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같은 듯 다르다..바이든과 시진핑의 다자주의

주재우 경희대 교수 입력 : 2021-05-31 06:02
 

[주재우 경희대 교수 ]


[주재우의 프리즘] 작금의 세계는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 시대로 묘사된다. 이 경쟁은 2017년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선언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이어진 양국 간 공방에서 나오는 자유무역과 다자주의에 대한 외교적 레토릭(수사)을 보면 그들이 무엇을 위해, 왜 싸우는지 명확하지 않다. 미·중 두 나라 모두가 자유무역과 다자주의를 주장하는데, 우리가 이에 모두 동조하는 입장이 무슨 문제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양국이 사용하는 다자주의 레토릭에 담긴 함의가 다르다는 점이다. 우리 정부는 이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중이 모두 자유무역과 다자주의를 주장한다. 미국은 특히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다자주의로의 복귀를 선언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 중심의 자유 국제질서의 수호가 다자주의 근간을 훼손했기 때문에 이의 정정이 시급했다. 중국은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로 빚어진 무역 시비의 대항마로 자유무역과 다자주의를 내세웠다. 

미·중 양국이 오늘날 서로 주장하는 다자주의의 의미가 각기 다르고 이의 실천 과정에서 채택된 전략 또한 각기 다르다. 왜냐면 이를 통해 각기 추구하는 전략적 목표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간파하지 못한 우리는 중국과의 회담 자리에서 중국의 다자주의 주장에 동의하는 입장을 보였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으로  다자주의는 미 외교 의제의 우선순위에 다시 올라왔다. 그는 유세기간 때부터 전 행정부가 다자주의와 다자협의체를 무시한 정책을 폐기한다는 결의를 내비쳤다. 이의 일환으로 파리기후협약에 복귀하고, 이란 핵합의를 재생시키고, 세계무역기구(WTO)와 세계보건기구(WHO) 등의 다자기구를 더 적극 활용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와 동시에 지역전략 차원에서 미국의 전략이익과 동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다자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중국 역시 미국과 무역 분쟁과 갈등을 겪으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대응하는 방식이 미국 중심의 이기주의적이고 독선적인 정책임을 비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또한  중국은 다자주의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수호하고 다자협력을 통해 국제분쟁과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두 나라의 주장에서 교집합이 형성된다. 다자주의와 다자협력을 공통분모로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다자주의 개념의 내용과 목적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각자가 추구하는 전략적 목표가 다르기 때문이다. 두 나라가 각기 다른 목표를 향해 다자주의를 동원하고 있다는 뜻이다.

가령, 중국의 다자주의는 비록 짧으나 나름의 역사와 독특한 특징을 가졌다. 중국의 다자주의에는 중국의 전통 특색이 강하다. 우선 미국을 배제한다. 중국이 주창한 다자협의체의 출범에 미국을 공식적으로 먼저 초청한 적이 없다. 이의 비근한 예로 상해협력기구(SCO, 1996년 출범), 보아오 포럼(2001년), 한·중·일 정상회의(2008년),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 회의(CICA, 2014년)' 정상회의와 일대일로 국제협력 고위급 포럼(2017년) 등을 들 수 있다.

둘째, 중국이 주도하는 다자주의는 주변지역이다. 중국의 다자협력의 지리적 범위가 대부분 중국 주변지역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의미다. 물론 원거리 국가와도 이를 마다하지는 않는다. 이의 가장 비근한 예로, 중국-아프리카 포럼(China-Africa Forum)이나 중국-유럽 간에 운영되는 다양한 포럼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실질적으로 다자간의 협력을 주도하는 개체는 지역 차원의 것으로, 그 이유는 중국의 전략 목표에서 볼 수 있다.

셋째, 상기한 두 개의 특징에서 보면, 중국의 전략적 목적과 의도는 주변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배척하려는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건국 이래 일관되게 추구해온 장기적인 국정 최대 목표 중 하나다. 따라서 이 목표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지역에 존재하는 기존의 미국 세력 척결이다. 다른 하나는 앞으로 중국 주변지역에 미국의 세력 확장이나 새로운 진입을 저지하겠다는 것이다.

넷째, 중국은 ‘개방(open)적이며 포용(inclusive)적이고 법적 구속력이 없는(not legally-binding) 느슨한(loose)’한 다자주의를 주장한다. 이는 미국을 배제할 수 있다는 전략적 계산에서 출발한 것이다. 미국은 특히 법적 구속력이 없는 다자주의에 의미를 두지 않는 관행을 보여 왔다.

