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유럽 열강 아시아 집결, 中타도 외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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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경희대 교수
입력 2021-05-03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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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경희대 교수 ]


[주재우의 프리즘]  그들이 돌아오고 있다. 유럽 강국들이 아시아로 회귀하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이 1977년 미국이 세운 반공산주의 안보체제인 동남아조약기구(SEATO)에서 떠난 후 약 40년 만의 귀환이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인태전략’)'이 이들의 복귀를 추동하고 있다. 이들의 회귀가 심상치 않은 이유가 군사적 요인 때문이다. 유럽 강국이 국제질서의 수호와 지역 안정 및 안보를 명목으로 군사적 존재감을 키우는 데 적극 나서고 있다. 이들 중 유독 눈길을 끈 활동이 최근에 있었다. 일본과 독일은 4월 13일에 외교국방장관회의(2+2)를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가졌다.

2018년 프랑스가 인태전략 보고서를 처음 발간한 후 작년 하반기부터 유럽 국가들이 연쇄적으로 전략 보고서를 출간했다. 독일은 작년 9월 ‘인태전략 가이드라인’, 네덜란드는 11월에 ‘네덜란드와 EU의 인태전략 협력 가이드라인’을, 영국은 지난 3월 ‘경쟁시대의 글로벌 영국’ 전략보고서를 발표했다. 유럽연합(EU)도 4월 19일에 인태전략에 대한 유럽의 비전과 입장을 담은 보고서를 채택했다. 이들의 공통된 관심은 인태지역에서의 전략적 이익이다. 즉, 향후 100년 동안 지역의 법치에 의거한 국제질서와 자유시장경제의 발전과 안정이 세계에 관건적인 핵심 사안이라는 점이다. 이를 위해 더 이상 수수방관할 수 없다는 공통된 입장이다. 

유럽강국들은 자신의 지경학적 전략이익을 위해 지정학적 전략 개입이 동원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는 유럽이 오랜 역사 동안 지켜온 ‘대륙적 현실주의(Continental Realism)’ 사상에 기반한 것이다. 이들의 정치적 명분은 두 가지다. 하나는 더 이상 ‘강자에 의한 통치(the rule of a strong)’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강자’는 중국을 우회적으로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유엔의 대북 제재결의를 수호하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확산 노력을 저지하는 데 동참하겠다는 것이다. 즉, 북한에 대한 ‘확산방지구상(PSI)’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미다. 이를 방지하지 않으면 세계가 위험에 처할 수 있고 이는 유럽의 전략이익에 치명적이라는 게 이들의 당위적 논리다.

이런 목적을 가지고 일본과 독일은 양국의 우호관계 160주년을 기념해 2+2 회담을 가졌다.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들이 인태지역에서 전략적 협력 기회를 다시 모색하는 계기로 삼은 것이다. 주지하듯 이들은 패전국의 멍에 때문에 지역은 물론 세계 차원에서의 군사 활동과 국방 협력을 금기시했다. 이런 족쇄를 스스로 풀려는 이들의 노력이 이번에 가시화, 공식화됐다. 양국은 인태전략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물론 양국의 협력에는 군사장비 등 군사 분야 협력사안도 포함됐다. 군사 활동에서도 양국의 실질적인 협력을 시작할 예정이다. 일본은 독일 측에 호위함을 파견할 것을 촉구했다. 독일은 오는 8월에 자국의 군함을 2002년 이후 아시아지역에서 첫 항해를 가지기로 결정했다.

양국간 협력의 명분이 경제적인 측면도 있지만 과대평가되었다는 의견이 독일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독일이 무역국가인 것은 사실이다. 독일의 국내총생산(GDP)에서 무역이 80%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세계무역에서 인태지역의 교역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이다. 이 중 중국과의 무역은 7%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독일 정부는 인태전략의 참여를 역내 무역 시장의 확대 기회로 정당화한다.

일본과 독일이 군사 분야에서 협력을 강구하는 전략적 목표는 일치한다. 인태전략에 내재적인 피상적 이유와 목적 외에도 정치적 전략 목표가 동일하다. 미·중 전략적 경쟁시대에 세계의 평화와 발전에 적극 기여함으로써 유엔 상임이사국의 진출을 노린다. 현재 상임이사국은 유엔을 창설한 5개국(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과 러시아)이 주축을 이룬다. 

