국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데 회초리를 들은 것이다.

셋째, 우리에 대한 불신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상기한 왕이의 발언을 우리는 “정치적 공감대”와 “잘못된 장단에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번역했다. 우리의 번역문이 제시한 “정치적 공감대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보다는 “공통의 정치적 인식(政治共識)”을 “성실하게 지켜야(信守)”함이 더 정확하다. 즉, 중국과 일치된 정치적 인식을 가졌는데 이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것에 불만을 토로한 것이다. 우리와 중국의 ‘공통의 정치적 인식’은 지금까지 대통령의 발언에서 이 뜻을 유추할 수 있다. 중국이 주장하는 다자주의, 자유무역과 인류운명공동체에 대해 대통령이 인식과 입장을 같이함을 밝힌 것을 지키라는 의미였다.

이어서 그는 우리가 “잘못된 장단에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이는 단순히 미국의 장단에 춤을 추지 말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이 같은 주문은 어제 오늘의 것이 아니다. 2019년에 중국은 이를 두 번의 기회를 통해 경고했다. 6월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은 이미 문 대통령에게, 12월 왕이는 우리 외교장관의 면전에서 지적했다. 그는 “중·한 협력이 상호이익으로 ‘윈-윈’하는 것이기에 외부 압력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이미 경고했다(본지 2019년 12월 13일 “한중관계 부풀리기 이제 그만” 참조). 따라서 왕이의 발언은 미국에 경사되고 있는 문 대통령의 입장에 대한 중국의 불만을 재인용한 것이다. 이에 대통령과 정부는 지금까지 함구하며 어떠한 반응도 보이질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이 한국에 은혜를 베푸는 식의 발언에 우리는 토를 달지도 못했다. 그는 중·한 간의 “패스트 트랙”을 잘 활용해 필수 인력의 왕래를 보장하자고 강조했다. 이 제도는 원칙적으로 2020년 6월부터 한·중 양국이 필수적인 경제활동과 기업인의 왕래를 보장하기 위해 시행됐다. 이에 우리 정부와 언론이 중국의 호의를 대대적으로 선전한 바 있었다. 그러나 불과 5개월 뒤인 11월 11일 중국은 일방적으로 이를 중단시켜버렸다.

이에 우리 외교부는 ‘전면적인 중단’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결과는 완전한 중단이다. 얼마 뒤 우리 국민의 중국 입국 조건을 강화하는 조치가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12월 1일부터 중국 입국을 위해서는 사전 코로나 검사결과뿐 아니라 유전자증폭(PCR) 검사와 혈청 항체 검사를 추가로 제출해야 한다. 이에 우리 정부 당국은 항의는커녕 해명조차 요구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동일한 조건을 중국 입국자에게 적용하지도 못하고 있다(본지 2020년 12월 10일자 “왕이 방한의 교훈: 냉철한 대중(對中) 외교가 필요하다” 참조). 그럼에도 우리 외교장관은 또다시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함구하며 왕이의 훈계를 받드는 양상을 보였다.

중국이 통화내용을 밝히지 않았으면 우리는 한·중관계를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착각할 뻔했다. 정부가 이를 덮어버리는 데 전념한 끝에 국민은 농단당한 기분이다. 대통령에서부터 외교부 장관, 외교부 대변인과 청와대 정책실장 모두가 중국과 현재 소통도 잘 되고 있고 한·미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에 대만을 언급한 것도 문제가 될 턱이 없다고 하니 말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전화 한 통화로 거짓임이 밝혀졌다.

우선 정부는 중국과의 소통문제에 관해 국민을 기만했음이 드러났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5월 25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 측과 계속 소통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같은 날 언론보도에 따르면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중국 측과 필요한 소통을 해오고 있으며 중국과는 평소에도 많은 소통의 기회를 가져오고 있다며 대사관 차원에서도 상시적인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자랑했다.

다음 날 여야 5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은 대변인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는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놓고 중국과 소통하고 있는” 상황임을 재강조했다. 그러면서 시진핑의 답방에 대한 미련을 다시 밝혔다. 그는 “코로나 때문에 연기돼 온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한도 코로나가 안정되면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중국의 공개로 한·중 양국 간에 소통되지 않고 있음이 밝혀졌다.

둘째, 외교부의 안일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보도에 따르면 외교부의 한 당국자는 미국 전략에 편향되는 것을 중국이 경고한 것이 우리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그는 중국이 한국을 특정한 것이 아니라 미·중 현안에 대한 중국의 기존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왕이가 우리보고 상황 판단을 잘하라는 대목에서 이 또한 거짓으로 탄로 났다.

셋째, 대만문제의 심각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중국과 우리 국민을 농락한 것이다. 5월 25일 정의용 외교장관은 3개 부처 합동브리핑에서 대만문제의 언급이 원론적이고 원칙적인 내용이라며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2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자리에서도 “중국 측에 입장을 설명했고, 우리 입장을 충분하게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5일에 대만문제로 ‘불장난 하지 말 것’이라고 엄중 경고하면서 그의 짐작이 틀린 것이 드러났다.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5월 25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대만문제가 공동성명에 포함된 데 대한 중국의 예상 반응을 밝혔다. 즉, 사드 사태 때처럼 경제보복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관한 질문이었다. 이에 그는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며 “너무 앞서나간 예측이다”고 일축했다.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런 중국의 역풍을 사전에 감지라도 한 듯 한 여당 국회의원은 소셜미디어(SNS)에 “문재인 대통령 귀국길에 주요 수행원 중 한 사람은 중국에 들러 회담과 관련해 설명해주면 좋겠다”라고 썼다가 삭제한 것으로 23일 나타났다. 여당 의원의 중국 사대주의 면모가 드러나면서 국민의 자존심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 대목이었다.

중국의 보복성 제재는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이번 한·미정상회담 이후 우리가 반중전선에 동참하는 행동이 감지되면 중국은 제재로 응대할 것이다. 제재의 종류는 다양하다. 중국으로부터 직접 오는 피상적인 제재 이외에 중국 내에서의 제재도 가능하다. 그런데도 우리 외교당국은 중국에 이끌려 가면 이를 회피할 수 있다고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중국이 우리 외교와 주권을 농단하고 있음에도 우리 외교장관은 국가안보실장 때부터 이런 악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지난 6월 9일에 보인 비외교적이고 직설적이고 훈계조의 언사는 한중외교사에서 국치일로 길이길이 기억될 것이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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