미국은 법치주의를 견지하는 나라로서 국제기구가 법적 구속력을 갖추지 않으면 별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비록 유엔 산하기관이나 수많은 조약에 미 정부가 가입했지만 의회가 이를 비준하지 않는 이유다.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기본 조건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중국은 특히 지역다자주의를 중국의 원대한 ‘중국몽(중국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 수단으로 인지한다. 즉, 최소한 주변지역을 중심으로 중화질서의 수립을 구현하려는 목표에 발판이 될 수 있는 전략적 계산이 복선에 깔려 있다. 이 경우 ‘같은 하늘 아래 두 태양이 존재할 수 없듯이’, 미국의 존재와 영향력을 배척하는 데 지역다자주의의 전략의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 것이다.

이런 중국의 다자주의 전략에 맞서 대응하는 것이 바이든 행정부의 다자주의 핵심 내용이다. 이전까지 미국의 다자주의가 더 개방적이며 포용적이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국제기구가 되었든 지역 다자협의체가 되었든, 미국은 최대한 모든 잠재적 구성원을 포괄하는 것을 핵심으로 삼았다. 냉전이 시작되면서 설립한 유엔과 그 산하기관, 그리고 WTO에서부터 지역차원에서 추구되었던 수많은 지역개발은행, APEC 등이 이의 방증이다.

그러나 미국의 다자주의가 중국에게 배타적으로 느껴진 이유도 있다. 미국이 회원국을 받아들이는 데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인류 보편적 가치와 미국의 가치를 수용하는 것을 신청자격요건으로 제시한다. 즉, 민주주의, 자유, 인권과 시장경제 등 자유 국제질서의 가치와 이념을 수용할 용의가 있는 나라는 언제든지 환영했다. 반면 미국이 주도하지 않는 다자협의체와 다자기구에 대해서는 그 지배구조가 이런 전제조건을 충족시켰을 때 참여하는 것이 미국의 가입 원칙으로 오래 견지되어왔다.

이의 대표적인 사례가 지역개발은행들이었다. 지역 국가의 주도로 설립된 이들 은행의 지배구조가 상기한 가치와 이념을 존중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미국의 가입도 결정되었다. 이들 중 미국이 가장 늦게 가입한 지역개발은행은 아프리카개발은행으로 약 20년이 걸렸다. 라틴아메리카를 자신의 ‘후원(後園)’으로 여기지만 라틴아메리카개발은행의 가입도 10년 후에 이뤄졌다. 가장 빠르게 가입한 은행은 유럽개발은행(EBRD)이었다. 이 역시 러시아에 대한 차관 및 지원금 문제를 놓고 EU와 협상을 벌였다. 결국 미국은 은행 설립 6개월 후에 가입했다.

오늘날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이 추진하는 다자주의는 과거와 성격이 바뀌었다. 가치와 이념의 공유라는 전제조건은 같다. 문제는 이를 중국이 수용하느냐이다. 냉전 때와 같이 미국이 내세운 가치와 이념이 중국과 대척점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의 다자주의 역시 중국과 비슷한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즉, 배타적이고 비개방적인 성격을 가지는 동시에 가치와 이념의 공유가 관건이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이제 ‘누울 자리를 봐가면서 누워야’ 한다. 다시 말해, 다자주의라고 해서 다 같은 다자주의가 아니다. 오늘날 미국의 핵심 다자주의 전략 중 하나가 ‘인도-태평양’ 전략과 ‘쿼드’이다. 미·중 전략경쟁시대에서 이들 다자협의체가 중국을 겨냥해서 중국만을 배타한다는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주장하듯 중국이 자유 국제질서와 보편적 인류가치, 그리고 미국의 가치를 수용하는 입장으로 전환하면 언제든지 환영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대목에 우리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중국이 이를 수용할 의사가 없기 때문에 중국을 겨냥한 포위망으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는 현재 미·중 사이에서 다자주의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을 결정하는 데 있어 다음과 같은 전략적 사고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첫째, 우리의 자유 국제질서 수호 의지를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관건은 미국 다자주의에 대한 중국의 비판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다자주의의 근본 가치를 중국 스스로가 폄훼하고 훼손하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둘째, 진정한 다자주의는 이의 기본적인 가치와 이념을 존중하는 것이고 이에 기초하여 성립된 제도를 준수하는 것이다. 이를 이기적으로 악용하는 행위에 징벌 조치는 필요하다. 사전학적 의미에서 다자주의는 우리와 같은 중견국가가 환영할 만한 외교 전략이자 수단이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다자주의가 추구하는 가치의 존재를 우리는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지향하는 목표와 그 의도가 무엇인지를 말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정체성 확립으로, 미·중 전략경쟁으로 인한 우리 사회의 양분화를 방지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의 전략적 선택은 한동안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국익은 우리가 견지하는 가치와 이념의 수호 없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이에 기반한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 이유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주재우 경희대 교수   jwc@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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