이밖에 다른 유럽 국가들의 군사적 행보도 바빠지고 있다. 영국은 4월 30일에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를 출정시켰다. 영국의 항모는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를 항행하면서 한국, 일본, 싱가포르와 인도를 방문할 계획을 가지고 떠났다. 그리고 네덜란드와 미국 호위함의 호위를 받으며 항해할 것이다. 일본은 미국과 프랑스와 오는 5월 11-17일 합동군사훈련을 가진다. 프랑스는 인태지역에 자신의 령(領)으로 규정된 10개의 도서를 가지고 있다. 이 지역에 8000명의 상륙작전부대 병력이 주둔하고 있어 군사적 기동력을 이미 갖췄다. 유럽 국가들의 남중국해에서의 군사적 활동이 중국에게 달가운 소식은 아니다. 중국이 자신의 바다로 규정하는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를 이들이 헤집고 다닐 것이 자명하다.

서구가 아시아에 몰려와 집단으로 군사적 활동을 벌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이었다. 영국이 1840년 중국과의 아편 전쟁 이후 이들은 삼삼오오 식으로 군사적 연합을 진행했다. 1900년에 들어서 결국 이들은 이른바 ‘팔련군(8개국 연합군)’의 방식으로 중국 ‘의화단의 난’을 진압했다. 동남아지역에서 공산주의의 확장을 저지하기 위해 SEATO가 1955년에 출범했다. 모두 중국을 겨냥한 목적이 공통적이다. 전자는 성공적이었지만 후자는 기대 이하의 성과를 보면서 1977년에 해체됐다. SEATO의 핵심 두 나라 영국과 프랑스가 SEATO의 취지와 목적(중국 공산주의 확장 억지) 요구에 군사적으로 제대로 기여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미국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했다. 영국과 프랑스 역시 당시 처한 상황에서 SEATO에 제대로 공헌하지 못했다. 요구되는 군사력을 제공할 여력이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국은 유럽과 중동에서 프랑스는 유럽에서 소련의 위협을 우선시해야만했다. 그리고 그나마 가지고 있던 여력을 여기에 전부 쏟아부어야했다. 베트남전쟁을 억지하는 데 SEATO가 집단안보체제로서 제 기능을 못하고 미국이 혼자 전쟁을 감당하게된 이유이다.

SEATO에 함께 참여했던 영국과 프랑스가 ‘인태전략’을 이유로 아시아로 회귀하고 있다. 독일과 네덜란드까지 이에 가세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역내 안정과 발전”을 위해 자신들의 군사적 행보를 정당화하고 있다. 더 나아가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해외 군사 활동이 금기시되었던 일본과 독일이 ‘인태전략’을 빌미로 손을 잡았다. 그만큼 세계가 중국의 군사적 부상과 팽창의 전략적 함의에 심각성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다.

‘북한 바라보기’에 함몰된 우리 정부는 아직까지 ‘인태전략’에 대한 입장조차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정부는 아직도 ‘신남방정책’과 ‘인태전략’의 경제적 연계성만 강조하며 이 영역에서만의 협력 의사를 고집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지역경제협력이 역내 안정과 질서가 유지될 때 가능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지역의 안정과 질서는 군사력에 기반을 둔 강한 역내 리더십이 존재할 때 유지되고 보호된다. 그래야만 질서와 이를 수반하는 제도와 규범이 지켜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우린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 역내 안정과 질서가 어떻게 유지되는지, 그 연유를 망각할 정도의 불감증 속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우리 귀에는 남중국해의 해상전략이익이 유럽에 관건이라는 주장이 생소하게 들릴 수 있다. 역으로 우리가 ‘인태전략’에 보여준 미온적인 자세와 언행은 국제사회에서 납득이 안 될 것이다. 남중국해의 해상전략이익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더 실감해야할 나라가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국익과 발언권을 챙기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입장을 조속히 정리해야한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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